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의 힘

스쳐온 시간과 남은 사람

by 아멜리 Amelie

아이를 재우고 묵은지처럼 오래된 친구와 전화 통화를 했다. 책꽂이에 방치된 책들 위에 소복이 내려 앉은 먼지처럼 익숙하고 오래된 냄새가 친구의 목소리와 웃음에 묻어났다. 익어가는 시간 속에서 아직도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를 향해 살아가는 지 찾고 있었다.


중학생이던 시절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은 거리에 흩어져 꽃길이 되었다. 집에 돌아가 숙제를 하고 나선 또다시 집전화 수화기를 붙들고 수십분씩 통화하다 엄마한테 혼나곤 했다. 생각이 많은 날이면 손가락 꾹꾹 눌러 쓴 편지를 손에 쥐어 주곤 했다. 우리의 이야기는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처럼 흘러 사라진 줄 알았는데 어느 높다란 산모퉁이 뒤에 잠깜 쉬고 있었나 보다.


친구가 묻는다. 너와 생각을 나누는 사람은 누구냐고. 없다고 답하며 서글펐다. 나와 생각을 나누던 그 많던 사람들은 어디로 가고 난 혼자일까. 메밀꽃필무렵과 광장을 읽고 백석과 임화의 시에 대해 논하던, 노동과 자본과 통일과 민족에 대해 논하던 벗들은 모두 어디에 있을까. 난 왜 혼자 썰물에 밀려가 벗들이 있는 뭍에서 멀어졌을까.


외로움과 그리움의 어느 구석에서 옹송그리며 보내지 못한 마음만 하염없이 되내며 오늘도 글자만 읽어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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