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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Jan 13. 2024

6개월만의 이사, 그리고 고마운 사람들

일상기록

작년 7월 부서 이동으로 이사를 했는데 불과 6개월만에 또 이사를 하게 됐다. 반 년 전에는 내 희망에 의한 이사였다면 이번에는 옮겨갈 부서의 요청(물론 내가 그 요청에 응했기 때문이지만) 때문이라는 점이 다르긴 하다.


부서 이동이 작년 말경 확정되고 올해 초 새 과장님이 부임해 오셨다. 전번 과장님은 정년퇴직하실 때가 되어 공로연수에 들어가셨기 때문에. 새 과장님과 나는 안면이 있었다. 몇 년 전 시청에서 근무할 당시 바로 옆 부서 팀장님으로 알고 지냈던 사이였다. 하지만 같이 근무해 본 적은 없어서 근무 스타일은 몰랐는데, 2주 가량 같이 근무해 보니 생각 외로 꼼꼼하고 깔끔하고 철두철미한 분이었다. 그런데다가 새로 오셔서 부서 업무와 현황 파악도 빨리 하셔야 했으니 과 선임 주임인 나에게 요구하는 자료와 작성을 요청하는 문서들이 상당히 많았다. 지난 과장님이 공로연수 들어가기 전 상당기간 휴가를 내서 부재중이셨고, 거기다 연말이라는 시기적 특성이 겹쳐 한동안 별로 하는 일 없이 지내다가 해가 바뀌자마자 새 과장님을 위해 정신없이 이것저것 챙겨야 하니 피로감이 상당했다.


그냥 일만 하더라도 꽤나 피곤했을 일정이었는데 나는 곧 발령을 앞둔 몸이었다. 떠날 날을 받아놓으면 그동안 했던 일들도 정리를 해야 하고, 또 새 부서에서 누구와 어떤 일을 하게 될지에 더 신경이 쓰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기존 부서의 일은 조금씩 마음에서 떠나게 된다. 하지만 이 부서에서는 그럴 틈이 없었다. 과장님으로부터의 요청사항과 숙제가 발령나기 바로 전날까지 이어졌고, 과 선임으로서 챙겨야 할 일정들이 계속 생겨서 나는 내가 과연 발령이 나긴 한 건지 의문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래서 속으로 '아 정말, 자리 정리할 틈도 없는 건 너무하잖아'라고 투덜거리기도 했다.


그러다 발령 전날, 오후 6시가 좀 넘어서야 나는 과장님이 시킨 마지막 숙제를 보고드리고 이 부서에서의 내 할일을 끝냈다. 투덜거리긴 했어도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이 생기면 가능한 한 실수 없이, 완벽하게 해내는 걸 목표로 하기 때문에 과장님이 나의 결과물을 받고 흐뭇해하는 모습에 뿌듯하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야 나는 새 부서로 옮기기 위해 짐을 쌀 수 있었다.


퇴근시간이 지나서 짐을 쌌고, 게다가 금요일이었기 때문에 부서에는 나와 과장님, 그리고 옆 팀 팀장님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짐을 혼자 다 옮길수는 없어서 아무래도 주말에 남편과 같이 이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내가 짐을 다 쌀 때까지 퇴근하지 않던 과장님이 손수 짐을 같이 옮겨 주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몇 번이고 사양했는데도 과장님은 뜻을 굽히지 않았고 옆 팀 팀장님까지 거들고 나서서 결국 과장님, 팀장님과 함께 이사를 하게 되었다.


짐 중엔 꽤 무거운 것도 있어서 가는 길에 과장님이 두어 번 쉴 때는 정말 죄송하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과장님 그거 제가 들께요..했지만 과장님은 쉬었다 가더라도 본인이 옮겨 주신다고 하였고, 그렇게 이사는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나는 두 분과 함께 나오며 몇 번이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였다. 공무원 생활 10년 중 그렇게 분에 넘치는(?) 이사는 처음이었다.


그러고 나니 이 부서에 처음 왔을 때의 일이 기억났다. 당시 이 부서는 선임 주임이 육아휴직에 들어가서 없었고, 팀장님은 발령일 직후 2주간 해외여행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팀장님은 정식 발령일도 되기 전에 급하게 나를 불렀고 후다닥 인수인계를 해준 후 내가 오자마자 여행을 가 버렸다. 나는 전임자가 육아휴직에 들어가서 없고 팀장님조차 장기간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는 마음으로 혼자 업무를 파악하고 좌충우돌해가며 일했다. 그 기간에 무척 아프기도 했는데 팀장님도 안 계신 상황에서 내가 쉴 수는 없어 정말 한시간 조퇴도 못한 채 끙끙 앓으며 일을 해야 했다.


시작도 그랬는데 부서를 떠나기 전날까지 '몸을 갈아 가며' 새 과장님을 모셔야 했기 때문에 나는 이 부서에 길게 있지는 않았지만 참 힘들었다고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그런 일들로 인한 서운함과 피로함은 정말 필요할 때 나를 도와주신 과장님과 팀장님(비록 내 직속 팀장님은 아니었지만) 덕분에 상당부분 해소되었다. 새 과장님이 갈 날을 받아놓은 나에게 쉬지 않고 숙제를 시키면서 자주 미안하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빈말임이 아닌 게 증명된 것이다. 나는 반 년 동안이지만 이 부서에서 정말 열심히 했고, 최선을 다해 상사들을 모셨고 챙겨 드렸다. 그리고 그 노력을 직접 몸으로 보상해 준 상사들이 있어 나는 지난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느꼈다. 아, 정말이지 반 년이지만 하얗게 불태웠다. 후회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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