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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Jun 06. 2023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김상욱, 바다출판사)

독서노트 _28

평소 책을 자주 사던 인터넷 서점에서 눈에 띄는 안내문자가 왔다. '따뜻한 물리학자'로 잘 알려진 김상욱 교수의 신간을 가지고 북 콘서트를 한다는 것이었다. 장소도 직장에서 그리 멀지 않아 나는 책 내용을 살펴보지도 않고 얼른 그의 신간과 북 콘서트 티켓을 함께 구매했다. 학창시절 물리선생님은 늘 '제물포(제(쟤) 때문에 물리 포기했어)'라고 불리었는데, 김상욱 교수는 그래도 자타칭 '따뜻한 물리학자'니까, 과학 분야에 문외한인 나도 읽을 수 있는 책을 내놓았겠지 싶어서였다. 유명인의 책을 읽고 그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기도 했다.


아, 그러나 나는 책을 읽으며 김상욱 교수에게 '또 속았구나' 생각하였다. 김 교수의 책은 이것 말고도 제목만으로도 잔잔한 감동을 주는 '떨림과 울림'을 읽었고, 신간 역시 윤동주 시인의 유작 시집에서 제목을 딴 아름다운 그것이었다. 그러나 책장을 펼치면 그 내용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깊이의 물리학적 지식과 온갖 수식의 향연으로 가득하다. '떨림과 울림'을 읽으며 '제목은 이쁜데 내용은 더럽게 어렵네' 생각해 놓고도 이번 책을 또 내용을 보지도 않고 사는 실수(?)를 한 것이다. 책을 샀으니 '본전치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그리고 얄팍한 지적 자존심 때문에 어떻게든 책 내용을 이해해보고자 해도 책 내용이 어려운 편이고 나는 아는 것이 많지 않아 그게 쉽지가 않다.


그래도 이 책은 김 교수가 '물리학자의 관점으로 본 세상의 이해'를 위해 쓴 책이기 때문에, 본업인 물리학 외에 화학, 생물학 그리고 인문학까지 망라하고 있다. 물리학자가 화학이나 생물학을 다뤄봤자 얼마나 깊이있게 다루겠나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본인도 자기 전공 분야가 아니어서 어렵다고 해 놓고 온갖 화학식이며 공식을 마구마구 써놓다니! 배신이다!

그러나 꾹 참고 책을 계속 읽어가다보면 저자가 나같은 문외한에게 자신의 시각으로 이해한 이 세상을 어떻게 알려주고 싶은지, 그리고 다른 분야의 관점에서 바라본 세상이 어떠한지 함께 고민해보고 싶어하는지를 충분히 느낄수가 있다. '과학 서적에 공식이 하나 들어갈 때마다 판매율이 20%씩 떨어진다'고 해 놓고도 서슴없이(?) 온갖 공식을 써놓고 독자를 이해시키려고 애쓰는 모습이 책을 읽다보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그리고 본업만 잘 해도 충분할 텐데 화학, 생물학, 인문학의 영역까지 관심을 넓히며 다양한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세상을 이해해보려는 그 노력과 열정이 감탄스럽고 신기하기도 하였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창발'이다. 창발이란 부분이 모이면 부분 단계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의미와 단계가 새롭게 나타난다는 뜻이다. 세상은, 그리고 그 세상을 구성하는 생물과 무생물은 원자로 되어 있다. 그러나 각 원자 하나하나를 놓고 보았을 때 거기에서 복잡다단한 여러가지 생물과 무생물의 모습을 연상하기는 쉽지 않다. 여기에서 여러 단계의 '창발'이 일어나고, 마침내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세계가 된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1년은 365일로 되어 있다. 하루가 365번 모이면 1년이다. 누군가의 하루만 놓고 보았을 때 그의 1년의 모습이 어떠할 것이라는 걸 알기는 어렵다. 우리는 매일매일 하던 일을 비슷하게 하며 시간을 보내지만 그 속에서도 '창발'은 꾸준히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김상욱 교수의 신간은 역시나 '또 속았다'고 생각할 만큼 여전히 어려웠지만, 별 의미없어 보이는 부분부분, 하루하루가 모였을 때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다. 5일 출근, 2일 휴식이라는 쳇바퀴를 돌리며 살아야 하는 내 삶에 무언가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 느낌이랄까. 북 콘서트 가서 김상욱 교수에게 "또 속았소!"라고 외치지 말고, 내 하루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해 주어 고맙다고 말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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