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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전 열한시 Sep 03. 2021

정돈된 집에서 아이는 제 할 일을 한다.

오전의 살림 탐구

아이가 커갈수록 나의 그릇이 작음을 깨닫는 순간이 찾아온다.

아이가 어릴 때는 그저 잘 먹이고 잘 재우면 내가 좋은 엄마인 것만 같았다. 잠자리에 들기 전 다정한 목소리로 동화책 한 권을 읽어주고 나면 엄마로서의 하루는 완벽했다.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좋은 엄마로 살아가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이는 이제 대부분의 일을 혼자서 한다. 더 이상 엄마인 내가 가르치기 어렵다는 뜻이다. 수학도 영어도 내 손이 필요하지 않은 날이 오면서 이제 엄마의 웬만한 논리도 통하지 않는다. 사춘기의 긴 훈육은 결국 엄마만의 독백이 되곤 한다.

어느 날 아이가 학교에 가고 어질러져 있는 방을 바라보았다. 잘 깎아둔 몇 자루의 연필을 가지런히 수납하고 고장 난 샤프와 나오지 않는 사인펜을 버렸다. 다 푼 문제집을 치우고, 아이가 자주 쓰는 물건의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나는 ‘좋은 엄마’의 정의를 다시 세웠다. 엄마는 아이의 생활을 돕는 사람이라고.

성적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생활이다. 바른생활은 좋은 습관을 만들고, 좋은 습관을 가진 아이는 효율적인 학습법도 스스로 찾는다.

책을 읽게 하려면 책을 읽으라는 말보다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나는 아이의 미래를 고민하는 대신 좀 더 나은 책상의 위치를 찾으려 노력했다.

한편으론, 아이가 위안을 얻고 에너지를 얻는 곳 역시 친구가 아닌 집이 먼저이기를 바랐다. 아이는 집에서 쉬고 집에서 꿈을 꾼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이 집인 아이는 절대 비뚤어지지 않는다고 믿는다.

아이가 아끼는 기타를 가장 멋지게 수납할 질 좋은 나무 스탠드를 놓아주고, 잠잘 때 틀어두어도 거슬리지 않게 소리 없는 선풍기를 찾아냈다. 물건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도록 불필요한 물건을 치우자 아이의 집중력도 올라갔다.

아이가 환한 얼굴로 식탁에 앉아 재잘거릴 수 있도록 맛있는 한 끼를 준비한다.

살림에 공을 들이는 일은 많이 자란 내 아이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내가 아이를 사랑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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