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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Jun 21. 2023

그 소설은 정말 거기 있었을까(정명섭, 초록비책공방)

독서노트 _31

'교과서 문학으로 떠나는 스토리 기행'이라는 부제에 이끌려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내가 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 되어 목차에 있는 작품들은 따로 읽은 '난쏘공'을 빼면 전부 접해본 적 없는 것들이었다. 그나마 애들 국어공부를 가끔 봐주면서 얼핏 스치듯이 읽은 '자전거 도둑' 정도가 조금 익숙하달까.

세월이 어느새 이렇게나 흘렀구나! 속으로 한탄하며 책장을 펼쳤다. 저자들이 주제로 삼은 소설들을 거의 읽어보지 않아 내용이 얼마나 다가올까 걱정했던 건 그러나 기우였다. 저자들은 소설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그러나 중요한 것은 빠뜨리지 않고 잘 설명해 주었고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적절한 사진과 그에 따른 해설도 빠뜨리지 않았다.

부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교과서에 실린 소설의 창작 무대가 되었던 곳을 찾아가서 그 소설의 흔적을 답사하는 글의 모음이다. 요즘은, 특히 수도권은 개발이 안 된 곳을 찾기가 쉽지 않을 지경이라 소설의 무대가 되었던 곳들도 거의 다 눈부시게 웅장하고 화려한 도심으로 탈바꿈하였다. 그러한 변화를 책을 통해 접하면서 나 역시 저자들처럼 뭔지 모를 아쉬움에 사로잡히기도 하였다.


나 모든 지역이 다 개발이 된 것은 아니어서,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무대인 인천 만석동 일대는 아직도 갈 곳 없고 가난한 이주민들이 살던 때의 모습을 상당 부분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한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여 자기도 모르게 '관광객 모드'가 되었던 저자는, 그러나 이내 자신이 누군가의 가난을 구경거리 삼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멋적어한다.


그 부분은 사실 나도 좀 찔리는 부분이었다. 한때 도심 재개발보다는 재생이 화두가 되면서 개발되지 못하고 낙후된 동네의 환경개선을 한다는 명목 하에 알록달록 벽화를 몇 개 그려놓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 곳을 '구경'하게 만드는 일이 유행이었다. 나 역시도 그런 벽화마을을 몇 군데 가 본 적이 있으니. 누군가에게는 치열한 삶의 현장일 뿐인 곳을 단지 잠시간 구경하다 가는 곳 정도로 치부하고 말았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젠가, 멀지 않은 시기에 이 책에 수록된 장소들을 찾아 문학 기행을 떠나보고자 한다. 물론 소재가 되었던 소설을 찾아 읽는 것이 우선일 테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가들의 작품 중 교과서에 실릴 만큼 대표적인 작품을 읽고 그 흔적을 따라가 보는 것만큼 그 작품을 제대로 읽는 것은 없을 터. 다만 관광객의 자세보다는 독자의 자세로 길을 떠나야겠지. 그걸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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