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나기를 엄청나게 내향적으로 태어난 나는 누구에게 참견하고 간섭하는 것도 싫고, 누군가가 나에게 오지랖 넓게 끼어드는 것도 싫어하는 편이다. 내게는 확고한 '선'이 있어서, 나는 결코 그 선을 넘는 법이 없고 남이 그 선을 넘는 것도 무척 싫어한다.(물론 내가 그어놓은 선이 어디쯤인지 남들은 알 도리가 없다. 따라서 일부 눈치없는(?) 사람들 중에는 그 선을 아무렇지 않게 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나는 처음에는 이해해보려 노력하고 참다가 나중에는 그 사람을 멀리하고 손절하는 방법을 택한다)
그랬던 내가 남들이 내가 갖고 있는 선을 성큼성큼 넘어오는 것을 용인하다못해 고마워하고 환대하는 때가 왔다. 바로 큰아이 건명이를 낳아 키울 때였다. 여러 가지 복잡하고 말 못할 사정으로 나는 건명이를 친정식구 없이 남편과 둘이 낳아 키워야 했다. 당시 친정 남동생이 같이 살고 있긴 했지만 육아에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건명이를 낳은 날은 2007년 1월 1일, 겨울이 한창 기승을 부릴 때였다. 게다가 그 해 봄에는 황사마저 유독 심해서 나는 황사가 물러가고 건명이를 유모차에 태울 수 있을 정도로 좀 클 때까지 거의 다섯 달을 집 안에서만 보내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5월, 황사가 없어지고 공기가 따스해졌다. 봄이 온 것이었다.
유모차 산책을 시켜주면 건명이는 그 안에서 잘 잤다
나는 신이 나서 가슴을 두근거리며 건명이에게 옷을 예쁘게 입혀 유모차에 태운 후 아파트 앞 뚝방길 산책에 나섰다. 길가에는 아줌마와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내가 그들 가까이에 가자 그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려 나와 건명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윽고 보태지는 한 마디들.
"애기 신발은 어딨어 애기엄마?"
"아..날씨가 안 추워서 안신겼어요^^;;"
"그래도 애기 신발은 신겨야 해. 발 시려"
"아유 애기 발 춥겠네. 담엔 꼭 신발 신겨서 나와요 "
나는 걷지 못하는 아기에게도 신발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게다가 계절도 5월이었으니까. 그러나 나의 그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육아 베테랑'들은 앞다투어 신발을 신겨야 한다는 조언을 던졌고, 나는 그 조언을 받아들여 바로 건명이의 신발을 사서 신겼다.
아이를 낳기 전의 나였다면 '이 아줌마들 대체 무슨 참견이야..'라고 속으로 불평하고 말았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당시 내가 친정엄마 등의 도움 없이 혼자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 몹시 대견하고 기특해서, 그 누구라도 나와 건명이를 보고 말을 걸어주기를 바랐다. 건명이더러 귀엽다, 이쁘다, 토실하다 해 주면 그 순간은 독박육아의 고달픔과 서러움이 일순간에 날아가는 것 같았다. 나에게는 육아에 대해 조언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동네 아줌마 할머니들의 애기 신발을 신기라는 등의 조언(?)이 너무나 고맙고 소중했다.
지금이야 아이들 둘이 많이 자랐지만 아이들이 어렸을 때, 특히 첫 아이인 건명이를 아무런 지식도, 조언도 없이 막막한 상태에서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키울 때 이웃 사람들이 오다가다 한 마디씩 해 주었던 조언(참견)은 지금 생각해도 울컥할 정도로 고맙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분들은 알까. 그때 무심히 던졌던 말 한마디를 붙잡고 하루하루를 살아냈던 젊고 서툰 엄마가 있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