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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전 열한시 Feb 28. 2021

나는 나의 직업과 사랑하는 중이다.

전업주부를 보는 두 가지 시선이 있다.

“한가해서 얼마나 좋니? 부럽다!”

“뭐 좀 배워보지 그래, 심심하지 않니?”

비슷한 듯 하지만 조금 다른 시선이다.

전자는 주부의 여유로운 시간을 부러워하고 후자에는 주부는 발전 없이 도태되어 간다는 편견이 깔려있다.

하지만 두 가지다 틀렸다.

나는 그다지 한가하지도 않고 도태되어 가지도 않는다. 주부로써 조금씩 발전해 가고 있는 중이다.

전업주부의 24시간 역시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바쁘게 흘러간다. 모든 직업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 주부 역시 그럴 뿐이다. 게으른 주부는 있을 수 있지만 한가한 주부는 많지 않다.


코로나로 주부의 역할은 배로 늘어났다.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청소를 하고 정리를 하고(청소와 정리는 다르다.) 아이의 수업과 생활을 돕는다.

주부의 큰 역할 중 하나는 가족을 서포트하는 것이다.

운동이나 일에서, 다른 사람을 지원하거나 격려하고 응원하는 일을 서포트(support)라고 한다.

럭비 경기에서는 공을 가진 플레이어를 자기편 플레이어가 후방에서 지원하는 것을 말한다.

어찌 이 일이 하찮을 수 있을까

골을 넣는 사람 뒤에는 골을 넣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

추운 겨울날 아이를 학교 앞에 데려다주고 오는 일, 출근하는 남편의 모닝커피를 내려주는 일,

경기에서 잘 뛸 수 있도록 선수복을 깨끗이 준비해두는 일, 지쳐 돌아온 선수들의 사기를 올려놓는 일

나는 그것에서 보람을 느낀다.

모두가 자신의 이름을 빛내기 위해 전방에 서야 행복한 것은 아니다. 좋은 기회로 책을 쓰고 있지만 나의 직업은 여전히 작가가 아닌 주부다.

나보다 이 자리에서 더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다른 일들은 누군가로 채워지겠지만 이곳만은 나여야 하는 곳, 나는 가족이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이자 가장 많이 사랑받는 사람이다.

집에서 사용하는 물건들을 분석해 유해한 것들을 걸러내고 영양소를 따져 식단을 꾸려간다. 집이라는 공간을 효율적으로 만들어 가족의 생활이 더욱 안락할 수 있도록 만든다. 환경에도 관심을 가지고 세상과 계속 소통하기 위해 노력한다.

주부 초보 시절과 지금 내가 아는 살림 상식의 차이는 여느 경력직 못지않게 크다. 나는 분명 17년이란 시간 동안 주부로성장해 가고 있었다.

나는 세상의 모든 주부들이 자부심을 갖기를 바란다.

다른 일을 하기 위해 해치워야 하는 가사노동은 불행하다.

하지만 달콤한 잼을 저으면서도 한 손에는 책을 들고,

설거지를 하며 음악을 듣는 나는 꽤 행복한 하루를 살고 있다. 바쁜 틈에서 짬을 내어 이렇게 잠시 글을 쓸 수 도 있다.

내가 아는 한 주부는 만족도가 높은 직업군이다.

물론 공격수가 되고 싶은 성향이라면 이 직업과는 맞지 않을 것이다. 다른 직업도 그것은 마찬가지이다.

적성에 맞다면 주부는 무엇보다 보람된 직업일 수 있다.

나는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에게 늘 대단하고 멋지다고 말해준다. 정말 진심으로 그렇다.

친구 역시 전업주부인 나를 그렇게 봐주길 바란다.

나는 나의 직업과 매우 사랑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a.m_11_00

인스타그램에 매일의 살림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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