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컨대 남편이 장기 출장을 떠날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들려줬을 때 속으로 즐거웠다. 특별하지 않지만 경쾌한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느낌, 화려하진 않지만 소소한 즐거움이 알사탕 오도독 깨먹는 소리처럼 일어날 것 같은 느낌, 즉흥적인 선택들이 하나 둘 쌓여 일상적이지 않은 나날을 만들어 줄 것 같은 느낌. 마치 그가 떠나면서 '이상한 나라 엘리스'에 사는 토끼 친구에게 내 손을 쥐어주는 느낌이 들었던게다.
열흘 가까이 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다. 이 모든 '느낌적인 느낌'들은 영화나 드라마 주인공들에게만 가능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피눈물 흘릴 정도는 아니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으로 하루하루 억세게 일상의 퍼즐을 맞춰 나가며 살고 있다.
출산 후 복직한 지 16개월이 되었다. 나의 상황을 아이 발육 상태에 비교하자면 걸을 수 있으나 기우뚱 잘 넘어지고, 밥알을 씹어 삼킬 수 있으나 된밥보다는 진밥이어야 먹기 수월한 정도라 할 수 있겠다. 첫 출근을 앞두고 달라질 우리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남편과 수시로, 세세하게 나누며 예비 워킹맘으로서 느끼는 감정의 질감까지 공유했다. 예정된 일상은 이러했다. 아침 출근길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준다. 오후 4시에 베이비시터 이모님이 아이를 데리고 와 저녁 8시까지 봐주시며 아이들 저녁을 챙겨주신다. 8시 전에 우리 부부가 퇴근을 하고, 아이 목욕을 시키고, 집 정리를 하고, 하루 일과를 마무리한다. 또다시 아침이 오면 아침밥 먹기 사투와 준비 전쟁을 치르고 출근길에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출근 D-1, 남편과 도란도란 앞으로 펼쳐질 나날에 대한 이야기를 또다시 나눴다.
"집안일도 내가 많이 도와줄게." 라고 남편이 말했다.
"도와주는 게 아니라 같이 하는거야. 각자 일하고 돌아와 아이도 같이 키우고 살림도 같이 하는거야. 우린 모두 같이 해야하는거야."라고 응수했다.
그렇다. 우리는 21세기를 살아가니까 삶의 방식과 태도도 21세기적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20세기에 태어난 남자에게 21세기에 답게 살아야한다고 뇌에 인이 박히도록 '세뇌교육' 시켰다. 남편은 내 말을 존중해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해 왔다.
우리가 함께 만든 일상은 이런 식이다. 남편이 밥을 하면, 내가 집 정리를 한다. 남편이 설거지를 하면, 내가 아이를 씻긴다. 남편이 아이와 놀아주면, 내가 내일을 준비한다. 남편이 세탁기를 돌리면, 내가 마른 빨래를 걷어와 정리를 한다. 남편이 아이의 아침밥을 먹이면, 내가 출근 준비를 했고, 내가 아이의 옷을 입히면 남편이 출근 준비를 했다. 우린 기름칠을 잘한 톱니바퀴 커플이 되어 하루 하루를 삐걱거리지 않고 돌려왔다. 남편이 집안일 요령을 터득한 다음부터는 집안일을 해치우는 속도가 남달라졌고, 해내는 집안일 분량도 늘어났다. 어딜 내놔도 손색이 없는 남편이 되었다.
그리하여 남편이 부재중인 요즘 '아이를 혼자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고되고 힘겨운 일인지 직시하고 있다. 퇴근하고 김치찌개에 밥을 말아 5분만에 저녁을 해치운다. 거실 한 구석을 정리하고 있으면 코딱지는 다른 한구석에서 요리를 한다며 물바다를 만든다. 여유 있는 샤워는 사치다. 군대 이병 쫄따구 마냥 시간 엄수하며 샤워를 하고 있으면 바로 옆에서 코딱지는 온 몸을 초록색으로 바르며 자신은 헐크라고 소리치며 웃고 있다. 빨래를 하거나 마른 빨래를 걷으러 베란다로 나가면 무섭다며 달려드는 코딱지를 들쳐 업어야만 일을 할 수 있다. 코딱지는 아빠의 부재가 어색한 듯 침대에서 눈을 뜨고 거실에 나가자는 내 말을 거부하고, 우린 침대에서 20분이 넘는 시간을 뒹굴거려야 거실로 걸어 나갈 수 있다. 아이의 밥을 먹이며, 내 양말을 신어야하고 아이의 옷을 입히며 거실에 나뒹구는 장난감 친구들을 정리해야 한다. 똑같은 일상을 며칠 반복하니 자려고 누으면 코딱지보다 내가 먼저 잠이 드는 상황이 늘 펼쳐진다.
누가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했던가. 일주일이 넘어가니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묘한 요령이 생기기 시작하고 마음에 약간의 여유도 깃들기 시작한다. 코딱지가 기상하는 시간은 어느 정도 고정적이니 그보다 한 시간전에 일어나 부산하게 움직이며 커피 한 잔의 여유도 부리게 되었다. 콜드플레이의 Viva La Vida를 틀어놓고 코딱지와 유쾌한 웃음을 주고 받으며 출근 준비를 한다. 출퇴근 지하철은 푸켓과 세부, 몰디브를 능가하는 휴양지마냥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 가능한 공간이 되어 책을 보거나 신문을 읽는다. 가끔 너무 집중한 나머지 지하철 역을 놓치고 되돌아 가야하는 상황도 생길 정도다.
어떻게 이 상황에 조금씩 적응하게 되었을까.
남편의 장기 부재는 누군가 나를 도와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스스로 마음에서 버리고 대신 아이와의 전면전에 나설 마음의 무장을 하게 했다. 내가 청소를 하면 누군가가 빨래를 할 것이라는 기대감, 내가 아이를 돌보면 누군가가 쓰레기를 버려줄 것이라는 기대감, 내가 샤워를 하며 노래를 흥얼거리면 누군가 아이와 콧노래를 불러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버렸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기대를 절박한 심정으로 무장하니 일상의 1분 1초를 제대로 채워나갈 방법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짜증내고 징징거려봐야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니 이왕 하는 거 신나게 해보자는 마음도 생기기 시작했다. 몸이 피곤해지면 일찍 자면 되고 마음이 지치면 집안일을 덜하고 널부러지면 된다고 생각하며 괜찮은 일상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마음을 먹고나니 몸도 알아서 대처를 하게 된 셈이다.
모든 육아가 다 이런 형국은 결코 아니다. 누군가의 급작스런 부재가 장기화되고, 채울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나의 이런 상황은 호사스럽다. 공동 양육자로 지정한 남편, 베이비시터, 어린이집 또는 친정엄마가 갑자기 그 자리를 채우지 못하게 되는 상황은 지진 해일만큼이나 강력한 힘으로 일상을 흔들어대고, 크고 작은 여진이 연쇄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거대한 우주 하나는 만드는 행위와 다름없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 아빠는 숨 한 번 크게 쉬기 어려운 고단한 나날이 주야간으로 이어지는 일상을 버티고 있기에 절절한 사연을 만들 수 밖에 없다. 나 또한 어떤 이유로 홀로 아이를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기에 홀어머니, 홀아버지가 아이를 무사히 키울 수 있는 환경 구현은 꼭 해결해야하는 우리의 절실한 숙제 중 하나라 생각한다.
남편이 돌아오면 21세기 남성에 부합되는 역할을 잘 수행해주어 고맙다는 말을 건네야겠다.
그간 싱글의 즐거움을 타지에서 누리셨으니 앞으로 워킹대디의 자리를 더 공고히 해주십사 요청도 잊지 않고 해야겠다. 혹은 나에게 예상치 않은 출장이 생겨 남편에게 나의 장기 부재를 스스로 극복하는 경험을 선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인간은 누구나 적응의 동물이라는 '사실'을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