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낮잠 Jul 25. 2021

어른이 꿈이었던 날들, 유희열의 <여름날>

너의 꿈은 아직도 어른이 되는 걸까

2012년 7월의 여름, 지금도 사진처럼 생생히 그날의 장면이 기억난다. 햇빛이 뜨겁게 내리쬐고 바닥에서부터 여름의 향기가 강하게 올라오는 지산락페스티벌의 오후, 페퍼톤스가 부르는 <여름날> 이 울려 퍼진다.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파란 미소의 너의 얼굴 손 흔들며,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내게 달려오고 있어" 

눈부신 무대를 바라보며 예쁜 가사를 듣고 있자니 내 26살의 여름날이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날 것 같다. 

밤을 새도 지치지 않는 체력, 삶에 호기심이 가득하며 열심히 살아서 30대쯤에는 멋진 어른이 되어야겠다 꿈꾸던 그 시기의 젊음이 그렇게나 좋았나 보다. 꾸밈없이 말하는 듯 불러주는 신재평의 목소리가 내 마음을 더욱 울렁울렁거리게 만들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그날의 기분은 잊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너의 꿈은 아직도 어른이 되는 걸까, 문득 얼마큼 걸어왔는지 돌아보니 그곳엔

2008년 유희열의 소품집 EP에 수록된 <여름날>은 청춘과 서툰 사랑에 대해 노래하는 곡이다. 

청춘은 삶도 사랑도 모든 것이 서툴다. 빨리 멋진 어른이 되고 싶었던 어리숙한 20대의 내 모습,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해 수없이 고민하며 요동치는 마음을 부여잡느라 잠 못 이룬 시간들. 어른이 되는 것을 꿈꾸던 그땐 아무리 고민해도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35살이 된 지금, 오랜 시간을 직접 지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어른이 되는 일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이해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고,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혹시 내가 뒤쳐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끊임없이 마음을 불안하게 했던 파도에서 나와 조금은 편안함에 이르게 된다.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는 만큼, 내 감정을 표현하는 일은 적어진다. 다들 별다르지 않은 삶인데, 나의 소소한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어리광처럼 느껴져 어딘가에라도 뱉고 싶은 말을 눌러 담아본다. 점점 혼자 이겨내야 하는 일들이 많아지면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동시에 자연스레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나의 몸과 마음의 변화에 서운한 기분도 든다. 

옛날에는 공연을 보면서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공연이나 좋아하는 밴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했다. 인디, 락 온라인 카페에서 동행을 모집하여 모임을 만들고, 2-3일간의 페스티벌 기간 동안 함께 공연을 본다. 9년 전쯤, 그렇게 지산락페스티벌에서 만났던 30대 언니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나는 이번을 마지막으로 이렇게는 안 오려고 해."

"왜요??"

"그냥 이제는 좀 아닌 것 같아.. 남자 친구가 생긴다면, 남자 친구랑 와야겠지..?"


당시엔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같이 있는 것이 즐겁기만 했는데 뭐가 좀 아니라는 걸까. 이제는 어렴풋이 그 말속의 숨은 뜻을 알 것도 같다. 30대도 여전히 젊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은 나이이지만, 그럼에도 청춘의 시기에만 느끼고 즐길 수 있는 것이 있으며 각자 그것을 느끼게 되는 때가 있다는 것을.  

어른이 되어가며 얻은 안정감에 행복감을 느꼈지만, 청춘의 패기로움, 설렘과는 공존할 수 없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그렇기에 인생에 딱 한 번만 있는 청춘의 순간들, 매 순간 설레는 그 느낌은 그 무엇과도 맞바꿀 수 없는 시간이었음을 새삼스레 다시 깨닫는다. 가끔은 10년 전 그날의 흐릿해진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씩 떠올려본다. 작은 일에도 웃고 즐거워했던 그 얼굴들이 참 예뻤다.


나에게 <여름날>은 청춘의 상징이다.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지나간 날들이 필름처럼 떠오른다. 결과가 어떻건 그래도 최선을 다해 살았어. 

내가 지나온 청춘은 설레지만 너무나도 서툴러서 떠올려보면 이불 발차기를 하고 싶을 만큼 부끄러운 순간들도 많은 시간이었다. 여전히 어떤 순간을 떠올리며 가끔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보면 난 아직까진 그 순간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곧 그런 모든 날들도 내 청춘의 푸른 날의 한 부분이었음을 받아들이는 날이 올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날이 오면 내가 꿈꾸던 어른의 모습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지고, 지금의 서운함도 사라지게 될까. 



유희열 소품집 - 여름날 (feat. 페퍼톤스 신재평) 

안테나뮤직 워리어스 (안테나 공식 채널) https://youtu.be/2eqWlgxvuvk


바람결에 실려 들려오던

무심히 중얼대던 너의 음성

지구는 공기 때문인지 유통기한이 있대

우리얘기도 그래서 끝이 있나봐

혹시 어쩌면 아마도 설마

매일 매일 난 이런 생각에 빠져

내일이 오면 괜찮아지겠지 잠에서 깨면

잊지말아줘 어제의 서툰 우리를

너의 꿈은 아직도 어른이 되는걸까

문득 얼만큼 걸어왔는지 돌아보니 그곳엔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파란 미소의 너의 얼굴 손 흔들며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내게 달려오고 있어)

그토록 내가 좋아했던

상냥한 너의 목소리 내 귓가에서

안녕 잘지냈니 인사하며

여전히 나를 지켜주고 있어

(간주중)

너의 꿈은 아직도 어른이 되는걸까

문득 얼만큼 걸어왔는지 돌아보니 그곳엔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파란 미소의 너의 얼굴 손 흔들며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내게 달려오고 있어)

그토록 내가 좋아했던

상냥한 너의 목소리 내 귓가에서

안녕 잘지냈니 인사하며

여전히 나를 지켜주고 있어

(간주중)

넌 가르쳐 줄 수 있을까

내 마음 도착했는지 니가 숨쉬는

니가 꿈꾸는 매일 그안에 (나는 살아 숨쉬는지)

어느새 계절은 이렇게

내 여름날과 함께 저물고

시원한 바람 그 속엔 내일 또 내일

너도 가끔 기억을 할까 (눈부시게 반짝 거리던)

푸르른 지난 여름날 우리들


        

매거진의 이전글 삶이 재미없다고 느껴질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