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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Dec 23. 2023

어떤 크리스마스 회상

일상기록

오늘 기사 하나를 보았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병원에서 보내게 된 사람들이 병원에서 마련한 크리스마스 트리에 소원쪽지를 매달며 건강과 퇴원을 기원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기사를 보니 2011년 크리스마스가 기억났다.

세브란스병원 트리에 매달린 소원 쪽지들

2011년 1월 1일, 그날은 건명이의 생일이었다. 그 무렵 나는 2주 가량 밍기의 기관지염을 간병하느라 몸살이 났고 몹시 지쳐 있었다. 그래도 건명이 생일파티 준비는 해야겠기에 너덜너덜한 몸을 일으켜 케잌과 그 전날 준비한 몇 가지 음식을 차리기 시작했다. 안방에는 가습을 위해 스팀가습기를 틀어 놓았는데 그걸 꺼야지 생각했지만 나는 아프고 바빴고 또 남편이 그걸 껐겠거니 하며 그냥 넘기고 말았다.


생일상 차리기에 여념이 없는데 갑자기 안방에서 숨 넘어가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밍기였다. 여간해서는 그렇게 큰 소리로 자지러지게 우는 법이 없는 밍기였기 때문에 무슨 일이 난 게 분명했다. 나와 남편은 안방으로 뛰어들어갔다. 밍기가 그 작고 여린 손을 스팀가습기의 스팀 분출구에 올려놓고 손을 떼지도 못한 채 울고 있었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밍기가 안방으로 걸어 들어갔다가 호기심에 가습기를 만지다 사고가 난 것이었다.


나는 급히 밍기를 안아들고 싱크대 물을 최대한 차갑게 하여 손의 열기를 식혔다. 밍기의 손은 순식간에 하얗게 변하며 껍질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자동적으로 머릿속에서는 '3도 화상'이라는 한 마디가 떠올랐다. 우리는 그대로 응급실로 달려갔고 그렇게 건명이의 생일은 밍기의 사고날이 되고 말았다.


밍기는 2011년에만 세 번의 수술을 받았는데 세 번째 수술은 그해 말에 하게 되었다. 두 번째 수술이 잘못되어 우리는 병원을 옮겼고, 세 번째 수술을 하게 된 한강성심병원에는 수술 후 2주를 입원해야 했다. 나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병원에서 보내게 된 밍기와, 엄마 없이 그 기간을 보내야 할 건명이 생각에 하루에도 몇 번씩 속이 아렸다.


그 무렵 건명이가 다니던 유치원에서 원아들 집에 산타를 '파견'하겠으니 아이에게 읽어 줄 편지와 선물을 보내라고 했다. 나는 건명이가 좋아하는 장난감 자동차 중 가장 훌륭하고 큰 것을 골라 정성스레 포장하고 편지를 썼다. 엄마가 동생 수술 때문에 크리스마스를 같이 못 보내게 되어 무척 아쉽고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조금만 힘내서 같이 이겨내보자고 기다려달라는 내용이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유치원에서 연락이 왔다. 그때 당시 다섯 살이라 아직 산타의 존재를 믿고 있던 건명이의 환대를 받으며 '일일 산타'는 선물을 전달하고 편지를 읽어주었는데, 편지 내용도 짠했지만 그 편지를 읽는 동안 두 손을 꼭 모아 쥐고 눈에 눈물이 글썽한 채 고개를 끄덕이는 건명이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고 했다. 나는 그러고 있을 건명이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그 작은 손을 꼭 잡아주고 눈물을 닦아 주고 얼굴을 매만져주고 싶었다. 비록 몸은 멀리 병원에 있었지만.


북적북적하고 화려한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분위기 뒤에는 이렇게 아프고 힘든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포근한 집과 가족을 떠나 병실의 좁고 하얀 침대에서 이 시기를 보내고 견뎌야 하는 사람들이 있고, 나도 그중 하나였다. 참으로 길고 어두웠던 그 시기도 어떻게든 지나서 이제 과거의 일이 되었다. 지금 이 순간 병원에 있을 환자와 가족들에게도 '시간의 신'이 치유와 기적을 베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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