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남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불쌍하지 않아요!
“남자 아이만 둘이에요? 딸을 하나 더 낳아야겠네~ 엄마는 딸이 있어야 해~”
막내를 날 때까지 항상 듣던 말이었다. 아들 둘만 데리고 외출을 하면 항상 불쌍하게 보는 시선, 그리고 꼭 따라오는 말은 하나 더 낳으라는 말이었다. 그 때 내가 할 수 있는 답은 “딸이라는 보장만 있으면 낳지요.” 였다.
아들들은 에너지가 정말 넘쳐난다. 한 여름 가만히 앉아있어도 땀이 주르륵 흐르는 날에도 밖에서 온 힘을 다해 놀고 마치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하고도 지치지 않는 체력을 가지고 있다. 같이 놀아 주다가도 그 에너지를 쫓아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어렸을 때도 해가지도록 밖에서 놀다가 엄마에게 혼나곤 했던 기억이 있다. 남자 아이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노는 날은 내 집은 포기해야 한다. 술래잡기를 한다고 창고에 쑤셔두었던 모든 물건은 이미 밖으로 ‘안녕? 오랜만이야!'라고 나에게 얼굴을 들이미는 것은 기본이다. 도저히 몸을 웅크리고 들어갈 수 없는 곳까지 아이들은 파고 들어가서 숨는다. 집에 공룡 서너 마리가 뛰어다니는 울림은 이미 겪어 본 아들 엄마들은 알 거다. 남자 아이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얘기는 “가만히 앉아있어!” 라는 말이 아닐까.
남자 아이를 키우다 보면 또 하나의 벽에 부딪힌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과 말을 나누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일 줄이야. 어린이 집이나 유치원에 다닐 때는 선생님과 소통이라도 할 수 있고 내가 언제든지 전화나 메모로 질문을 할 수 있었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그 답답함을 이루 말 할 수가 없다. 아무래도 학교는 질문이나 건의에 있어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모든 아이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남자아이들 같은 경우는 대부분 집에 와서 말을 아껴주신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은 알림장 몇 줄로 그 날일을 짐작하거나 주위에 집에 와서 잘 얘기하는 아이엄마에게서 듣고 온다. 그런 다음 내 아이에게 물어본다.
“오늘 짝 바꿨다면서?”
“응”
“짝은 누구야?”
“이름이 뭐더라. 잘 모르겠어.”
“같은 반인데 이름을 몰라? “
“응”
뭐 이런 식이다. 스무 고개는 늘 상 있는 일이다. 그러다가 머리가 크기 시작하면서 두 번 이상 같은 말을 물어보면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그래서 딸이 있기 전까지 내 입에서는 정말 남자들이란!! 을 달고 살았다.
물론 우리 딸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예민한 편이고 각각 아이들마다 성격이 다 다르니 일반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딸들의 공통점은 '징징이'를 친구처럼 달고 산다. 그리고 감정선이 길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엄마 껌딱지다!
남자아이들이 이런저런 이해하기 힘든 점도 있지만 감정 처리에 있어서는 정말 깔끔하다. 엄마가 소리지르고 야단을 쳐도 그 순간만 효과가 있고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그리고 평상시처럼 돌아와 나에게 말을 건다. 화를 내고 나 혼자 미안해 했던 순간이 무안할만큼 감정 정리가 빠르다. 하지만 딸들은 그렇지 않다. 나만 봐도 화가 나면 남편과 싸울 때 그 때의 일을 끄집어 내고 또 끄집어 내면서 절대 잊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인 것 같다. 일단 딸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내가 하라고 하면 그 때부터 시작이다. '징징이' 친구를 불러와서 울기 시작한다. 곧 유치원 차가 올 시간이고 엄마 마음은 타 들어가는데 안 간다고 버틴다. 어느 겨울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기분 좋게 차를 타러 무사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 밖으로 나오는데 성공! 하지만 밖에 나오니 울기 시작했다. 왜 그러냐고 하니 춥단다. 추워서 자기는 유치원에 못 가겠다고 울기 시작했다. 추워서 우는 아이도 있었구나. 그런 아이가 내 딸이구나를 그 날 철저히 느꼈다. 결국은 울려서 차를 태워 보냈다. 그래도 지금은 유치원에 다니고 조금 컸으니 그 정도다. 어린이 집 다닐 때는 현관을 들어가고 들어오는 데까지 과정이 정말 나를 지치게 했다. 어린이 집 차에서 내리자마자 집까지 가는데 몇 발자국 되지도 않는다. 그런데 차에서 선생님이 올리고 싶지 않은 지퍼를 채워서 화가 난 것을 차에서 내리고 선생님이 사라지는 순간 일이 벌어졌다. 울기 시작하면서 길바닥에 드러누워 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기관에서는 최대한 잘 보이려는 스트레스를 엄마를 보자 그렇게 풀어버렸던 것이다. 남자 아이들에게서 절대 볼 수 없는 '잘 보이려는 스트레스'를 딸을 키우면서 그런 점이 있구나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딸이 올 시간이 되면 기쁘기도 하지만 나도 스트레스를 받았다. 오늘은 또 어떻게 기분 좋게 집까지 데리고 갈 수 있으려나… 하늘은 나에게 딸을 주는 기쁨을 주시더니 이런 시련 또한 주시는구나.
툭툭 던져도 엄마 말을 말로 듣는 남자아이와 어투가 조금만 평상시와 달라도 징징이 친구를 데려오는 딸.
딸이 있어서 물론 매우 좋다. 그래도 나는 남자애들의 엄마 편이 덜 힘든 것 같다. 키울 때 부모에게 주는 자식의 기쁨은 아들, 딸 다 같지 않은가. 남자 아이들만 있는 엄마는 딸을 가진 엄마들의 고충을 보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 것 같다. 고로 아들 가진 엄마들은 결코 불쌍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