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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전 열한시 Jun 16. 2020

하루를 마감하는 살림 루틴


십 년이 훌쩍 넘게 살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름의 살림 습관들이 시간만큼 쌓여간다.

그중 하나

주방 퇴근을 하기 직전 하루를 마감하는 나의 살림 루틴은 개수대의 거름망과 배수구를 청소하는 일이다.

물때와 악취의 원인은 바로 시간이다.

슬쩍 음식물 찌꺼기만 버리고 닫아둔 거름망은 세균의 온상이 된다.

설거지를 하다가 젓가락이라도 빠질 때면 그 아찔한 찜찜함이란


이곳을 위한 생각의 전환은 개수대 자체를 하나의 큰 그릇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저녁 설거지의 마지막은 개수대를 설거지하는 일이다.

매일매일 설거지한 거름망과 배수구는 맨손으로 만질 수 있을 만큼의 청결함을 뽐낸다. 강력 세제 따위는 필요치 않다. 주방세제면 충분하다.

일회용 숟가락을 다회용으로 사용하며 음식물 찌꺼기를 긁어내는 용도로 사용한다.

양파망을 거름망과 배수구 전용 수세미로 사용 중


설거지를 마친 거름망은 걸어서 밤새 건조해 둔다.

아침에 만나는 보송한 거름망과 배수구는 날마다 새 부엌을 열게 해 준다.


외면하고 싶은 일들의 답은 결국 직면해야 얻을 수 있다. 덮어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날잡아 하기 싫은 일을 해치우기 보다는 매일 매만지는 짧은 수고로 하기 싫은 일을 만들지 않는 방법을 택했다.


어떤 일이든,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고 해도 오랜 시간 반복하다 보면 그 안에 나름의 철학이 담긴다고 한다.

종일 수많은 양념병과 냄비가 오가던 싱크대 상판 위를 밤이면 깨끗이 비우고 정성껏 행주질을 한다.

복잡했던 하루도, 오늘의 고민도 함께 정돈되는 기분이 드는 이 시간이 참 좋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부엌,

소등하는 순간의 정돈된 평온함

깨끗해진 부엌처럼 인생도 그러하길

어지러운 순간에도 그것을 잘 정돈할 힘이 나에게는 있다.


매일의 좋은 습관은 곧 나에 대한 믿음이 된다.


오늘도 잘 자요 나의 부엌


@a.m_11_00

인스타그램에 매일의 살림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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