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잔소리는 일분 일초도 빠지지 않는다
엄마 말을 잘 듣던 어린 시절이 내게도 있었던 것 같다. 엄마가 입고 가라는 대로, 엄마가 빗겨 준 머리 그대로 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언제부터 방문을 닫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일 것이다. 엄마가 더 이상 나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전부 잔소리로만 들렸다. 엄마가 하는 말들을 한 쪽 귀로 듣고 다른 쪽 귀로 흘려 보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 말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똑 같은 말이라도 친구나 다른 사람이 하면 공감이 가는 말들이 왜 엄마가 하면 잔소리로 들렸을까...
지금 내 아이들도 내가 하는 말들을 잔소리로 여기기 시작했다.
뭐라고 말만하면 “응, 알았어.”가 자동으로 나온다. 대답을 들었으니 했겠거니 하고 나중에 확인하면 하지 않았다. 그 순간 화가 치밀어 오르면서 엄마를 속인 아이와 싸우게 된다. 솔직히 나는 말을 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결혼 전 하루 종일 말하는 직업이어서 퇴근하면 집에서는 입을 거의 열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도 내 아이를 낳고 보니 계속 중얼거리게 된다. 아이들이 문 밖을 나서기 전까지 왜 이렇게 할 말들이 많은지.
“지퍼 잠그고 가! 신발 바로 신어! 학교 끝나면 전화 하고 바로 집으로 와라! 수업 시간에 똑바로 앉아있고!”
아이들이 나의 말을 잔소리로 듣고 한 귀로 흘려도 계속할 수 밖에 없다. 문 밖에 나서기 전까지 당부 말들을 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불안한 마음을 붙들고 집에서 아이들을 기다린다. 엄마들 모임을 나가도 “아! 오늘 추운데 겉옷을 더 입으라고 한다는 것을 깜빡 했어!” 라고 온통 자기 자식 걱정들뿐이다. 이런 마음이 바로 진짜 엄마의 마음일까.
한 번은 첫째에게 이렇게 물어봤다.
"너 학원 간다고 나가면 엄마가 그냥 집에 있는 줄 알지?"
"응."
"아니야, 네가 학원에 도착할 때까지 그리고 집에 올 때까지 엄마 일분일초도 우리 아들을 기다리지 않는 순간이 없어. 잘 가나 창문으로 너 멀어질 때까지 보고 집에 오는 시간이 5분이라도 늦어지면 안절부절 못해. 그래서 연락 없이 네가 늦으면 오나 안 오나 창 밖에서 보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겉 옷 집어 드는 순간 네가 올 때도 있어."
"정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눈에 보이니 안 할 수도 없고 적정선을 한다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이다. 이제는 말로도 하지만 메모지로도 잔소리를 한다. 주로 메모지에는 문제집에 붙인다. <틀린 것 고치고 다시 풀 것> <여기까지 풀 것> 등. 매일 같이 숙제 해라, 공부해라 라는 말도 지쳐가고 그런 말을 했을 때 돌아오는 아이들의 짜증 섞인 반응을 받는 나도 감정적으로 힘들다. 간단한 것은 메모로 하고 잔소리를 줄이려고 나도 나름 애쓰고 있다.
어느 날, 아이 친구 엄마 집에 잠깐 갔다.
“어머! 이게 뭐야? 왜 이렇게 써 놨어?”
화장실이며 부엌 스위치, 방 곳곳에 메모지들이 붙어 있었다. 스위치에는 어디 불이라는 메모가, 화장실에는 <수건 제자리><다 쓴 수건 내놓기><변기 뚜껑 들고 볼 일 보기>등, 방에는 <방 좀 정리하자!><이부자리는 정리했니?> 등의 메모들이었다.
나도 그 심정을 안다. 매일 똑 같은 말을 반복하는 엄마와 아내는 좋아서 하는 줄 아나 보지? 자기들도 같은 말을 반복하면 짜증내면서 나에게는 수십 번을 같은 질문을 한다. 그럴 때 대답을 잘 안 해주거나 짜증 섞인 답을 하면 화를 낸다고 아이들이 먼저 울거나 도리어 화를 낸다. 엄마는 동네 북이란 말인가. 여기 저기 감정 대응에 무방비 상태로 두드려 댄다. 그래도 아침에는 출근, 등교하니까 참고 보내고 하교, 퇴근하면 힘들게 고생하고 왔으니까 또 참는다. 시대가 변하고 있으니 같은 질문에 답해 줄 수 있는 로봇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아, 엄마도 같은 말하기 힘들단다. 한 번 말하면 찰떡같이 척 알아들을 수는 없는 거니?
그럼에도 잔소리를 계속하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아이가 바로 크고 인간다운 사람으로 사회에 나가기를 원한다면 해야 하지 않을까. 종종 주변에 이런 아이들을 본다. 같이 어울리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 괴롭히는 것으로 친해지려고 하거나 나쁜 말들로 자신을 강한 사람으로 표현하려 해 주위 친구들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경우가 있다. 아이들에게 애정과 관심이 없는 부모들의 아이들이 그런 경우다. 혼내기는 하겠지만 아이들도 느낀다. 나를 사랑해서 하는 건지 그냥 부모로써 하는 건지. 나에게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누구보다 아이들이 안다. 안타깝기도 하고 나 또한 부모이기에 내 아이들에게 친구가 그러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하지만 내 아이들도 아이니까 이해는 해도 싫은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면서 그런 아이는 6년 내내 같은 학교를 다니는 동안 점점 아이들과 문제가 생기고 친구가 없다. 하지만 부모가 적극적으로 내 아이의 나쁜 점을 가르치고 개선하는 경우에는 태도가 좋지 않았던 아이들도 크면서 친구들과도 잘 지내게 되기도 한다.
엄마의 잔소리.
듣고 자라지 않았다면 나도 내 아이들을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 잘 모르지 않았을까. 무심코 들었던 말들이 결혼을 해서 실생활로 부딪히니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남을 때리면 안 된다, 허리를 곧게 피고 앉아라, 머리카락 정리 좀 해라, 집에 일찍 들어 와라, 티비 좀 그만 봐라 등등의 수많은 잔소리들. 그 때 들었던 그 얘기들을 지금 살을 붙여 내 아이들에게도 하고 있다. 당장은 듣기 싫고 하기 싫지만 내가 낳은 아이에 대한 책임감과 사랑으로 오늘도 나는 잔소리를 한다. 내가 매일 같이 들었던 말!
“아침 밥은 꼭 먹어야 해!”
이 말은 지금도 찰떡같이 지킨다. 내 아이에게도 꼭 아침은 먹이는 것을 보니 잔소리의 효과가 이렇게 나오다니. 나는 오늘도 잔소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