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엄마는 아이와 함께 큰다.
첫 아이는 무슨 용기로 낳았을까.
둘째를 임신하고 5개월 정도가 될 때까지 일을 했었다. 첫째 임신과정과 출산 전까지는 수월했기 때문에 둘째에 대한 부담은 없었다. 하지만 첫째는 직장을 다니면서 키웠기 때문에 오롯이 나 혼자 키웠다고 할 수는 없다. 무슨 일만 있으면 친정엄마에게 달려갔었고 친정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첫째 때는 아기 띠 조차 제대로 해 본적이 없다. 이상하게 첫째 때는 아이를 들 힘이 없었고 허리가 너무 아파 아기 띠 대신 유모차로 아이를 데리고 다녔다. 모든 첫째 아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엄마라는 사람도 초보다. 그래서 항상 첫째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든다. 첫째 아이와 초보 엄마는 둘이 같이 커 가는 게 아닐까.
나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가끔 일찍 출근을 해야 하는 날도 있지만 대부분의 강사들은 오후12시 이후에 출근을 하기 때문에 일찍 일어나는 것만큼 힘들 일도 없을 것이다. 첫째가 태어나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내 생활 습관을 바꾸는 일이었다. 아이에 맞춰 일어나고 자야 하는 것! 또 핸드폰 진동 소리에도 깨는 예민함에 내 손에서 떠날 줄 몰랐던 핸드폰은 멀리 멀리 해야 했던 것! 그 이후로는 지금도 전화를 잘 받지도 잘 하지도 않는다. 자극적인 음식들은 모조리 식탁에서 없어진 것! 아이 입맛에 맞추다 보니 싱거워야 하고 인스턴트와도 작별을 해야 하며 매운 음식은 먹지도 않았다. 첫째가 특히 매운 것을 정말 못 먹었다. 거기에 맞춰 내가 안 먹던 브로콜리, 가지, 두부 등 살짝 삶아서 먹는 음식들을 먹는 식습관도 바꼈다. 마지막으로 텔레비전과도 잠시 이별을 했었다. 이렇게 많은 나의 습관을 바꾸면서 첫째와 엄마가 되어갔다.
둘째부터는 아기 띠의 힘을 톡톡히 즐겼다. 이미 첫째를 키우면서 나의 습관은 다 바꼈기 때문에 힘들다는 생각이 없었다. 아이도 순둥이라 울지도 않고 잠은 굉장히 잘자고 잘 먹고 컸다. 예민한 셋째 때는 정말 힘들었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하지만 이미 둘을 키우면서 나도 어느새 한층 더 단단해져 있었다. 이제 진짜 엄마가 되어있었다. 아파도 힘들어도 ‘인내’라는 두 글자를 도를 닦듯 가슴 깊숙이 새겨두며 살고 있는게 아니겠는가.
엄마에게 아이라는 존재는 내 목숨보다 소중하다. 그래서일까.
엄마들은 전부 박사학위를 받아도 될 만큼 공부를 하고 각종 제품에 대해 알고 있다. 예를 들어, 학습지를 가르칠 거다라고 하면 전국은 아니지만 우리 지역과 근처 지역의 모든 학습지 선생님들과 학습지 종류별로 테스트를 받고 상담을 받고 알아본다. 영어 학원 하나를 다닐 지언정 근처 영어 학원 학원의 분위기, 교육 방법, 교재 등을 꿰뚫고 있다. 분유 하나하나도 분석하고 돌아다닐 정도의 열정으로 공부를 했다면 아마 나는 여기에 있지 않았을 것 같다. 회사다니면서 내가 이렇게 공부했다면 이라고 느꼈던 감정을 아이를 키우면서 또 한 번 느끼게 되었다.
변화 중에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아이 때문에 공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몰라서 육아서적을 뒤지기 시작했고 육아 프로그램도 열렬히 시청하는 사람이 되었다. 또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수학도 공부하고 초등학교 각 종 과목도 아이보다 먼저 공부를 했다. 엄마가 가르쳐야 하니 잘하던 못하던 아이보다 먼저 알아야 아이도 배울 의욕이 생기지 않을까. 나보다 못하고 나를 가르쳐주지 않는 부모가 책 읽어라, 공부해라 라고 한다면 반감이 생길 것 같다. 나는 공부하는데 엄마아빠는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면 아이들도 해야 하는 것은 알지만 의욕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엄마 아빠 옆에 그냥 붙어 있고 싶어한다고 한다. 우리 첫째는 내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엄마 냄새가 너무 좋다고 한다. 무슨 냄새인지 나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엄마의 품을 항상 그리워하는 것 같다. 아이들이 공부하거나 놀거나 먹거나 할 때 항상 곁에 엄마가 있으면 아이들도 자연스레 자기 할 일에 집중을 하는 것 같다.
우리 집 아이들 공부방에는 아이들 책상 말고 큰 책상이 있다. 자유롭게 공부 하고 싶은 곳에서 하라는 의미로 가져다 놓은 것도 있지만 사실 내가 쓸 목적도 있었다. 아이들 공부할 때 계속 내게 질문을 한다. 모르는 것,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 등. 공부를 하면서 자리에 앉아 있는 시간이 도대체 몇 분이나 될까. 나에게 오는 시간이 아마 절반은 될 것 같다. 엄마가 같이 앉아 있으면 아이들도 앉아서 집중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아이들이 할 동안 나도 멍하니 기다리기도 지루하고 지켜보기만 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감시자 역할을 하는 것 같아 뭘 할 것이 없을까. 그러면서 예전에 내가 하고 싶어했던 것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뤄왔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계속 써오던 글이 생각났다. 꾸준히 쓰지는 못했지만 간간히 써 놓았던 글들. 그리고 아이들이 이제 점점 커 가면 내 손을 덜 필요로 할 때 ‘나’로 설 수 있는 일들이 필요했다.
그렇게 ‘나’를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