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멜리아 Mar 28. 2016

D, 오늘은 편지를 썼어.

나는 그걸 '삐뚤거림의 미학'이라고 부르고 싶어.


안녕, D!

 오늘 나는 느지막히 일어나서, 아침 운동을 건너뛰어야만 했어. 그 대신 책상 앞에 앉아서는, 펜을 들었지. 끄적끄적, 다른 일을 하다가 내 손도 잠이 깼을 무렵에 깨끗하고 빳빳한 종이와 편지 봉투를 꺼내들었어. 맞아! 오늘은 군대에 간 친구에게 편지를 썼어. 아, 물론 요즘에는 인터넷으로도 편지를 쓸 수 있더라고. 그래도 뭔가 인터넷으로 몇 줄을 적어 보내는 것과 직접 또박또박, 한 글자씩 새기듯이 적어내린 그 편지랑은 느낌이 다르잖아?


 편지를 적다보면 있지, 가끔은 삐뚤빼뚤 줄도 안맞기도 하고, 제멋대로 들쑥날쑥하기도 하고, 때로는 글자 하나, 문장 하나가 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어떻게든 수정해보려다가 종이를 아에 새것을 꺼내야 할 때가 있어. 그리고 사실 편지를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팔이 아픈 일이야. 게다가 간편하게 우표를 사서 붙인 다음에 보내버리면, 그게 그 사람에게 잘 도착했나 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서 답장이 와야만 알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말이야. 여러모로, 불편한 일이 많은 것 같아.

 하지만 나는 그런 삐뚤거리는 편지에는 반듯하고 정갈한 이메일이나 인쇄된 편지, 아니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주고 받는 톡이나 문자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 뭔가, 말로는 형언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그 느낌이 있거든.




 사실 내 책장서랍 속에는, 수없이 많은 편지들이 꽂혀있어. 가장 오래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땐가, 그러니까 10년도 넘은 거지. 그때 담임선생님께서 우리 반 아이들에게, 매주 토요일마다(그때는 토요일에도 학교를 갔었으니까) 아침자습 대신에 친구 한 명의 노트를 골라 그 친구에게 '칭찬 편지'를 적어주라고 하셨었거든. 우리는 3학년으로 올라갈 때 노트를 돌려받을 수 있었는데, 그렇게 돌려받았던 나의 노트에는 1년 간 같은 반 친구들이 삐뚤빼뚤 적어내린 편지들이 빼곡하게 적혀있었어. 나름대로 예쁘게 꾸미기도 한, 정성스러운 편지였지.

 지금 읽어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그런 문장들이 적혀있기도 하지만, 그 노트를 열어보면, 콧잔등에 땀까지 맺어가면서 친구를 아끼는 마음을 꼭꼭 눌러담아 편지를 적던 토요일 아침의 우리 반 친구들이 기억나서 기분이 괜히 좋아져. 만약 그때 우리 모두가 메일을 적을 수 잇어서, 메일로 주고 받았다면, 아니면 그 편지를 인쇄해서 각자에게 주었다면, 그 때의 그 기분을 꼭꼭 받아 담는 것은 조금 힘들지 않았을까?



나는 그걸 '삐뚤거림의 미학'이라고 부르고 싶어.



 편지가 주는 그 특유의 삐뚤거림, 나는 그게 참 좋아. 가끔은 알아보기 힘들기도 하지만, 편지 안에는 나를 위해 떼어준 그 친구의 시간과, 다음 문장은 어떤 것으로 적을까 고민하는 그 흔적들이 녹아있는 거잖아? 그래서 아주 가끔씩, 친구들이 나에게 적어주었던 편지를 모아둔 서랍을 열어 편지를 하나하나 읽어볼 때면, 그냥 괜히 참 행복해지더라고. 나는 그걸 '삐뚤거림의 미학'이라고 부를래.


 아무튼 그래서 나는 이렇게, 가끔씩 편지를 써. 내가 그렇듯이, 그 친구도 내 편지를 받고 마음 한 구석이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삐뚤지만, 또박또박.

매거진의 이전글 D, 오늘은 영화를 봤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