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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잠 Jan 13. 2023

나의 삶을 사랑하지만 삶이 고통스러운 나에게

나의 前직장 상사가 전해주는 위로

얼마전 한적하고 뻥 뚫린 카페에서 북한산을 보면서, 내 첫 직장의 사수였던 찌니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즘엔 특히 내가 요즘 하는 고민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매번 답변해주시는 이야기가 너무나 많은 도움이 되어서 다 듣고 나면 항상 녹음할껄! 이라는 말을 하게 된다.

이런 이야기들을 글로 남겨보면 얼마나 의미 있는 기록이 될까? 올해 우리는 <前직장 상사와 매일 쓰는 교환일기>라는 타이틀로 매일 매일 기록을 남겨보기로 했다.


최근 다시 몸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나는 삶에 대한 애정이 이렇게나 많은데 반대로 왜이렇게 삶은 고통의 연속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원래 태어남이라는 것은 고통이고 이것을 환희로 바꾸는 것은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다고 하지만, 난 그것에 아직까지도 미숙하기만 하다. 분명 나의 일기장에는 재미있었던 찰나의 순간들이 많이 남겨져 있는데,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찌니님은 나에게 포기의 경험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하고 싶은 일들이 많은 내가 무언가를 포기한다는 것은 내가 가진 열정과 애정을 버리기에 매우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내 삶의 지속을 위해서는 반드시 용기를 해야 한다는 말은오늘도 빡빡한 인생 계획표를 쓰고 있는 나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2023년 12월 즈음에는 포기의 경험을 써볼 수 있을까.


To. 찌니님

첫날부터 일한다고 일기를 미룬 접니다.

저는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은 것에 비해 에너지의 수준이 많이 약해서 힘이 듭니다.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하다보면 어느 순간 몸에서 신호가 와서 면역력이 떨어지고 몸이 아파서 또 한동안은 무언가에 집중하기 힘든일의 반복입니다.

불과 얼마전만 해도 이런 저런 일정도 많았기도 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일도 너무 원하고 재밌지만 그 시간이나 빈도가 길어지면 제가 원하는 텐션이 노력해도 나오지 않고 그러면 집에 돌아와서 아쉬움이 많이 남아서 오랫동안 생각하게 되요.

새로운 사람들과 얘기듣고 만남을 하는 것이 재미있고, 새로운 일들, 하고싶었던 다양한 생산성 있는 활동들, 그리고 노는 일까지 다 하고 싶은데 그것을 못따라주는 제가 답답합니다. 그래서 에너지가 많은 찌니님이 너무 부러워요!

한번에 다가 아니라 나눠서 집중력 있게 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왜 계획을 짜면 매번 이렇게 산더미가 되는 걸까요. 이렇게 살다보니 약도 먹고 관리를 하면서 심했던 PMS 증후군이 많이 호전되었는데 1년만에 롤백된 것 같습니다. 저는 저의 삶에 대한 애정이 너무나 많은데 왜 이리도 삶은 고통의 반복일까요?

여기서 탈출하고자 얼마 전부터 달리기를 다시 시작했어요. 좀 더 나아질 수 있겠죠?


To. 낮잠님

늘 이야기하는 부분이지만, 이 세상에 나의 건강보다 중요한 건 없어요. 9년 전에 제가 유방암으로 고통스러워했을 때 가장 가까이서 봤던 낮잠님이기 때문에 제가 전하는 이 이야기가 얼마나 진실되고 무거운 이야기인지 알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때의 저도 낮잠님처럼, 아니 낮잠님보다 더 열정적이었죠. 그리고 완벽주의의 강박이 이 모든 걸 다 해내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스트레스로 계속 쌓이게 되었고, 결국 그건 저에게 생존율 50%를 논하는 큰 병으로 찾아왔었죠. 지금 낮잠님이 자꾸 아프고 병원에 가게 되고 약을 먹게 되는 건 이미 멈추라는 몸의 싸인이 온 겁니다. 그 싸인을 무시하면 더 큰 병이 찾아오게 될 거에요.


지금은 내가 손에 쥐고 있는 일 중에 내가 해서 행복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포기해야 할 때입니다. 무언가를 포기한다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열정과 애정을 버리는 행위기에 매우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저는 낮잠님이 이 용기를 지금 내주길 바래요. 내 삶의 지속이 없으면 열정도, 애정도, 텐션도, 에너지도 다 소용없는 겁니다. 지금 내가 열망하는 그 모든 것들이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는 것들이라는 걸 잊으면 안돼요.


한번 크게 아프고 난 뒤 저의 에너지는 낮잠님보다 오히려 적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낮잠님 눈에 저의 에너지가 더 폭발적으로 보이는 것은 아마도, 제가 내 삶에 임팩트가 있는 일에 더 집중해서 에너지를 쏟아붓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에너지 자체가 낮잠님보다 나은 게 아니라, 에너지의 분배를 하는 것에 있어서 낮잠님보다 나은 사람인 거에요.

그리고 제가 에너지를 잘 분배해서 쓸 수 있는 건, 제가 포기를 하는 법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가장 우선 순위는 늘 ‘나’입니다. 그래서 나의 건강이 안 좋으면 거기에 영향을 주는 무언가를 포기하고, 나의 기분이 행복하지 못하면 거기에 영향을 주는 무언가를 포기하는 식입니다. 처음에는 스스로 무언가를 포기한다는 것이 나 자신을 용납할 수 없었는데, 포기의 결정을 할 때 하게 되는 수 많은 고민을 하게 되면서 오히려 이 과정이 나에게 더 많은 배움을 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 마음은 이걸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이걸 포기해야 하는 이유를 계속 생각하며 설득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어떤 일은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하더라구요.


낮잠님은 지금까지 그 어떤 것도 포기한 적이 없잖아요. 저는 그 경험을 해봤으면 합니다. 이번에 슬램덩크 더 퍼스트에서 전국 최강자로 나오는 산왕의 정우성이 북산과 경기 전에 신사에 가서 신에게 ‘자신이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경험을 달라’라고 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북산에 지고 나서는 그 장면이 다시 회상되는데, ‘아, 신이 그 소원을 주셨구나. 늘 이기는 쪽에만 있었던 정우성에게는 패배의 경험이 필요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찬가지로 지금 낮잠님에게 신이 주시고자 하는 경험의 선물은 ‘포기의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하나씩 쌓여있던 것들을 해내는 것보다, 하나씩 포기하는 것부터 해봤으면 합니다.


‘저의 삶에 대한 애정이 너무나 많은데 왜 이리도 삶은 고통의 반복일까요’라는 마지막 질문에 저는 이런 답을 드리고 싶어요. 낮잠님은 자신의 삶에 대한 애정이 너무나 많은데, 자기 자신 자체에 대한 애정이 적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겁니다. 나의 삶은 내가 있기에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스스로가 그리고 있는 삶에 자신을 끼워 넣으려고 하기 때문에 힘들 수 밖에 없는 거에요. 자신의 정처 없는 발걸음 또한 자신의 삶을 그리는 발자취가 될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을 귀하게 애정하세요.


낮잠님이 ego를 자신의 그릇에 담길 바래요. 그렇기에 그냥 달리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해서는 그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있는 마음을 향해 달렸으면 해요.


낮잠님의 前직장 상사 찌니님 >> 찌니님의 지혜로운 지니생활

MBTI ENTJ, 13년째 낮잠의 정신적 지주가 되기 위해 지혜를 키우고 있다. 호기심이 많고 도전을 즐긴다. 낮잠님의 정신적 지주로서 강제로 성장하면서 자신의 리더십에 대한 장점을 발견하여, 최근에는 잠재력 컨설턴트로서 후배들의 커리어 성장과 멘탈 강화를 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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