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금요일 저녁 6시,
전화는 울리지 않았다

by Amberin

금요일 저녁 6시, 전화는 울리지 않았다


금요일 오후 6시.

한 주의 레슨이 끝나는 시각이다.


일주일 중 가장 조용하고, 묘하게 서운한 시간이 찾아온다.

마지막 아이에게 “주말 즐겁게 보내 ~” 하고 손을 흔들어주고,

피아노 뚜껑을 천천히 덮는다.


책상과 의자를 정리하다 보면,

마치 어딘가로부터 ‘퇴장’하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또 하루가, 한 주가, 무대처럼 끝난다.


그때부터 마음이 조급해진다.

몸과 마음은 쉬어도 괜찮은 시간인데, 이상하게 쉬고 싶지가 않다.

고요함이 나를 눌러오는 것 같아서,..


습관처럼 휴대폰을 든다.

“오늘은 누구한테 전화해 볼까?”

“그냥 수다 한 판 떨어야겠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전화를 걸기까지는 늘 그보다 훨씬 많은 망설임이 있다.


카톡 친구 목록을 무심코 훑다 보면

손가락이 어느 지점에서 툭, 멈춘다.

“이 친구는 지금 아이 학원 데리러 갈 시간이지.”

“얘는 남편 저녁 차리고 있겠구나.”

“이 언니는 운동 가 있을 테니 받기 어렵겠네.” 하며 통화버튼을 누르지 못한다.


어느새 지인들의 일상을 꽤고있는 내 모습이 쓸쓸히 느껴진다.

프로필 사진 한 장, 상태 메시지 한 줄, 말투 하나로

그 사람의 일상이 내 마음에 어렴풋이 새겨져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전화는 걸지 않는다.

아니, 연락 한번 하기가 점점 더 망설여진다.


사람 사이에도 시간의 문이 있다는 걸

조용히 실감하게 되는 금요일 저녁.


지금 이 시간은 아마도 ‘그들만의 방’ 안쪽이고

나는 그 방 바깥, 문 손잡이만 만지작거리며 서 있는 사람 같다.

마치 초대받지 않은 손님의 모습처럼....


그럴 때 이런 상상을 해본다.

혹시 누가, 지금쯤 내 프로필 사진을 보고

“얘는 뭐 하고 있을까?”

“요즘은 어떻게 지내나?” 한 번쯤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을까?


그래도 아주 가끔,

이런 금요일 저녁에 나를 떠올리는 누군가가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예전 같았으면, 그런 안부를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오지 않을 연락을 기다리며 내 마음을 갉아먹던 때도 있었다.

이제는 그 마음을 억지로 접은 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조용히 내려두게 되었다.


그렇게 노을빛이 거실 베란다에 어른거리고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이

떡꼬치 하나씩 손에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집으로 향하고

어디선가 저녁식사 음식 냄새가 풍기면,

‘나도 뭘 해 먹긴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슬며시 스친다.


이상하게도

잘 먹지도 못하는 맥주가 금요일엔 자꾸 떠오른다.

치맥을 같이 할 친구가 있을까? 생각하며

배달 앱을 열고, 이것저것 치킨 그림을 보다가

결국 마음속에서만 치맥을 주문해 본다.


검색하던 전화기를 내려놓고 나면

뭔가 조금, 쓸쓸해진다.


허전함이라는 건

꼭 큰 사건이 있어야만 찾아오는 게 아니라는 걸

이런 조용한 금요일 저녁이 알려준다.


말하려다 삼킨 말, 전화하려다 걸지 않은 전화,

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어느새 마음 안에 나만의 고요한 방 하나가 생기는 것 같다.


그 방 안의 시간이 이제는 싫지만은 않다.

혼자 있는 시간 속에서 조금씩 깨닫게 되는 게 있다.


예전에는 ‘누군가와 함께’ 있어야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믿었는데,

혼자의 시간이 깊어질수록

사람들과의 관계도,

내 마음도

조용히, 단단하게 자리를 잡아간다는 걸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느끼고 있었다.


누군가의 연락처 목록에서

내가 한 번쯤 떠오를 수도 있다는 상상,

그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조금은 따뜻해지는 밤이다.


오늘도 나는

누구에게도 전화를 걸지 않았다.

그렇지만 왠지 모르게 괜찮다고 느껴지는

금요일 저녁 6시.

keyword
작가의 이전글Good moring ~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