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인다는 게 뭐지?”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건 사람들이 너무나 잊고 있는 건데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여우가 말했다.
“누군가에게 길들여 진다는 것은 눈물을 흘릴 일이 생긴다는 것인지도 몰라.”
<어린 왕자> -생텍쥐페리-
어느 날 아침, 눈을 떠 보니 방이 훤하다. 분명 어두컴컴한 시간인데 방 안은 이미 해로 가득 차 있다. 겨울이 언제 또 이렇게 스쳐지나 간 걸까. 조금씩 밝아 오는 아침을 느끼지 못할 만큼 아주 서서히 겨울은 우리 곁을 떠나고 있었다. 그 동안 춥고 어두웠던 아침에 길들여져 이제는 밝은 아침을 맞는 일상이 어색하다. 생각지도 못하는 순간 익숙함은 어느새 몸에 베어버리고 자연스럽게 일상에 똬리를 틀고 앉는다. 그렇게 오늘도 길들여지고 또 길들여지는 삶을 살고 있다.
가장 최근에 나를 길들여 놓은 것은 마스크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 가끔 썼던 마스크는 끔찍할 정도로 답답하고 견디기 힘들었고 누군가가 내 숨을 조여 오는 듯한 기분을 마스크를 쓸 때마다 느꼈다. 미세 먼지가 자욱한 날은 아예 집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 했다. 절대 익숙해 질 수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마스크는 생존 하기 위해서 꼭 필요했고 타인과 공존하기 위해서도 절실했다. 3개월, 6개월, 1년, 2년을 넘어가 내 삶의 일부분이 되어버리니 이제는 옷처럼 당연히 써야 하는 필수품이 되었다. 마스크까지 나를 길들이다니. 문득 나를 길들여놓은 것들에 섬뜩 놀란다. 나를 길들여 놓은 것들은 무엇인지 잠시 생각해 본다. 책을 읽으면서 문장에 단어에 길들여져 글과 하나가 되어 느끼고 생각하고 줄을 그어가며 읽고 있는 나를 본다. 좋아하는 노래를 듣다 보면 흥얼거리며 어느 새 장단을 맞추고 있다. 첫째가 나에게 왔을 때 너무나 사랑스러웠지만 아기의 울음 소리가 그렇게 우렁차고 혼을 빼 놓는지 처음 알았다. 엄마라는 단어에 길들여져 가며 아이의 울음 소리 하나만으로도 무엇을 원하는지 표정 하나 하나까지 다 읽어내는 마법을 껴 안았다.
길들여진다는 것은 내가 너에게 소중한 무엇이 된다는 의미이다. 소중한 의미로 다가오면 특별한 경험을 한다. 특히 길들여진 사람이나 사물과 이별을 잠시 하거나 영영 볼 수 없게 될 때 이상한 징후가 나타난 적이 있지 않은가. 가슴에 통증을 느끼며 아프고 또 아파 하루 종일 울기도 하고 비슷한 것을 찾아 대신 그 빈 자리를 채우려 하기도 한다. 또 길들여진 것들에게서 맡았던 특별한 향기를 찾아 헤매기도 한다. 누군가의 손맛이 그리워 음식점을 돌아다녀보지만 똑 같은 맛을 찾을 수 없어 그리워하다 지친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그들에게 애칭을 붙여 불렀던 기억을 떠올리며 서글픔에 잠기기도 한다.
나의 연인에게 길들여지고 부모의 손길에 길들여진다. 어느 날은 밖에서 들리는 소음이 더 이상 시끄럽게 느껴지지 않으니 그 또한 길들여진 것이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일상에 길들여지고 어디선가 풍겨오는 담배 냄새에도 길들여진다. 어질러놓은 집안일에 길들여지고 때가 되면 식사준비를 하는 일상에도 길들여진다.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내 안으로 베어 든 관계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가고 있음을 잊고 지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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