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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전 열한시 Mar 04. 2021

김치 꽁다리를 먹기 시작했다.

살림을 시작한 지 16년 만에 내 손으로 처음 김장을 하고 달라진 점이 있다면 김치를 바라보는 내 눈에서 꿀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애틋할 수가 없다.

나는 누군가에게 돈을 줄 수는 있지만 김장김치만은 절대 내어줄 수 없을 것 같다. 이것은 나의 창조물이다.

김장에 쏟아부은 노고와 정성이 어떤 것인지 마흔이 넘어서야 알게 된 것이다. 김장을 위해 마늘을 하나하나 까고 찧고 쪽파를 다듬고 수많은 재료를 씻어 건지고 써는 것은 하나의 수행 같았다. 한 가지 목표를 위해 몸을 고되게 움직이는 일은 머릿속을 맑아지게 하는 기분이 든다. 마지막 목표에 도달했을 때의 기쁨이란 허리가 아픈 것쯤에 질 수 없는 환희였다.

그리고 나는 그 환희를 맛본후에야 김치 꽁다리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한 포기 꺼내 썰면서 처음으로 꽁다리에 대해 생각했다.

그전까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숭덩숭덩 썰어 꽁다리를 버렸다. 먹을 수 있다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가끔 꽁다리를 김칫국에 넣기도 했지만 먹지는 않고 국물을 우리는 정도로만 여겼었다.

그런데 그 꽁다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꽁다리를 잘게 썰어 김칫국과 김치찌개에 넣었다.

딱딱하지 않고 적당히 먹을만한 말캉한 식감이었다.

무와 배추 그 사이쯤의 맛이다.

김치를 썰면 반드시 꽁다리는 다시 김치통에 담아둔다.

쫑쫑썰어 김치볶음밥에도 넣는다. 깍두기 볶음밥 비슷한 맛이 난다.

살림을 하며 세운 나의 철칙은 식재료를 아끼지는 않지만 버리지는 않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십수 년 동안 꽁다리를 버려왔던 것이다.

버려지는 식재료가 없도록 살림하는 것이 늘 뿌듯했었는데 나는 그 귀한 식재료를 음식물 쓰레기통에 내다 버린 것이다.

자식은 부모님 것은 귀한 줄을 모른다.

내 것이 되고 나서야 귀한 줄을 안다.


엄마가 온 정성을 다해 만들어 주신 김치를 귀한 줄도 모르고 먹었었다. 힘드신 줄도 모르고 덥석 덥석 받기만 했었다. 싱가포르에서 잠시 살던 때에도 엄마의 김치는 커다란 깡통 박스에 담겨 어김없이 내게로 왔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당연한 것인 줄만 알았다. 입으로만 감사하다고 말했지 가슴으로 절절하지는 않았다.

나는 김치에 담긴 사랑의 깊이를 조금도 알지 못했다.

내손으로 꼬박 이틀에 걸쳐 김장통을 채우고 나서야 그 깊이를 짐작하게 된 것이다.

생각해 보면 늘 그랬다. 엄마가 주는 모든 것이 자식에게는 공짜다.

엄마 돈으로 사 입던 옷은 쉬웠지만 내 살림을 꾸리며 사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나 역시 엄마처럼 자식에게 주는 것은 쉽다. 다소 비싼 패딩도 아이에겐 쉬웠고 내게는 어렵다.

하지만 아이는 나처럼 모르리라

김장 김치를 꺼낼 때마다 엄마를 생각한다.

꽁다리를 썰때마다 십수 년간 버려온 수백 개의 꽁다리를 생각한다.

내 아이들도 나만큼 나이를 먹으면 내 생각을 해줄까

내 아이들은 무엇에서 나를 만나고 나를 또 떠올려줄까


올해도 여름이 가까워오면 어김없이 아파트 음식물 쓰레기통에 묵은지가 보일 것이다.

씻어서 쌈 싸 먹으면 더없이 맛있는 귀한 묵은지

부디 쉽게 버리지 말기를

그 정성 하나도 버리지 말기를

부모님 것도 귀하다는 것을 이제 잊지 않으려고 한다.

그 마음이 꽁다리에 담겨 입 속에서 오물거린다.


@a.m_11_00

인스타그램에 매일의 살림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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