금요일 오후 6시.
한 주의 레슨이 끝나는 시각이다.
일주일 중 가장 조용하고, 묘하게 서운한 시간이 찾아온다.
마지막 아이에게 “주말 즐겁게 보내 ~” 하고 손을 흔들어주고,
피아노 뚜껑을 천천히 덮는다.
책상과 의자를 정리하다 보면,
마치 어딘가로부터 ‘퇴장’하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또 하루가, 한 주가, 무대처럼 끝난다.
그때부터 마음이 조급해진다.
몸과 마음은 쉬어도 괜찮은 시간인데, 이상하게 쉬고 싶지가 않다.
고요함이 나를 눌러오는 것 같아서,..
습관처럼 휴대폰을 든다.
“오늘은 누구한테 전화해 볼까?”
“그냥 수다 한 판 떨어야겠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전화를 걸기까지는 늘 그보다 훨씬 많은 망설임이 있다.
카톡 친구 목록을 무심코 훑다 보면
손가락이 어느 지점에서 툭, 멈춘다.
“이 친구는 지금 아이 학원 데리러 갈 시간이지.”
“얘는 남편 저녁 차리고 있겠구나.”
“이 언니는 운동 가 있을 테니 받기 어렵겠네.” 하며 통화버튼을 누르지 못한다.
어느새 지인들의 일상을 꽤고있는 내 모습이 쓸쓸히 느껴진다.
프로필 사진 한 장, 상태 메시지 한 줄, 말투 하나로
그 사람의 일상이 내 마음에 어렴풋이 새겨져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전화는 걸지 않는다.
아니, 연락 한번 하기가 점점 더 망설여진다.
사람 사이에도 시간의 문이 있다는 걸
조용히 실감하게 되는 금요일 저녁.
지금 이 시간은 아마도 ‘그들만의 방’ 안쪽이고
나는 그 방 바깥, 문 손잡이만 만지작거리며 서 있는 사람 같다.
마치 초대받지 않은 손님의 모습처럼....
그럴 때 이런 상상을 해본다.
혹시 누가, 지금쯤 내 프로필 사진을 보고
“얘는 뭐 하고 있을까?”
“요즘은 어떻게 지내나?” 한 번쯤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을까?
그래도 아주 가끔,
이런 금요일 저녁에 나를 떠올리는 누군가가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예전 같았으면, 그런 안부를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오지 않을 연락을 기다리며 내 마음을 갉아먹던 때도 있었다.
이제는 그 마음을 억지로 접은 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조용히 내려두게 되었다.
그렇게 노을빛이 거실 베란다에 어른거리고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이
떡꼬치 하나씩 손에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집으로 향하고
어디선가 저녁식사 음식 냄새가 풍기면,
‘나도 뭘 해 먹긴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슬며시 스친다.
이상하게도
잘 먹지도 못하는 맥주가 금요일엔 자꾸 떠오른다.
치맥을 같이 할 친구가 있을까? 생각하며
배달 앱을 열고, 이것저것 치킨 그림을 보다가
결국 마음속에서만 치맥을 주문해 본다.
검색하던 전화기를 내려놓고 나면
뭔가 조금, 쓸쓸해진다.
허전함이라는 건
꼭 큰 사건이 있어야만 찾아오는 게 아니라는 걸
이런 조용한 금요일 저녁이 알려준다.
말하려다 삼킨 말, 전화하려다 걸지 않은 전화,
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어느새 마음 안에 나만의 고요한 방 하나가 생기는 것 같다.
그 방 안의 시간이 이제는 싫지만은 않다.
혼자 있는 시간 속에서 조금씩 깨닫게 되는 게 있다.
예전에는 ‘누군가와 함께’ 있어야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믿었는데,
혼자의 시간이 깊어질수록
사람들과의 관계도,
내 마음도
조용히, 단단하게 자리를 잡아간다는 걸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느끼고 있었다.
누군가의 연락처 목록에서
내가 한 번쯤 떠오를 수도 있다는 상상,
그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조금은 따뜻해지는 밤이다.
오늘도 나는
누구에게도 전화를 걸지 않았다.
그렇지만 왠지 모르게 괜찮다고 느껴지는
금요일 저녁 6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