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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잠 Mar 14. 2021

결혼도 남들보다 요란하게

비혼 주의자가 결혼을 하기까지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순하고 고분고분한  보이지만특정 부분에 있어서는 고집이 있고 예민하며 굉장히 까다로울 때가 있다. 특히나 누군가가 나의 인생에 크게 간섭하는 것을 지나치게 싫어하는 편이다.


“넌 결국 누가 뭐라 하더라도 너 맘대로 살테니 알아서 살아라!"

오랜 시간을 자각을 하지 못하고 지내왔었다.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봐준 주변 사람들이 이야기를 해준 후에야 내가 이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것이다. 그렇다 보니 한번 결심한 일이 있으면 누가 이런저런 조언을 해도 일단 하고 보는 일이 많았다.


이런 성향은 이직, 퇴사, 결혼 등 인생의 주요한 결정이 필요한 순간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특히 나는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결혼을 한다는  자유를 잃는 것이며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한 행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저 사회가 규정한 삶의  프로세스로 받아들였기에 반드시 결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결혼을 한다고 해도, 예민한 나와 함께 해줄 사람을 만나 평생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동시에 복잡하고 번거로운 결혼과정에 대한 압박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컸기에 결혼은 막연하게 두렵고 먼 얘기로만 느껴졌다.


내가 결혼을 하다니

이런 내가 예상보다 빠른 31세에 결혼을 결정하게 된 건 좋은 상대방을 만났기 때문이다. 20대 내내 조급함과 불안함에 시달려 스스로를 혹사시킨 결과 나는 몇 년간 우울증으로 고생했다.

우울증은 내가 힘든 것 이상으로 가까운 사람을 힘들게 한다. 특히나 상대방의 감정까지 갉아먹는 부정적인 생각과 자기 비하가 가장 큰 문제점인데, 나는 부끄럽게도 한 때 그런 행동들을 꽤나 했던 것 같다.

끊임없이 우울감을 핑계로 상대를 괴롭혀 결국 상대방이 떠남으로써 '고독한 ' 인생의 결론을 마무리 짓는 생각을 잠재적으로 가진 최악의 상태로 살아갔다.

상대도 소중한 인격체이기에 결코  감정을 그대로 받아주며 같이 상처를 받아야  의무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복 없이 오랜 시간을 함께 해주었다. 예전도 고마웠지만, 지금에 와서 더더욱 고맙다.


결혼을 결정한 것의 책임은 예상만큼 무거웠다. 죽어도 하기 싫은 결혼식은 어쩔  없이 해야 했고 예단, 결혼식장부터 해서 양가 집안의 사소한 의견을 맞추는 과정에서 엄청난 에너지 소모가 있었다. 고생스럽고 잡음도 많았지만 하나하나 해결해가며 무사히 결혼식장까지   있었다.


결혼식도 요란하게

그런데, 혹시 내가 결혼식을 좋아하는 건 아닐까?

그렇게 하기 싫은 결혼식이었는데, 나는 누구보다 요란하게 결혼식을 했던 것 같다.

생화가 가득한 하우스에, 까다로운 성격 때문에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결혼식에 사용할 음악까지 모두 직접 골랐다. 반지를 갖다주는 예쁜 강아지도, 결혼식장에 와준 사람들의 얼굴을 담아줄 스티커사진기도.. 내가 봐도 마치 정말 결혼을 위해 살아온 사람처럼 요란스러웠다.


결혼식날은 서태지 25주년 콘서트를 하는 날이었다.

서태지 콘서트는 흔히 오지 않는 특별한 이벤트이다. 하필 결혼식 날짜와 겹쳐 처음엔 망연자실했지만 일단 티켓을 구매했다.

“결혼식 끝나고 가면 되잖아...? 그런데 갈 수 있는 것 맞나? 결혼식날은 엄청 정신없고 힘들다던데..”

사람들도 미쳤다고 얼른 티켓을 취소하라고 했다.

결국 난 결혼식이 끝난  서태지 콘서트에 갔다가 그날  비행기를 타고 신혼여행을 떠났다. 근처 찜질방에서 씻고, 배고픔에 부대찌개를 먹고 주경기장으로 향했다. 이날은 방탄소년단과 서태지의 콜라보 공연이 있었던 아주 멋진 날이었다.

이렇게 결혼식을 요란스럽게 마치고 난 후 내 삶에는 점점 평온이 찾아왔다.


결혼은 인생의 터닝포인트

결혼이라는 것은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하나의 큰 변화이기에, 막연한 불안감을 동반하는 중요한 결정이다

그렇기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는 것이지만, 막상 결혼을 하고 나니 원래 내가 가졌던 결혼에 대한 가치관만큼은 계속 고수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느꼈다.

살다 보면 생각치 못하게 좋은 인연을 만나 결혼을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도 결혼을  수도 있고, 계획하지 않은 시기에 결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니 그것 만큼은 살면서 흘러가는 대로 맡겨두고, 인생에 결혼을 해야  결정의 순간이  시점에 신중하게 결정하면 된다.


그렇게 하기 싫었던 결혼은, 주체적으로 남편과 함께 꾸려나갈 미래를 상상  있는 중요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애착을 가지고 만들어갈  있으며, 꾸밈없이  자신의 민낯을 편하게 드러낼  있는 나만의 집과 가정을 가진다는 것은 매우 안정감이 생기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일상에서 항상 많은 것들을 나에게 맞춰서 함께 해주고, 원래 부부는 함께 뭘 해도 좋은 거라고 말해주는 남편이 생겨서 든든했다.


앞으로 나의 삶은 더욱 좋아질 것이란 희망이 생겼다.

그리고 나는 더 행복해질 것이다.

오늘도 high-f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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