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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Dec 26. 2023

고마운 오지랖

일상기록

타고나기를 엄청나게 내향적으로 태어난 나는 누구에게 참견하고 간섭하는 것도 싫고, 누군가가 나에게 오지랖 넓게 끼어드는 것도 싫어하는 편이다. 내게는 확고한 '선'이 있어서, 나는 결코 그 선을 넘는 법이 없고 남이 그 선을 넘는 것도 무척 싫어한다.(물론 내가 그어놓은 선이 어디쯤인지 남들은 알 도리가 없다. 따라서 일부 눈치없는(?) 사람들 중에는 그 선을 아무렇지 않게 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나는 처음에는 이해해보려 노력하고 참다가 나중에는 그 사람을 멀리하고 손절하는 방법을 택한다)


그랬던 내가 남들이 내가 갖고 있는 선을 성큼성큼 넘어오는 것을 용인하다못해 고마워하고 환대하는 때가 왔다. 바로 큰아이 건명이를 낳아 키울 때였다. 여러 가지 복잡하고 말 못할 사정으로 나는 건명이를 친정식구 없이 남편과 둘이 낳아 키워야 했다. 당시 친정 남동생이 같이 살고 있긴 했지만 육아에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건명이를 낳은 날은 2007년 1월 1일, 겨울이 한창 기승을 부릴 때였다. 게다가 그 해 봄에는 황사마저 유독 심해서 나는 황사가 물러가고 건명이를 유모차에 태울 수 있을 정도로 좀 클 때까지 거의 다섯 달을 집 안에서만 보내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5월, 황사가 없어지고 공기가 따스해졌다. 봄이 온 것이었다.

유모차 산책을 시켜주면 건명이는 그 안에서 잘 잤다


나는 신이 나서 가슴을 두근거리며 건명이에게 옷을 예쁘게 입혀 유모차에 태운 후 아파트 앞 뚝방길 산책에 나섰다. 길가에는 아줌마와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내가 그들 가까이에 가자 그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려 나와 건명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윽고 보태지는 한 마디들.


"애기 신발은 어딨어 애기엄마?"

"아..날씨가 안 추워서 안신겼어요^^;;"

"그래도 애기 신발은 신겨야 해. 발 시려"

"아유 애기 발 춥겠네. 담엔 꼭 신발 신겨서 나와요 "


나는 걷지 못하는 아기에게도 신발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게다가 계절도 5월이었으니까. 그러나 나의 그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육아 베테랑'들은 앞다투어 신발을 신겨야 한다는 조언을 던졌고, 나는 그 조언을 받아들여 바로 건명이의 신발을 사서 신겼다.


아이를 낳기 전의 나였다면 '이 아줌마들 대체 무슨 참견이야..'라고 속으로 불평하고 말았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당시 내가 친정엄마 등의 도움 없이 혼자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 몹시 대견하고 기특해서, 그 누구라도 나와 건명이를 보고 말을 걸어주기를 바랐다. 건명이더러 귀엽다, 이쁘다, 토실하다 해 주면 그 순간은 독박육아의 고달픔과 서러움이 일순간에 날아가는 것 같았다. 나에게는 육아에 대해 조언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동네 아줌마 할머니들의 애기 신발을 신기라는 등의 조언(?)이 너무나 고맙고 소중했다.


지금이야 아이들 둘이 많이 자랐지만 아이들이 어렸을 때, 특히 첫 아이인 건명이를 아무런 지식도, 조언도 없이 막막한 상태에서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키울 때 이웃 사람들이 오다가다 한 마디씩 해 주었던 조언(참견)은 지금 생각해도 울컥할 정도로 고맙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분들은 알까. 그때 무심히 던졌던 말 한마디를 붙잡고 하루하루를 살아냈던 젊고 서툰 엄마가 있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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