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멜리아 May 27. 2016

5월 27일과 도서관

어른이 되어간다는 증거일까

난 어릴 때 도서관을 좋아하지 않았어.


…책을 좋아하지 않았단 소리야?


아니, 그건 아냐. 책은 좋아했어. 그냥 도서관이 싫었어.


좀 짜증나는데, 알아듣게 좀 설명해봐.


그러니까, 난 책은 참 좋아했단 말이지. 물론 주로 소설책이나 동화책 위주였지만. 솔직히, 무거운 책, 그러니까 조금 더 생각을 해봐야하는 철학적 주제를 담은 책이라든지, 고전, 아니면 전공서적같은 그런 책들은 크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거든.


교양을 위해서라도 좀 읽는….

지금은 읽어. 전에 그랬다고 전에.

어, 그래 책을 좋아했다치자. 근데 도서관은 왜 싫었는데?


헌 책 냄새가 싫어서. 정확히 말하면 새 책 냄새가 더 좋아서.

…변태니? 책을 냄새맡고 골라?

아니 냄새가지고 책을 고르겠니? 근데 굳이 헌 책과 새 책을 고르라면 난 무조건 후자였어. 그리고 새 책 냄새 좋아하는 사람 많아, 어디서는 새 책 냄새 방향제도 있다고 들었는데.


아니 말이 옆으로 샜잖아. 그래서 도서관이 냄새때문에 싫었다고?

어. 약간 책곰팡이라고 해야하나, 아니면 먼지 냄새라고 해야하나. 암튼 그 냄새가 좀 싫었어.

근데 사실 뭐, 냄새 때문만은 아니야.

서점에서는 내가 찾는 책이 있으면 주인 아저씨한테 '아저씨 무슨무슨 책 주세요' 하면 바로 가져다주시는데, 도서관에서는 내가 일일이 코드를 대조해가며 찾아야 돼.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끔 도서관에 보면 책이 상한 경우도 많단 말이지.


'어릴 때'라는 건, 지금은 좋아해?

응. 전에는 날씨 좋은 날에 엄마한테 돈 타들고 서점 가서 책을 사서, 근처 카페에서 새 책을 읽으면서 '내가 바로 차가운 도시의 따뜻한 교양인이다' 놀이를 하곤 했는데, 요즘은 오히려 도서관이 더 좋은 것 같아. 사실 오늘도 다녀왔거든.


왜 갑자기 좋아졌는데?

책에 있는 낙서 때문에.

낙서?

언제더라, 되게 할 일이 없는 날이었는데 내가 도서관에서 책을 하나 빌렸거든. 근데 그 책, 진짜 재미없었어. 책 옆쪽에 쓰인 낙서를 발견하기 전까진.

무슨 낙서였는데?

그냥 책 내용에 대해서 자기 생각이 흘러가는대로 적어놨더라고. 처음엔 왜 책에 낙서를 했담? 하고 싫어했는데, 책 자체가 재미 없어서 그랬나, 내 앞에 언젠가 이 책을 보았던 그 사람이 적어둔 낙서에 대고 내가 동의를 하고, 반박도 하고 그러고 있는 거야. 그 낙서 덕분에 책을 다 읽었지. 그러고 나니까 나름대로, 도서관에 있는 낡은 책 속의 끄적임들을 살펴보는 재미가 생기더라고.


그러고 나서 알았어. 어쩌면 도서관의 헌 책 냄새와, 손 때 묻은 책과, 책 귀퉁이의 낙서를 싫어했던 건, 새 책이 더 좋다는 내 생각에 갇혀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고.

오히려 금전적인 면에서도 더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데 말이지.


이런 생각을 하다니 나도 참 기특하지 않냐.

…….

왜 답이 없어.




나는 요즘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중이다.

나이만 어른 말고, 내가 정말 '어른'이 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어쩌면 그것은, 내가 도서관이 좋아진 것과 같은 일상적인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새 책의 빳빳한 종이와 방금 인쇄된 듯한 그 책 향기에서 느낄 수 있는 매력이 있는 한편, 헌 책에서만 느낄 수 있는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책장, 그리고 간간이 보이는 내 앞 사람의 생각이 주는 자그마한 영감, 그런 것들 또한 충분한 매력이 있음을 아는 것.

둘은, 확실히 다르지만 분명한 각각의 매력이 있음을 알고, 인정하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의 첫 번째 과정은 그런게 아닐까?


 …아님 말고.


Cover Picture by Alice Hampson

매거진의 이전글 5월 1일과 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