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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Sep 3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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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_119

경주시 감포읍에 지어진 번쩍이는 새 호텔에는

돈을 낸 누구나라도 제 집처럼 들어와서

왕 대접을 받을 수 있다


들어올 수 없는 건 가난한 파도 뿐이다

파도는 매 시간마다 매 분마다 아니 매 초마다

모래와 조개껍데기와 그도 안 되면 갈매기까지 데려와

어떻게 안 되겠냐고

이걸로는 부족하냐고

우엉우엉 읍소를 해 보지만


빗방울도 일 초를 머무르지 못하고

데구르르 굴러 내려가는 매끄럼한

얼핏 보면 칼 든 병정같은 호텔 외벽은

나도 어쩔 도리가 없다오, 하듯

단호한 두 눈을 꼬옥 감고


마지못해 따라온 갈매기가 거봐 내가 뭐라 그랬어

안될 거라 그랬지

조롱하며 날개를 새초롬히 돌려 하늘을 가로지르지만

파도는 그새를 못 참고 그래도 또 한 번, 하며

어느 틈에 호텔 코 밑을 또 간지럽힌다


달겨드는 파도가 귀찮아진 호텔은

주저앉은 다리를 힘주어 일으켜

조금씩 조금씩 더욱 더 더 더 더

시나브로 높아져 갈 것이고

비굴해진 파도는 그럴수록

더욱 더 더 더 더 납작해져서

마침내 호텔은 어느 날이 되면

이 세상에 파도라는 것도 있었나,

그런 건 처음 들어보는데 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릴 때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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