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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전 열한시 Apr 27. 2020

골드스타를 아시나요?

오래된 물건이 내게 가르쳐 준 것

낡고 필요 없어진 것들을 버리는 것이 미니멀 라이프의 목표 같지만 사실 나의 미니멀 라이프의 목적은 내가 진정

으로 좋아하는 것들로 공간을 채우는 데에 있다.

그것들을 남기고 오래도록 잘 볼 수 있도록 여백을 만드는 일

비움은 그것을 위한 과정이다.


너무 많은 물건에 둘러싸여 빛나지 않는 것들에 빛을 더해주는 작업

그것이 나의 비움이다.

시장에 있는 물건과 명품 매장에 있는 물건의 첫 번째 차이는 바로 진열법에 있다고 한다.

물건도 사람도 쾌적하려면 적정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사람도 선을 넘어오는 사람은 피곤하기 마련이니까


나는 오래된 벽시계를 여러 개 비웠다.

그리고 그 보다 몇 배 더 오래된 빨강 탁상시계를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었다.

이 시계의 이름은 골드스타-엘지의 옛 이름이다.

어린 시절 기억 속 몇몇 살림살이들이 골드스타란 이름으로 우리 집을 지키다 거짓말처럼 사라져 갔다.

그리고 남은 유일한 하나

두 번의 수리를 거치긴 했지만 여전히 건강하게 나의 시간을 달리고 있다.


시계는 일흔이 넘으신 나의 친정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십 년 전쯤 엄마의 허락을 받고 친정집에서 들고 온 것이다.

이 빨간 시계엔 나를 당기는 매력이 있었다.

그것은 진정한 레트로였고 추억으로 가는 열쇠 같았다.


쉰에 가까운 시계의 나이

서리가 내린 은발의 내 어머니, 당신이 꽃같이 예쁘던 시절, 첫 월급으로 마련한 첫 번째 살림이었다.

얇은 유리를 가진 이 시계가 여러 번의 이사와 세월에도 깨지지 않았다는 게 새삼 신기하다.


엄마의 젊은 날과 나의 유년시절을 고스란히 지켜보았던 탁상시계는 내 아이들이 커가는걸 그렇게 또 지켜보고

내가 지금의 엄마처럼 은발로 변해가는 시간들을 함께해 줄 것이다.


나는 이 시계로 인해 물건을 살 때 언제나 물건의 마지막을 생각하게 되었다.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이 멋스러운 이 시계처럼 내가 사들인 물건이 오래도록 사랑받고 귀하게 남았으면 좋겠다.



지난겨울 나는 몇 년을 망설이던 M사의 백 퍼센트 캐시미어 코트를 한벌 샀다. 이 코트를 처음 만난 이후 그 어떤 코트도 내 마음을 뺏지 못했다.

나는 이 코트를 호호 할머니가 될 때까지 입을 계획이다.


이 집으로 이사오며 산 두 개의 세븐 체어는 대를 물려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구입했다. 50년대 만들어진 빈티지 세븐 체어가 아직도 사랑받는다는 기사를 보고 나는 이거다 싶었다.

먼 훗날 나의 아이들이 하나씩 이 의자를 나눠 가졌으면 좋겠다.

 

아이가 첫 번째로 신었던 운동화를 나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나는 오래오래 보고 싶다.

아이의 발이 얼마나 작았는지

그 신발을 가끔은 꺼내서 만져보고 싶다.

지금은 내 발보다 더 커버린 녀석의 작고 꼬물거리던 발가락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나는 요 작은 운동화가 아직도 여전히 설렌다.


다른 이의 비움과 나의 비움이 같을 수는 없다. 물건을 고르는 기준과 안목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이 모든 것에 철학이 깃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애정이 깃든 물건은 나에게 좋은 에너지를 준다.


시간을 확인할 때마다

의자에 앉을 때마다

코트를 걸칠 때마다

나는 행복했다.


@a.m_11_00

인스타그램에 매일의 살림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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