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와 공 공포증
나는 공을 무서워한다.
초등학교때 학교에 야구부가 있었다. 야구부의 연습 시간과 나의 하교 시간이 같았고, 운동장을 가로질러야 나오는 교문에 이르려면 운동장 가장자리를 빙 돌아 가야했다.
아무리 운동장을 빙 돌아도 일주일에 한번씩 야구공에 맞았다. 심지어 눈으로 공을 좇아 가도 공에 맞았다. 허벅지와 팔뚝은 그나마 멍들면 그만인데 얼굴이나 눈에 공을 맞을까봐 무서웠다. 특히 내 안경. 안경에 공을 맞고 안경알이 깨지는 상상을 수시로 했기에 공과는 친해질 수가 없었다. 친해지기 전에 그 두려움이 너무 컸다.
나이 마흔이 되어 테니스를 시작했다. 공은 여전히 무섭다. 2년쯤 테니스를 치니 공이 조금 세개 날아와도 컨트롤할 수 있다는 용기가 아주 조금 생겼다. 라켓으로 공을 치지 못해도 날아오는 공을 피할 요령은 생긴 셈이다.
몇 달 전 왼쪽 눈을 공에 맞았다. 그것도 내가 백핸드 발리를 할 때 친 공이 엉뚱하게 내 눈으로 날아왔다. 순간 아찔했다. 안경이 멀쩡했고 내 눈도 멀쩡했다. 다행이다 싶었고 그 날은 살살 테니스를 치고 급하게 마무리를 했다. (그리고 하루 온종일 공이 눈을 향하는 생각만 했다.)
그리고 한동안 백핸드 발리를 못했다. 공이 무서웠다. 백핸드 발리만 하면 공이 내 눈으로 올 것 같은 느낌, 그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나를 향해 날아드는 공을 보고 라켓을 휘둘러야 하는데 공을 피하기 일쑤였다.
오늘도 내 배 쪽을 향해 날아오는 공이 몇 번 있었다. 공을 보고 피하며, 잘 피했다고 안심했다. 피구가 아니라 테니스를 치고 있는데! 두어번 공을 피하고 나서 또다시 공에 대한 공포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한 번 이렇게 겁을 먹으면 그 날 테니스는 피구가 된다.
언젠가 공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고 능수능란하게 라켓을 휘두르며 네트 너머로 공을 날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굳이 이 공포를 극복하지 않아도 괜찮고 백핸드 발리로 넘어오는 공을 포기하고 내 눈과 마음을 지키고 싶다.
이 이야기를 주절주절 하는 이유는 갑자기 어린이들을 위한 해병대 캠프, 담력을 쌓아준다는 캠프가 생각나서다. 겁이 많은 아이들이 진짜 이런 캠프에 참가하면 공포를 극복하고 담력을 쌓고 자신감이 솟아난 자신의 모습을 경험할 수 있을까. 내가 여전히 공을 무서워하는 건 그런 캠프에서 내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런 캠프가 아이들의 공포를 증폭시키고 두번 다시 대면하고 싶지 않은 기억, 자신을 더 무력하게 만드는 시간으로 남지는 않을까.
모든 두려움과 공포를 다 극복해야하나. 그냥 좀 피하고 살면 안되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난 지금도 공과 귀신이 제일 무섭다. 그것들을 극복할 수 없다고 보고 피한다. 굳이 극복할 이유도 못찾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