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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Dec 26. 2023

손톱을 깎아주고 귀를 후벼주는 일

일상기록

아기가 태어나면 부모는 하나부터 열까지 아이를 보살피고 케어해야 하는데 그중 빠질 수 없는 일이 손톱을 깎아주는 일과 귀를 청소해주는 일이다. 종잇장보다도 얇은, 손가락 색깔과 차이가 별로 없는 연분홍색 손톱을 처음 자를 때 얼마나 긴장하고 숨을 몇 번이나 들이쉬고 내쉬었던가. 아기가 어릴 때에는 손톱깎이를 쓸 수도 없어서 손톱가위를 사용해야 하는데, 손톱을 자르면서 손가락 피부까지 다치지 않도록 안전장치가 되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아기 손톱을 자르는 일은 매번 엄청난 긴장과 집중을 요하는 것이었다.

손톱가위를 이용하여 아기의 손톱을 자르는 모습

아기의 귀 청소는 언제부터 해주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기가 어릴 때에는 감기 등 이런저런 잔병으로 소아과에 가는 일이 잦고, 그때마다 병원에서 아기 귀의 귀지를 쏙 빼주었기 때문에 내가 귀이개를 가지고 아기 귀를 직접 후벼 준 것은 아기가 좀 크고 나서였던 것 같다. 귀이개 중에는 끝에 전구가 달려 있어서 귓속을 보며 귀청소를 할 수 있게 나온 것도 있었지만 그런 물건은 그리 오래 쓰지 않았고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쯤에는 전통적인 스텐레스 귀이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아기가 어릴 때는 귀를 청소해 줄 때마다 그 귓바퀴가 놀랄 만큼 부드럽고 말랑말랑해서 그 느낌을 매번 즐기곤 했었다. 제법 컸다고는 해도 손톱 역시 작고 앙증맞아서 어른 손톱깎이는 쓰지 못하고 어린이용으로 나온 작은 것을 따로 사다 썼다. 그러다가 시나브로 아이의 손톱이 커지고 단단해져서 어른 손톱깎이로도 손톱을 자를 수 있게 되고, 귓바퀴 역시 부드럽고 말캉말캉하던 시기를 지나 제법 형태가 잡히고 단단해지면 그때 비로소 실감하는 것이다. 아, 이 애들이 이렇게 컸구나.


아이들은 내가 손톱을 잘라주고 귀를 청소해 주는 동안 쑥쑥 자라서 이제 해가 바뀌면 18살, 16살이 된다. 작은아이는 얼마 전부터 스스로 손톱을 깎고 귀 청소를 하기 시작했지만 큰아이는 아직도 그런 작업에 내 손이 필요하다.


사실 아이가 이 나이가 되도록 손톱을 잘라주고 귀 청소를 해줘야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손톱깎기와 귀 청소는 주로 시간이 좀 나는 주말에 하게 되는데, 일주일 내내 회사 일에 지친 나는 주말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을때가 많다. 꼭 그럴 때는 큰아이의 제법 길게 자란 손톱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큰아이를 살살 꼬드겨 본다. 이제 네가 손톱 직접 깎으면 어때? 그러나 큰아이는 그때마다 요지부동이다. 엄마가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 왜? 이유를 물어보니 엄마가 손톱을 깎아주면 자기 손을 곱게 쓰다듬어주는 느낌이 들어서라고 했다. 나는 이 녀석이 자기 손으로 손발톱을 깎고 귀 청소를 하기가 귀찮아서 그런 건 아닌가 합리적인(?) 의심을 해 보지만, 엄마가 쓰다듬어주는 느낌이 좋아서 계속 수발을 들어 달라는데 매몰차게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오늘 밤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 큰아이의 손발톱을 깎아 주고 귀 청소를 해 주었다. 귀 청소를 해주며 말해 보았다. 너 이제 몇 년 뒤에 군대 가면 내가 이렇게 못해주잖아. 그때를 대비해서 네가 직접 해보는 건 어떨까? 그랬더니 녀석은 얼토당토 않다는 듯 고개를 젓는다. 엄마가 면회 와서 해주면 된다는 거다. 안그래도 얼마 전에 녀석이 나 군대 가면 엄마 얼마나 자주 면회 와줄거야? 해서 네가 귀찮아하지 않으면 매주 가지..했더니 내가 엄마가 귀찮을리가 없잖아, 한다. 그래서 그래 그럼 집인지 군대인지 구별 안될 정도로 면회 자주 가 주지, 라고 대답한 적이 있는데 이대로 가다간 정말이지 매주 면회 가서 녀석의 손발톱을 잘라주고 무릎에 뉘인 채 귀 청소를 해줘야 하게 생겼다.


나보다 키가 훌쩍 크고 얼굴엔 여드름이 가득하며 코 밑에는 수염이 듬성듬성한 17살 아들녀석이 건명아 손톱 깎고 귀 청소하자~ 라는 말에 군소리없이 내 무릎에 드러누워 귀를 맡기고 손을 내민다. 다시 말하지만 '이 짓'을 이렇게까지 오래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달리 생각하면 아이가 태어난 지 17년이 지나도록 나는 녀석의 일상에 꼭 필요한 존재라는 거다. 가끔은 '이 짓'이 살짝 귀찮기도 하고 저게 빨리 여친이 생겨야 내가 이걸 그만할 수 있을 텐데..싶기도 하지만 17살짜리 아들을 무릎에 눕히고 그 귓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여자가 대한민국에 아주 많지는 않을 것 같다. 그걸 생각하면 나는 어쩌면 대단한 행운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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