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걸 '삐뚤거림의 미학'이라고 부르고 싶어.
안녕, D!
오늘 나는 느지막히 일어나서, 아침 운동을 건너뛰어야만 했어. 그 대신 책상 앞에 앉아서는, 펜을 들었지. 끄적끄적, 다른 일을 하다가 내 손도 잠이 깼을 무렵에 깨끗하고 빳빳한 종이와 편지 봉투를 꺼내들었어. 맞아! 오늘은 군대에 간 친구에게 편지를 썼어. 아, 물론 요즘에는 인터넷으로도 편지를 쓸 수 있더라고. 그래도 뭔가 인터넷으로 몇 줄을 적어 보내는 것과 직접 또박또박, 한 글자씩 새기듯이 적어내린 그 편지랑은 느낌이 다르잖아?
편지를 적다보면 있지, 가끔은 삐뚤빼뚤 줄도 안맞기도 하고, 제멋대로 들쑥날쑥하기도 하고, 때로는 글자 하나, 문장 하나가 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어떻게든 수정해보려다가 종이를 아에 새것을 꺼내야 할 때가 있어. 그리고 사실 편지를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팔이 아픈 일이야. 게다가 간편하게 우표를 사서 붙인 다음에 보내버리면, 그게 그 사람에게 잘 도착했나 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서 답장이 와야만 알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말이야. 여러모로, 불편한 일이 많은 것 같아.
하지만 나는 그런 삐뚤거리는 편지에는 반듯하고 정갈한 이메일이나 인쇄된 편지, 아니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주고 받는 톡이나 문자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 뭔가, 말로는 형언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그 느낌이 있거든.
사실 내 책장서랍 속에는, 수없이 많은 편지들이 꽂혀있어. 가장 오래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땐가, 그러니까 10년도 넘은 거지. 그때 담임선생님께서 우리 반 아이들에게, 매주 토요일마다(그때는 토요일에도 학교를 갔었으니까) 아침자습 대신에 친구 한 명의 노트를 골라 그 친구에게 '칭찬 편지'를 적어주라고 하셨었거든. 우리는 3학년으로 올라갈 때 노트를 돌려받을 수 있었는데, 그렇게 돌려받았던 나의 노트에는 1년 간 같은 반 친구들이 삐뚤빼뚤 적어내린 편지들이 빼곡하게 적혀있었어. 나름대로 예쁘게 꾸미기도 한, 정성스러운 편지였지.
지금 읽어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그런 문장들이 적혀있기도 하지만, 그 노트를 열어보면, 콧잔등에 땀까지 맺어가면서 친구를 아끼는 마음을 꼭꼭 눌러담아 편지를 적던 토요일 아침의 우리 반 친구들이 기억나서 기분이 괜히 좋아져. 만약 그때 우리 모두가 메일을 적을 수 잇어서, 메일로 주고 받았다면, 아니면 그 편지를 인쇄해서 각자에게 주었다면, 그 때의 그 기분을 꼭꼭 받아 담는 것은 조금 힘들지 않았을까?
나는 그걸 '삐뚤거림의 미학'이라고 부르고 싶어.
편지가 주는 그 특유의 삐뚤거림, 나는 그게 참 좋아. 가끔은 알아보기 힘들기도 하지만, 편지 안에는 나를 위해 떼어준 그 친구의 시간과, 다음 문장은 어떤 것으로 적을까 고민하는 그 흔적들이 녹아있는 거잖아? 그래서 아주 가끔씩, 친구들이 나에게 적어주었던 편지를 모아둔 서랍을 열어 편지를 하나하나 읽어볼 때면, 그냥 괜히 참 행복해지더라고. 나는 그걸 '삐뚤거림의 미학'이라고 부를래.
아무튼 그래서 나는 이렇게, 가끔씩 편지를 써. 내가 그렇듯이, 그 친구도 내 편지를 받고 마음 한 구석이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삐뚤지만, 또박또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