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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전 열한시 Jun 05. 2021

비움보다 중요한 것

친구들과 함께 쇼핑을 할 때 만 원짜리 스카프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는 나를 보고 친구들이 의아해한 적이 있다.

그날 나는 스카프의 가격을 본 것이 아니다. 이 스카프가 정말 나의 취향에 맞는 것인지 잘 쓰일 수 있는 물건인지를 고민한 것이다.

그게 얼마 한다고 고민하느냐는 친구들의 말에도 나는 결국  원짜리 스카프를 사지 않았다. 하지만   오랫동안 위시리스트에 있던 다소 비싼 캐시미어 목도리는 단번에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겨울이면  목도리를 두를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만 원짜리 스카프와 캐시미어 목도리는 나에게 둘 다 똑같은 하나의 물건이다. 싸다는 이유로 혹은 비싸다는 이유로 사거나 제외되지 않는다.

얼마나 오랫동안 잘 쓰일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소비의 이유다. 물건의 가격을 시간으로 나누어 보면 대부분 답을 얻을 수 있다.


내 취향을 담지 않은 스카프는 아무리 파격적인 할인에도 내 마음을 얻지 못했다. 한두 번 쓰다가 버려질 것이라면 만원도 아까운 돈이다. 소비에 있어 물건의 가격은 염두해야 할 중요한 요소지만 가격이 소비의 결정적인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경험상 가격이 높을수록 대부분 품질이 우수하고 견고하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침실에서 쓰고 있는 저가의 작은 원형 테이블은 디자인이 마음에 들고 쓰임이 확실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취향을 알고 용도가 명확한 좋은 물건을 고르는 안목이다.

쉽게 사들인 취향 없는 물건들을 비워내고 나면 소비는 신중해진다.

하나의 물건이 얼마나 지속 가능한 기쁨을 주는지가 중요하다.


한두 번 입다가 쉽게 의류 수거함에 넣으면 그뿐인 것이 아니다. 1초마다 트럭 한 대 분량의 섬유가 지구에 버려지고 있다고 한다. 쉽게 사고 쉽게 버려지는 물건들이 쓰레기가 되어 환경에 막대한 피해를 준다. 그리고 망가진 환경의 최대 피해자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비움은 채움의 무게를 깨닫게 한다.


쓰지 않는 물건이 내 공간을 잠식하며 나에게 주는 심리적 부담감은 결코 가볍지 않다. 쓰지 않는 물건을 바라볼 때 나에게 드는 부정적인 감정은 집에서의 행복을 갉아먹는다.

먼지는 쌓이고 정리는 어려워진다.

서랍을 열었을 때 좋아하는 물건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길 바란다.

비움보다 중요한 것은 버려질 물건을 더 이상 사지 않으려는 단단한 마음이다.


@a.m_11_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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