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셋 엄마 맞아?

by 늘보

1. 애 셋 엄마 맞아?


“자기, 애 셋 엄마 맞아?”, “여기 애 셋이 사는 집 맞아?”

“아니 뭘 그래, 자기네도 깨끗하면서…”


나는 종종 이런 질문들을 받는다. ‘아니야’라는 상투적인 답을 하면서 내심 기분은 좋다. 그냥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지만 나에게도 칭찬은 무엇인가를 더 할 수 있도록 ‘용기’라는 것을 심어준다. 집안일, 육아 등은 아무런 보상도 칭찬도 없다. 늘 있는 공기처럼, 늘 같은 일을 반복한다.


칭찬을 들어 기분이 좋기는 하나 도대체 아이 셋을 가진 엄마는 어떻게 하고 다닌다는 얘기지? 드라마 설정처럼 뽀글 머리 파마에 몸 빼 바지를 입다만 듯한 모습? 아이가 셋 이상이면 집안은 장난감과 온갖 물건들로 어질러져 있어야 하는 건가? 아이가 많은 엄마들은 왜 저런 질문을 우리에게 하는지 식상한 얼굴로 상투적인 대답을 한다.


내 모습이 어떻게 비치는 것일까? 가끔은 신경이 쓰인다. 아니,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나는 ‘나’ 이외에 아이 셋의 대문이기 때문이다. 주위에서 ‘아, 이제 엄마 코스프레하러 가야 할 시간이다.’라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 어찌나 공감이 가던지. 나는 엄마야!라는 콤플렉스에 ‘나’를 잊어버린 듯했다.


내 결혼 생활 계획에서 아이는 단 한 명이었다. 하지만 임신과 출산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걸까. 뒤를 돌아보니 내가 애 셋 엄마가 되어있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우리 부부가 계획한 아이는 바로 둘째뿐이었다. 첫째와 셋째는 계획 없이 나에게 온 선물이라고 해 두자. 내게 아이가 둘째까지 있을 때만 해도 세 명 이상인 가족이 지나가면 “어머, 애가 셋이야. 대단하다. “라고 하면서 뒤를 몇 번씩 돌아봤는지 모른다. 그리고 내가 아이가 두 명 일 때만 해도 다둥이라는 단어는 아이가 세 명 이상인 가족을 얘기할 때 그렇게 불렀었다.


그래도 위안으로 삼는 것은 첫째, 둘째가 아들! 그리고 막내는 딸이라는 점이다. 막내가 딸이라서 어깨 펴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아이의 성별이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내가 아들 둘을 데리고 다닐 때 나를 보던 시선들… 아들 둘만 또는 셋만 가진 엄마들은 공감할 것이다. 동네 엘리베이터에서나 야외로 놀러를 갔을 때 “딸 하나 더 낳아야지.”라는 말을 하면서 얼마나 불쌍하게 나를 쳐다보시던지. “엄마는 딸이 있어야 해!” 나는 살가운 딸이 아니라 그 말에 공감하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나와 아들 둘을 마주하는 세상의 시선은 그랬다.


“딸!” 나도 그때는 딸 가진 딸딸 가진 엄마가 너무 부러웠다. 예쁜 핀, 핑크 색 옷, 반짝 거리는 구두를 사서 딸 가진 엄마에게 선물을 해 보기도 했다. 나는 가질 수 없으니 대리만족이라도 느꼈던 것 같다. 솔직히 둘째를 임신했을 때(첫째가 아들인 엄마들은 다 그렇지 않을까) 딸이라고 확신을 했었다. 첫째와는 다르게 단 것을 많이 먹었고 예쁜 것만 보고 다녔었다. 주위에서도 “왠지 딸인 거 같아~”라고 헛바람도 넣어줬었다.


첫째와 남편과 입체 초음파를 찍으러 간 날 내가 보았다. 남편도 보았다. “엄마, 저 아들이에요~”라는 표시를… 아, 그때의 기분이란… 심지어 시아버지는 둘째 출산을 했을 때 “아들 확실하니?”라는 질문으로 딸을 기다리셨다는 마음을 들키게 되었다. 시누이는 아들 딸을 출산했는데 나는 아들만 둘이었다. 아들 딸을 고루고루 한 번에 자식 농사를 잘 지은 엄마들이 대단해 보였고 존경스러웠다. 아이 성별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하면 벌받겠지만 결론적으로 이제는 나도 부러운 엄마의 반열에 올랐다.


아이들 성별이 뭐라고 엄마들은 이런 것에 그렇게 좌절감, 우월감, 행복, 슬픔 등의 감정을 느끼는 건지… ‘엄마’라는 무게감이 그런 것이다. ‘나’ 였으면 이런 기분을 전혀 느끼지 못했을 것 같다.


결혼 전, 나는 영어 강사였다. 초등학생, 중학생을 가르쳤는데 특히 초등학생을 더 많이 오래 가르쳤다. 아이에 대한 이해도 개념도 없었던 시절이라 아이들의 감정과 학부모들의 감정을 같이 공감하기에 너무 부족했다. 일단 영어라는 과목을 가르치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 당시 학부모와 학생들의 상담과 고민들이 지금 ‘엄마’라는 책임을 달고 나서 하나하나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로 사는 삶에서 ‘엄마’라는 단어가 추가될 때 두 개의 삶을 동시에 살아하는 게 아닐까.


신혼이 없이 바로 첫아이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셋째가 태어나기까지 세 아이를 키우는 시간만 10년이 걸렸다. 출산을 하고 나서 중간중간 산후 우울증(나는 몰랐으나 남편이 느꼈단다.)이 있었고 나의 10년은 가사와 육아로 그냥 흘러갔다. 나는 영재 맘도 아니고 대단한 홈스쿨을 하는 엄마도 아니다. 그렇다고 살림 쪽으로 대단하게 잘해서 파워블로거나 인싸도 아니다. 조금 깨끗하게 살고 조금 정리정돈을 잘할 뿐이다. 친정 엄마나 아빠와 통화를 하면 “나이가 드니 할 일이 없어.” , “눈을 뜨고 아침이 되는 것이 정말 싫더라.”라는 말을 최근 들어 종종 하신다.


나도 이제 40에 들어섰다. 내 인생 40년을 살았다면 앞으로 얼마만큼 더 살지 모르지 않은가. 40살까지는 무난히 별 탈 없이 살았지만 몸이 갑자기 아플 수도 있고 예기치 못한 사고가 날 수도 있고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두렵게 느껴졌다. 또 한 가지. 나이가 들어서 절대 자식에게 기대고 싶지 않고 심심하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나는 셋이다. 셋 다 잘되면 좋겠지만 자식 농사가 어디 내 뜻대로 되겠는가. 아직 초등학생, 유치원 생이지만 갑자기 엄마라는 존재가 사라지면 아가들은 어떻게 살까. 두려움이 밀려왔다. 10년 동안 주부로만 사는 내 모습도 내 삶의 일부고 살아가는 에너지들이지만 앞으로 몇 년이 남았는지 모르는 내 인생을 어떻게 그냥 엄마라는 이름으로 계속 흘려보내? 아니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 이 고민을 하기 시작하면서 세 아이와 남편에게 계속해서 얘기했다. “엄마, 나가서 이제 돈 벌 거야. 엄마가 집에서 너희들 챙겨주지 못할 수도 있어.” 남편에게도 “돈 벌 거야. 그러니까 당신도 집안 일도 좀 하고 회사도 요즘에 탄력 근무 젠가 뭔가 한다면서. 내가 나가야 할 때는 당신도 그런 것 좀 써.” 육아와 가사를 전부 내게 맡겨놓고 회사에만 집중하는 남편이 밉기도 했다. 나도 일을 같이 할 때는 둘이서 같이 신경을 써서 마음 편히 일을 하기에는 무리였다. 회식도 눈치를 봐야 했고 야근도 눈치를 봐야 했다. 하지만 남편은 지금 마음 편히 회사에 집중하지 않은가. 나도 내 일에 집중하고 싶어 그렇게 말은 했다. 실질적으로 돈 벌 준비는 안되어있었다. 그냥 허세를 먼저 부린 것일 뿐. 정말 허세였다. 일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나가서 일을 하면 우리 아이들은 포기해야 했다. 등 하교할 때 엄마는 집에 없을 것이고 늦게 들어와서 겨우 치워놓고 다시 나가는 일상으로 바뀌어야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우리 아이들을 놓고 나가서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일단 집에서 해야 하고 오전 시간에 해야 하며 최대 4~5 시간 정도만 할 수 있었다. 그런 일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돈이 들지 않아야 했다.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문화센터, 구청, 시청 등등. 자격증! 그래! 이거야!


드디어 내가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 그동안 미뤄왔던 일을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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