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내 주위를 맴도는 아이들, 아빠는 없니?
“엄마, 옷은 뭐 입어?”
“엄마, 내 공책은 어디에 있어?”
“엄마, 물 줘!”
“엄마, 배고파!”
귀를 틀어막고 싶은 때가 있다. 아이가 하나면 한 아이에게만 온 신경을 집중하지만 아이가 셋이니 나를 셋으로 쪼개면 어떨까.
“너희들도 엄마가 세 명이면 좋겠지?”
매일같이 엄마 쟁탈전이 벌어진다. 내가 서 있으면 엄마가 뭘 하는구나 하고 덜 찾는다. 하지만 쉬려고 앉아있으면 그 때부터 엄마 옆자리 쟁탈전이다. 두 명은 나란히 옆에 앉을 수 있지만 한 명은 그럴 수 없으니 울거나 화를 낸다. "엄마는 나만 예뻐하지 않아!" 결국 나는 일어선다. 매일 같이 한 아이는 꼭 서운함을 느끼고 새침해진다. 엄마가 다정한 엄마가 아니라 “뭘 그런 것 가지고 삐져!” 라고 툭 쏘아대지만 이불 뒤집어쓰고 화나있는 아이에게 바로 발걸음을 향한다. 풀어주는 방법은 하나! 가서 스킨십으로 마구마구 뽀뽀해주고 껴안아 주면 눈 치켜 뜨고 화난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평일에는 아빠를 찾을 일이 없지만 주말에는 아빠에게 기댈 수 밖에 없다. 엄마는 손이 두 개, 몸은 하나니까. 하지만 아이들은 아빠가 있어도 엄마 부르기를 멈추지 않는다.
“아빠는 없니? 아빠는 어디 갔어?”
아빠도 주말이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아이 하나일 때, 둘 일 때, 셋 일 때. 점점 아빠도 자신을 내려놓게 되었다. 물론 하루아침에 바뀐 남편은 아니다. 10년 넘게 엄마의 잔소리와 끊임없는 부부싸움, 대화 등을 통해 서로가 변해온 결과다. 마트에 가도 집에 있어도 엄마는 아빠를 찾는다.
“아빠는?”
사람은 타인의 관심을 먹고 사는 걸까.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타인의 시선에서 머물고 싶은 마음이 항상 같이 있는 것 같다. 나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 중에 하나다. 그렇다고 완전히 관심을 끊으면 또 무엇인가 서운하다. 살아가면서 하나만 선택을 한다면 어느 쪽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북유럽 쪽의 사람들은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린다고 앉아있는 거리가 10 센티미터 정도 떨어져 앉는다고 한다. 그 안으로 들어오면 불안해 한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이 별로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또 사람이 그립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와 출근시간을 맞본다면 기겁을 할지도 모르겠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좋은 장소, 맛있는 집에는 어김없이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그러면 SNS에 이곳에 가 보았다는 인증 샷으로 넘쳐나게 된다.
이런 내가 타인의 시선을 네 시간 반 동안 집중적으로 받은 적이 있다. 바로 우리 가족이 셋째가 태어나면서 해외 여행이라는 것을 가기 시작하던 첫 여행에서 였다. 그 전에는 해외라는 곳을 나갈 생각을 해 본적이 없는 것 같다. 이것도 다 흐름에 따라 유행을 탄 것 같다. 셋째가 돌이 되기 전에 비행기를 타야 공짜라고 남편이 적극적으로 여행 계획을 짜서 가게 되었다. 물론 나는 반대했다. 우리 막내 딸은 그 당시만해도 굉장히 예민하고 잘 우는 아이라 비행기 안에서의 일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우려하던 일은 현실이 되었다. 목적지까지 4시간 반 동안 비행기에서 계속 큰 소리로 울었다. 타인에게 주목 받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나에게는 정말 견딜 수 없는 시간이었다. 남에게 닿지 않으려고 엘리베이터에서도 제일 구석자리에 타는 내가, 내 애가 대성통곡을 하고 있으니 정말 비행기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였다.
아빠는 딸이 울면 짜증을 내고 왜 그렇게 징징대냐고 윽박지르니 엄마라는 나만 이상하고 나쁜 사람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아빠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결국 딸을 달래는 일은 내 몫이었다. 비행기가 도착하자마자 거짓말처럼 멀쩡하게 돌아다니는 딸이 순간 미웠다.
우리 아이들은 식탁 앞에서 밥을 먹을 때도 엄마 쟁탈전에 나선다.
큰 아이가 말을 하면 막내 딸이 그 사이를 치고 들어온다. 둘째도 이에 질세라 말을 많이 해야 하지만 첫째와 막내 사이에서 말을 하려다 끊기고 끊기고 한다. 엄마에게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서 관심 받고 싶어서 그러는 걸까. 들어주고 맞장구 쳐 주다가도 나도 지친다.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통 이야기의 주제는 학교에서, 유치원에서 내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잘했다라는 내용이다. 둘째와 나는 들어주는 사람이다. 내 자신도 말을 하는 것보다 들어주는 것을 더 좋아하지만 우리 삼 남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도 지친다. 누군가는 복 받은 소리를 한다고 질타할지도 모른다. 애가 말을 안 해서 속이 터진다는 사람이 주변에 많이 있을 것을 보았다. 특히 남자 아이를 가진 부모들은 그 속을 말할 수가 없다. 나도 한 때 그랬으니까. 도대체 학교에서는 무슨 일이 있는지, 유치원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cctv를 반에 설치하고 싶을 정도니까.
엄마의 역할만 컸다면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잘 표현하는 아이로 자랐을까.
그래도 아빠라는 존재가 집에 있기는 있었다. 매일같이 "아빠는?" 을 외치는 엄마지만 집에서 아빠의 역할도 한 몫 해 줬다.
심지어 우리 집 아이들은 엄마보다 아빠에게 얘기하는 것을 더 편안해 하기도 한다. 엄마는 말을 들어주기는 하나 ‘응. 그래. 그랬구나…’ 정도의 반응이거나 잔소리로 이어진다. 하지만 아빠는 반응을 해 준다. ‘그래? 그 친구가 변화구를 던질 줄 안다고? ‘ ‘친구가 강아지를 키운다고? 아빠도 예전에 키웠는데 이런 점이 좋더라.’ 등의 반응을 해 주거나 또 다른 질문을 던져준다. 가끔 아들과 아빠가 서로 자기 말만하고 듣고 싶은 말만 자기해석대로 들어서 중간에 내가 통역을 해주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다. 특히 게임 대화에는 엄마는 끼어들기 힘들다.
가정에도 아빠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시야 하지 않을까. 아빠도 엄마만큼 다 할 수 있다는 칭찬을 많이 하는 것도 방법인 것 같다. 아이들도 아빠가 해 주는 빵이 더 맛있고 아빠가 끓여주는 라면과 짜파게티를 더 좋아한다. 뚝딱뚝딱 뭐든 고쳐주는 아빠를 좋아하고 마트에서 온갖 시식을 자기들과 같이 해 주는 것을 좋아한다. 집에만 있는 엄마보다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려 하는 아빠를 더 좋아하게 끔 아빠를 가정으로 자꾸 끌어들인다.
앞으로 "엄마!" 라는 말보다 "아빠!"라는 말도 자주 들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