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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전 열한시 Jun 13. 2021

남향집의 여름

어린 시절 엄마는 “남향집에 살려면 3대가 적선을 해야 한다.”는 말씀을 종종 하셨다.

쭉 남향집에만 살아왔던 나는 남향집이 얼마나 좋기에 그런 말이 있는지 깊게 와닿지 않았었다. 그 말의 의미를 진정으로 깨달은 것은 결혼 후 서향집에 살면서였다.

서향집의 여름은 그야말로 찜통이었다. 오후 내내 두꺼운 통유리가 햇빛으로 달궈졌는데 정말 여름 해가 이렇게 긴 것이구나 날마다 증명되었다.

반대로 겨울은 추웠는데 늦게 빛이 들기 때문에 아침이 더디오고 추웠다.

반대로 동향집은 오후의 짧지만 아침 햇살은 좋았다.


만약 서향과 동향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생활패턴에 맞추면 좋다.

아침형 인간이라면 이른 아침 해가 들어오는 동향이

늦잠을 즐기고 오후에 활동한다면 오후에 해가 길게 드리우는 서향이 맞다.

둘 중에서는 하루가 더 밝게 시작되는 동향이 내게 더 맞았다. 하지만 한 여름만 아니라면 아이들이 하교 후 오후에 주로 집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오후가 밝은 서향집도 나름의 장점이 있다.


그냥 이런 저런 장단점 없이 가장 좋다는 남향집을 모두 지으면 될텐데  정남향 집은 갈수록 드물까? 특히  아파트에서는 귀하디 귀하다.  이유는 건설사들이   많은 가구를 배치하기 위해 정남향보다는 남동, 남서향을 위주로 짓기 때문이다.


그렇게 동향집 서향집을 거쳐 운 좋게 지금의 남향집을 만난 건 5년 전이었다.

정남향 집에서의 5년은 완벽했다.

더욱 감사한 것은 저층이지만 앞동이 옆쪽에 있어 우리 집에 들어오는 빛의 방향을 전혀 방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늘 고층만 살던 나는 눈앞의 초록을 즐길 수 있는 저층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나에게 저층이 주는 풍경들은 고층의 조망권을 앞선다.

여긴엔 초록을 감상할 권리가 있다.

봄이면 부엌 창에 벚꽃이 가득 담긴다.

해가 전혀 방해받지 않는 정남향 집 저층은 앞마당이 넓은 주택처럼 환하고 편안하다.


정남향 집의 겨울은 거실 가득 해가 든다.

집에 드는 겨울 햇살은 집에서의 시간을 풍요롭게 한다. 난방을 올리지 않아도 낮동안 춥지 않다.

겨울 풍경

반대로 여름엔 햇살이 사라진다.

겨울에서 여름으로 가까워질수록 서서히 해가 줄어드는데 정말 기가 막히게 계절을 따른다. 해을 이용할 줄 아는 똑똑한 남향집이다.

남향집의 에어컨은 절대 혹사당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친환경적이다.

여름이 오면 겨울에 빛이 바랠까 멀찌감치 놓았던 소파를 창가 쪽으로 바짝 당긴다.

여름 풍경


녹음을 즐기고 풍경을 더 담는다.

나는 이 집에서 오래오래 살 계획이다.

3대가 적선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아이들에게 엄마처럼 그 말을 종종 하고 있다.


@a.m_11_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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