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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Jan 07. 2024

노안의 실수

일상기록

청소년기에는 시력이 무서울 정도로 뚝뚝 떨어진다. 안경점에 물어보니 성장기에는 시력 저하 속도도 같이 빨라져서 그런 거랬다. 그 후 성장이 멈추고 성인이 되면서 한동안 시력은 정체기에 있었는데, 30대 후반에 다시 직장을 다니고 하루종일 모니터를 보게 되면서 다시 나빠지기 시작했고 스마트폰도 거기에 한몫 거들었다.


스마트폰을 자주, 오래 사용해서인지 나는 나이에 비해 노안이 빨리 온 편이었다. 서글프고 뭔가 자존심이 상해 남편에게도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이미 40대 초반부터 가까이 있는 것이 잘 안보이기 시작했다. 비록 얼굴은 남 보기에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소리를 가끔 듣지만 남들이 알 수 없는 부분에서는 노화가 제법 빨리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 나에게 남편에게도 아직 오지 않은 노안이 왔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 나는 어떻게든 기존 근시안경으로 버텼다. 그러나 해가 지날수록 일반 안경으로는 생활하기가 불편해졌고, 급기야 나는 가까이 있는 것도, 멀리 있는 것도 다 잘 안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할 수 없이 나는 남편에게 내 눈의 변화를 이실직고(?)했고, 그 길로 안경점에 가서 노안이 온 눈에 맞는 다초점 안경을 장만했다.


다초점 렌즈의 가격은 일반 근시 렌즈에 비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쌌다. 게다가 눈에 필요한 것인데 아주 싸구려를 하기도 좀 그래서 괜찮은 제품을 고르다 보니 안경 가격으로는 생각도 못해본 금액을 지불하게 되었다. 이 비싼 안경 아끼고 아껴서 오래 써야지..생각했건만 그런 다짐은 1년이 지나자 무너져 버렸다. 시력이 다시 나빠졌던 것이다. 그러니까 눈의 노화가 더 심해진 것이었다.


다시 먼 데 있는 것도, 가까이 있는 것도 잘 안 보이는 상태가 되어 나는 렌즈를 교체해야 했고 또 제법 많은 비용이 지출되었다. 그게 재작년 말경의 일이다. 그때에도 역시 이번 안경은 오래 써야지, 꼭 그래야지 다짐했건만 그 다짐이 무색하게도 오늘 저녁에 작은 사고(?)가 일어났다.


나는 저녁식사를 마친 건명이의 귀를 청소해주고 손발톱을 깎아주고 있었다. 아, 그런데 건명이의 귓속이 잘 보이지 않았다. 2주 전만 해도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눈이 그새 또 나빠진 것이다. 사실 안경이 잘 안 맞게 된 건 두어 달 전부터였는데 어떻게든 참아보려고 버티던 중이었다. 그러나 아이 귓속이 잘 보이지 않는 것에 나는 당황했고, 하지만 오랫동안 귀 청소를 해 준 감을 살려 그럭저럭 작업을 마무리할 수는 있었다.


문제는 손톱을 깎아줄 때였다. 새끼손톱을 깎는데 건명이가 아! 비명을 지른다. 내가 손톱깎이로 살을 찝었다는 거였다. 이럴수가, 그런 실수 정말 해본 적 없는데. 분명 손톱이라고 생각하고 손톱깎이를 들이댔는데 그게 피부였나보다. 어쩐지 잘 안보이더라니..나는 너무 미안해져서 건명이의 손가락을 붙잡고 아프지 어떡해 미안해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피는 나지 않았고 건명이는 쿨하게 괜찮아~ 하며 방으로 들어갔지만, 나는 그 일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안경에 다시 돈을 쓰기 싫어 어떻게든 그냥 지내보려 했지만 아이 귓속도 안 보이고 손톱 깎을 때에도 안 하던 실수를 하는 지경이 되었으니 아무래도 조만간 안경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될 모양이다. 도대체 이놈의 눈은 언제쯤 나빠지기를 그만두고 얌전히 있을 것인가. 이렇게 나는 나빠지는 눈과 함께 내가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한번 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래서 더 추운 이 밤이 자못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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