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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전 열한시 Dec 13. 2020

김장 독립

살림이 깊어진다

15년간 엄마가 만들어 주신 김치를 편하게 가져다 먹다가 두 해전부터 김장 독립을 했다.

엄마가 더 이상 힘들다고 하실 때까지 사실 직접 김장할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것은 언제나 엄마의 살림이었다.

가장 좋은 것은 엄마가 언제까지나 김장을 해주실 만큼 젊은 내 엄마로 있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불행히도 나는 엄마와 떨어질 준비를 해야 한다.

어쩌면 그것이 싫어서 엄마 솜씨를 물려받는다는 말이 싫었는지도 모른다. “배워둬야지”라는  말에는 슬픔이 묻어난다.

김장 독립을 하던 날 나는 비로소 진짜 독립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결혼 후에도 내내 연결되어있던 고리 하나를 끊고 나만의 진짜 살림을 살게 된 것이다.

그것이 못내 슬프기도 기쁘기도 했다.

작년에는 엄마가 집으로 오셔서 감독을 해주셨다. 나는 열심히 메모도 하고 동영상도 찍어두었다. 독립 2년차이지만 사실상 올해가 완벽한 첫 김장독립이다. 이제 남편과 오로지 둘이서 김장을 한다.

재료 다듬는 일이 김장 노동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남편 없이는 불가능하다. 우리가 먹을 김장을 늙으신 엄마가 아닌 우리가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 당연한 일을 가져오기까지 십오 년이란 시간을 엄마에게 미뤄 뒀었다.


전날 마늘과 생강을 다듬고 찧어둔다. 손이 많이 가는 쪽파와 대파를 다듬고 생새우의 이물질을 골라내고 멸치액젓을 부어 둔다. 멸치액젓을 미리 부어두면 생새우의 변질을 막을 수 있다.

찹쌀풀과 다시물도 끓여둔다.  

남편의 분주한 손, 고맙다는 내 말에 “내가 먹을건데 뭐가 고마워”라 말해준 남편

둘째 날,  절임 배추와 무가 도착하면 배추를 씻어 물기를 빼두고 무채와 토막 무를 길쭉하게 썰어둔다. 청갓과 적갓을 씻어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쪽파와 대파도 썰어둔다.  

고춧가루를 찹쌀풀에 풀어 불린 다음 농도는 다시물로 조절한다.

여기에 참새우젓과, 새우육젓, 김장용 생새우를 넣고 멸치액젓과 까나리액젓을 넣어 간을 맞춘다.

생새우나 새우젓은 다지거나 갈 필요가 없다. 찹쌀풀도 마찬가지이다. 찹쌀 알갱이가 보여도 나중에 모두 삭기 때문에 갈지 않아도 상관없다. 양념에 버무리면 모두 쉽게 삭는다.


채 썬 무채는 곱게 고춧가루로 물을 들여 양념과 버무린다.

무채가 숨이 죽으면 쪽파, 대파, 청갓, 적갓을 양념에 모두 넣어 섞는다.  

양념이 모두 준비되면 싱크대에 서서 버무린다.

김장은 바닥에 앉아서 하지 않고 싱크대나 식탁에서 서서 버무리면 허리가 아프지 않아 훨씬 덜 힘들다.

포기김치 중간중간에 길게 자른 토막 무를 살짝만 절여 넣어주면 염도가 낮아지고 무는 깍두기처럼 맛있게 익는다.

하루 이틀 베란다에서 잠시 숙성시킨 다음 김치 냉장고에 넣는다.

먹을 때 마다 감탄중인 김장김치와 수육의 조합


무엇이든 자기 주도형이 가장 머릿속에 들어온다. 자주 엄마 옆에서 봐왔지만 내가 하지 않고 도울 때는 온전히 내 것이 되기 어려웠다.

두 해 김장을 해본 나는 이제 김장이 그리 두렵지 않다. 하지만 이틀을 고스란히 쏟아부어야 가능한 살림의 고난도 영역인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사랑 없이는 건네줄 수 없는 것이 김치라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사랑하는 자식에게만 쉽게 내어줄 수 있는 것이 김장김치다.

엄마는 내가 김장을 해낸 것을 무척 기뻐하셨다. 마치 어린 딸의 키가 훌쩍 자란 것을 발견하고 기뻐하는 듯한 그런 웃음소리가 수화기 넘어에서 들렸다. 엄마는 드디어 기나긴 숙제가 끝났다고 하셨다.


엄마가 감당해온 김장의 무게를 짐작해 본다. 아직은 젊은 나에게도 김장은 버거운 숙제이다. 칠순까지 딸에게 김장통을 내민 엄마의 사랑은 어떤 깊이였을까

나는 그런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엄마에게 김장 도구들을 물려받고, 엄마의 레시피를 물려받고, 엄마의 맛과 사랑을 물려받는다. 나의 김장김치에서 엄마의 김치 맛이 났다.

살림이 그렇게 깊어진다. 나의 살림도 그렇게 나이를 먹는다.



2020년 김장 재료 비용

김장에서 가장 힘든 일은 배추를 다듬고 절이는 일이다. 절임배추를 이용하면 절반의 부담을 덜 수 있다. 한살림에 11월이 되면 절임 배추와 무를 예약 주문한다.

4인 가족 기준으로 1 절임배추 10kg 4 박스면 (혹은 20kg 2박스) 큰 김치통에 4통이 나온다. 우리 집 김치냉장고 맞는 양을 주문하면 좋다.

절임배추40kg 104,000원
다발무 2             6,900원
쪽파 3                 4,300원
대파 2                 3,700원
청갓 2                 3,100원
적갓 1                  3,100원
한살림 참새우젓 2      12,000원
한살림 새우육젓 1        51,700원
한살림 김장 생새우 2   17,000원
찹쌀                    9,200원   
생강                    5,300원
국물멸치             5,700원
멸치액젓             9,700원
고춧가루 1kg- 3    4,4000원
마늘 제외 총비용   419,000원

@a.m_11_00

인스타그램에 매일의 살림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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