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그리고 타인의 시선.
소년은 오늘따라 날이 참 뜨겁다고 생각했다.
나무 그늘이 필요했다. 드넓은 운동장에서, 뜨거운 햇볕을 피할 곳이라고는 커다란 나무 그늘만 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운동장 한 구석에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의 그늘로 다가가는데, 피크닉용 벤치에 누군가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소녀였다.
소년은 소녀에게 다가갔다.
사박사박. 발 밑에서는 모래 때문에 소리가 났다. 소년은 소녀가 무언가에 열중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내 궁금해졌다. 무엇일까, 저 아이가 하고 있는 것은? 소년은 소녀에게 더 다가갔다.
소녀는 색연필로 열심히 나비를 칠하고 있었다.
잔디밭, 드넓은 잔디밭에서 들꽃을 찾는 나비였다. 그 그림은 소녀가 그렸다거나 하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누군가 그린 것을, 소녀가 몇 푼을 들여 산 것임이 분명했다.
소녀는 마치 이 일을 끝내는 것이 자신의 업(業)인 것 마냥 열심이었다.
콧잔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것도 그냥 둔 채로. 아마 소년이 아주 곁까지 다가온 것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소년이 보다 못해 입을 떼었다.
"뭘 하는 거야?"
"색칠."
소녀는 소년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답했다.
다만 연두색 색연필을 내려두고 레몬색 색연필을 들었을 뿐이었다. 침묵. 다만 소녀의 색연필 놀림에 따라 슥삭슥삭 소리가 났다.
"왜 하는데?"
"취미야."
소년은 소녀가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사람이 말을 하면, 한 번은 돌아봐야 하는 것 아닌가. 문득 바람이 불어왔다. 소녀의 긴 머리카락이 흩날리며 소년의 팔 끝을 스쳤다. 소녀는 성가신 듯, 머리끈으로 긴 머리를 묶어 보였다.
"무엇을 위해 하는 거야? 다 칠하면, 끝나는 거야?"
"응."
슥삭슥삭.
"난 취미라면 뭔가 더 생산적이고 근사한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이를테면, 책을 읽는다든지 하는. 다른 사람들한테 취미가 색칠공부라고 하면 다들 비웃진 않니?"
소녀의 색연필이 멈추었다.
소녀는 그대로 색연필을 쥔 채로, 자신의 곁에 선 소년을 올려다보았다. 소년은 소녀의 눈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침묵. 다시 불어온 바람에 느티나무의 잎사귀들이 흔들리며 소리가 났다. 솨아아아. 소년은 그것이 파도소리 같다고 생각했다. 소녀는 그대로 소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떼었다.
"… 그럴 수도 있겠구나."
소녀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레몬색으로 잔디를 마저 칠했다.
소년은, 오늘따라 날이 참 뜨겁다고 생각했다.
Cover Picture by Aaron Burd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