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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Dec 21. 2023

과장님을 보내드리는 글

일상기록

과장님,

겨울이 차츰차츰 계절의 색을 앗아가는 시간이네요. 2023년 계묘년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과장님을 생각하니 처음 제가 과장님을 뵈었던 때가 떠오르네요. 몇 번의 메일과 전화통화 끝에 과장님이 저를 직접 보러 오신다고 했을 때 잠시 당황했습니다. 무언가를 도와드렸다고 해서 고마움을 직접 표하러 오시겠다는 분은 과장님이 처음이었거든요. 그 때 과장님은 저희가 익히 아는 그 씩씩하고 밝은 미소와 함께 견과류 세트를 가지고 저를 보러 오셨습니다. 그 미소와 과장님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가 참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날 제 마음에 깊이 남은 과장님의 미소와 목소리는 서울시청이라는 만만치 않은 조직에서 생활하는 내내 저에게 망망대해에서의 등대와도 같았습니다. 이런 표현이 너무 거창하고 진부하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으나 실제로 그랬습니다. 과장님은 사소한 이야기라도 한 번 들으면 잊지 않고 기억하며 살뜰히 챙겨주셨고, 고민거리가 있을 때에는 명쾌하게 방향을 제시해 주시곤 하였습니다. 그런 과장님을 믿고 의지하며 저는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생기면 과장님께 달려갔고. 과장님은 그런 저를 때로는 엄마처럼, 때로는 선생님처럼 품어 주시고 해야 할 일을 자상히 일러 주셨습니다. 아마 저 말고도 과장님을 아는 모든 분이 같은 생각이리라 확신합니다.


그런 과장님이 몸담으신 마지막 부서에서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던 저희는 정말 대단한 행운아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과장님과 반 년 동안 함께 근무하면서 과장님이 어려운 일을 풀어나가시는 것을 직접 보고 배웠고, 업무를 놓치지 않고 꼼꼼히 처리하는 태도를 체득하였습니다. 업무 추진에 있어서는 망설임 없고 스마트하신데 또 직원들을 챙기실 때에는 자상하고 너그러운 엄마처럼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과장님을 보며, 함께 근무하는 시간이 줄어들어가는 것이 하루하루 참 아쉬웠습니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이 사무실에서 과장님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을 기회는 저희에게 다시 없겠지요. 과장님이 안 계신 사무실이 얼마나 허전하고 황량할지, 무시로 터지는 이런저런 난제들은 어떻게 해결할지 남아있는 저희들은 벌써 걱정이 한가득입니다. 2024년이 밝아오면 저희 정책지원담당관은 새로운 분을 맞이하게 되겠지만, 저희는 한동안 과장님 집무실에 갈 때마다 과장님의 얼굴과 목소리가 아른거릴 것만 같네요.


얼마 전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극중 자폐를 앓고 있는 변호사 우영우가 그를 언제 어디서건 잘 도와주고 보살펴 주던 동료 변호사 최수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봄날의 햇살 최수연이야”

오늘 저는, 저희는 과장님의 마지막 근무일을 맞아 이 대사를 과장님께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과장님, 과장님은 저희 모두에게 봄날의 햇살입니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던 과장님, 이제 과장님 앞에 펼쳐질 제2의 인생에도 봄날의 햇살이 환히 비추기를 저희 모두가 기원합니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과장님.


* 올해를 마지막으로 공로연수에 들어가시는 과장님 송별회에서 낭독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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