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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Jun 07. 2023

우리둘에게큰일은일어나지않는다(김상혁, 문학동네)

독서노트 _29

세사대 교수님이기도 한 김상혁 시인의 따끈따끈한 신간이 문학동네에서 나왔다. 시집을 사본 적이 별로 없었지만 교수님과 '시나브로'라는 동아리를 하면서 이 책은 꼭 사야겠다고 생각한 터였다. 책을 펼치니 이런 시인의 말이 나를 맞는다.

이걸 읽고 왠지 눈물이 왈칵 날 것만 같았다. 사실 제목을 봤을 때부터 나는 화상으로 어려서부터 고생했던 작은아이를 떠올렸다. 작은 단풍잎같던 아이의 손에 입은 3도 화상, 첫 번째 응급수술이 끝나고 두 번째 수술이 실패하여 하게 된 세 번째 수술. 2주 동안 그 작은 손가락마다 구축이 오지 않게 철심을 박아 놓아야 한다는 말에 수술 전날 잠을 조금도 자지 못하고 밤을 하얗게 새웠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입 안에 온통 다 허물이 벗겨져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아마 누군가가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우리 둘에게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그런 생각을 갖고 읽어서 그런지 김상혁 시인의 시는 조곤조곤하고 따뜻하였다. 시를 읽고 있자면 이게 시인지 시인이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 혹은 사는 이야기인지 아슴아슴하였다. 일전에 읽은 최승자의 시는 관조와 허무로 가득 차 있었다면 김상혁의 시들은 읽고 위로받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져서 책장을 계속 넘기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는 어렵다. 흔히들 시는 '함축적'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시가 어려운 것일수도 있겠지만 과연 시인이 시를 쓸 때 '난 함축적으로 시를 쓸 거야'하면서 쓸까. 그건 아닐 것이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차고 넘칠 때, 가장 적절한 말들만 골라서 알뜰하게 살림하듯 차려놓는 글이 시가 아닐까. 그래서 시를 보면 그 사람이 보일 것만 같다. 시가 어려운 건 그래서일 것이다. 누군가의 생각의 정수를 한 번에 파악한다는 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래도, 시를 한번에 다 이해하지 못해도 밀려들어오는 따스함 때문에 나는 오늘밤도 김상혁의 시집을 다시 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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