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하고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맞으며 집에 돌아왔다. 비 예고는 들었지만 굳이 우산을 챙기지는 않은 날이었다. 아픈 아이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이마를 짚어보고 코 가까이 귀를 갖다 대고 내 숨은 꾹 참은 채 아이의 숨소리를 들었다. 저녁의 집을 가득 채우느라 고생한 남편과 눈을 맞추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답했다.
하루가 흘러간다. 최근 내 일상을 짓누르는 감정 중에 '자괴감'이란 아이가 있다. 이 녀석이 하루에 수십번 내 감정 방문을 여닫기도 하고, 잠잠하다가 생뚱맞은 시간에 불쑥 찾아오기도 한다. 다루기 까탈스럽고 이해하기 어려운 아이다. 이 아이를 오늘도 만났다. 조금 허탈한 날이었다.
책 모임에서 과거와 현실과 미래라는 아주 거창하고 거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누고 돌아와 간식을 담아간 작은 플라스틱 통과 아이의 분홍색 물통을 씻었다. 개수대에 묻은 밀가루의 흔적을 보며 아이가 아빠와 했을 밀가루 놀이를 떠올렸다. 어린이집 알림장을 뒤적이며 아이의 일상도 짚어나갔다. 굵은 빗줄기가 서늘하게 정수리에 떨어지듯 '자괴감'의 출처가 드러났다.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조금 늦어도 괜찮고 조금 서툴러도 괜찮다고. 다 괜찮다는 이야기를 인이 박히도록 듣고 싶었나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다는 말에 목이 말랐다.
글을 읽고 말을 나누는 즐거움을 알고 살아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도 생각과 경험을 나누는 에너지를 가지고 살아서, 머리와 마음이 비었을 때 채우고 살 마음을 품고 살아서, 내가 오늘 참 괜찮다고 생각했다.
* 하루종일 먹고 싶었던 초록사과를 먹으며 아이가 앉아서 밥 먹었던 자리를 바라본다. 그러고보니 무탈하게 하루가 흘렀다. 고마운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