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향인 Jun 14. 2023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신형철, 한겨레출판)

독서노트 _30

신형철 평론가의 '인생의 역사'를 읽고 나서 그의 글솜씨와 해박한 지식, 사유의 깊이에 반한 나는 그에 대해 좀더 알고 싶어졌다. 저자가 나와 동갑이라는 점도 친근감을 더해 주었다. 해서 나는 그의 책을 좀 더 사서 읽어보기로 하였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제목부터 아릿아릿한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었다.


어지간한 책은 후다닥 읽어내는 편이었는데도 이 책은 쉽게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후루룩 빨리 읽어버리고 싶지가 않았다. 책은 저자가 그동안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을 다시 다듬고 엮어서 펴낸 것들이었는데, 글 하나하나마다 쉬이 넘어갈 수 없는 소재와 생각들로 가득했다. 저자는 글에서 본인이 의미를 부여한 책과 영화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는데, 그런 글들을 통해서 나는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는 느낌이었다.


나에게는 책을 읽을 때 좋지 않은 습관이 하나 있는데, 그건 책을 한 번 읽으면 그 책은 다시 열어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다시 읽는 책도 아주 없지는 않지만 많은 책들은 내게 와서 한번 읽힌 후 책장행이 된다. 그래서 그동안 책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깨우치지 못하고 다만 '몇 권 읽었다"라는 자기만족에 빠져 살았던 건 아닌지 뒤늦은 후회가 된다. 내가 최근에 이런 생각을 더 자주 하게 된 것은 신형철 평론가의 책들 때문이었다. 쉽지 않았다. 저자가 문장 하나하나마다 지대한 공을 들였다고 생각될 만큼, 허투루 쓴 문장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될 만큼 문장들은 깊이있고 때로는 어려웠다. 게다가 저자의 깊고 넓은 생각을 따라가기란 또 얼마나 지난한 일이었던가. 책을 읽다보면 그의 지식과 사유의 깊이에, 그리고 내 지식의 얕음에 놀라움과 자괴감이 동시에 느껴졌다.(가끔 생각하기도 했다. 어이 신씨, 우리 같은 해에 대학 들어갔잖아. 그런데 당신은 뭘 어떻게 했기에 이렇게 멀리까지 달려가 있는 거지? 라고)


그래서 책을 시간을 들여 꼭꼭 씹듯이 읽었고, 다 읽었지만 또 한번, 그리고 또 한번 읽을 생각이다. 물론 그렇게 생각한 데에는 이 책의 서럽고 처연한 제목이 한 몫을 담당한다. 슬픔은 응당 자연스럽게 느껴야 하는 것이거늘, 그걸 어쩌지 못해서 '공부해야' 하는 자가 있다면 공부하지 않고도 슬픔을 아는 이들은 얼마나 아플 것인가. 책에는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도 곳곳에 실려 있는데, 나는 그때마다 슬픔을 공부하려고도 하지 않았던 냉혈한들이 떠올라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분노와 아픔, 서러움을 깊이있고 세련되게 표현한 저자가 더욱 대단하다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그게, 슬픔을 공부해야만 아는 것이 비단 그 냉혈한들만의 일일까? 시청앞 광장에는 작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기습적으로' 설치한 분향소가 있다. 나같은 행정국 직원들은 매일 조를 짜서 분향소 근처에서 근무를 선다. 혹시 모를 돌발상황에 대비하여 유가족 동향파악도 하고 조문객 수도 파악할 겸. 어쩌다 근무가 걸리는 때에는 좀 떨어진 곳에서 분향소를 살펴보며 '이제 적당히 하고 좀 치우지' 하는 생각을 안 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내 일신의 안위가 잠시 침범되었다는 이유로 159명이나 되는 죽음을 '귀찮은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나의 무심함 혹은 냉혈함에 흠칫 놀라곤 하였다.


그래서 나는 슬픔을 공부하지 않아도 될 때까지 신형철의 책을 틈틈이 읽으려 한다. '슬픔'이라는 단어에 내 마음이 반응하는 것은 단지 내가 겪어 온 슬픔 때문이다. 그로 인해 나는 아팠고, 서러웠고, 누구든 그걸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하지만 책 표지에는 언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얼룩이 하나 생겨 있다. 아직 내가 공부해야 할 슬픔이 더 남아있다는 듯이.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둘에게큰일은일어나지않는다(김상혁, 문학동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