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감포읍에 지어진 번쩍이는 새 호텔에는
돈을 낸 누구나라도 제 집처럼 들어와서
왕 대접을 받을 수 있다
들어올 수 없는 건 가난한 파도 뿐이다
파도는 매 시간마다 매 분마다 아니 매 초마다
모래와 조개껍데기와 그도 안 되면 갈매기까지 데려와
어떻게 안 되겠냐고
이걸로는 부족하냐고
우엉우엉 읍소를 해 보지만
빗방울도 일 초를 머무르지 못하고
데구르르 굴러 내려가는 매끄럼한
얼핏 보면 칼 든 병정같은 호텔 외벽은
나도 어쩔 도리가 없다오, 하듯
단호한 두 눈을 꼬옥 감고
마지못해 따라온 갈매기가 거봐 내가 뭐라 그랬어
안될 거라 그랬지
조롱하며 날개를 새초롬히 돌려 하늘을 가로지르지만
파도는 그새를 못 참고 그래도 또 한 번, 하며
어느 틈에 호텔 코 밑을 또 간지럽힌다
달겨드는 파도가 귀찮아진 호텔은
주저앉은 다리를 힘주어 일으켜
조금씩 조금씩 더욱 더 더 더 더
시나브로 높아져 갈 것이고
비굴해진 파도는 그럴수록
더욱 더 더 더 더 납작해져서
마침내 호텔은 어느 날이 되면
이 세상에 파도라는 것도 있었나,
그런 건 처음 들어보는데 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릴 때가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