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의 힘

빨래를 개다가

by 아멜리 Amelie

빨래를 개다가.

늙은 엄마와 어린 딸의 양말과 옷가지들이 가을 볕에 붉은 김장 고추 마냥 바짝 말랐다. 오도카니 앉아 가을 냄새 품은 옷가지를 반듯하게 개어본다.

늙은 엄마의 팬티는 세월의 바람에 닳은 그녀를 닮았다. 헤지고 낡기만 했다면 측은한 마음만 풍선처럼 부풀어 오를텐데 다행히도 그녀가 고른 잔잔한 꽃무늬 패턴이 여전히 어여쁜 눈매를 얼굴에 품은 그녀를 닮았기에 조금 아련해진다. 늙은 엄마는 자신이 배 아파 낳은 딸년이 배가 아파 낳은 딸년을 며칠 돌봤다. 딸년은 일이 너무 많아 힘들다는 표정 없는 카톡을 보내며 출장을 떠났고, 딸년의 어린 딸년은 할머니의 늙어 푸석거리는 손길이 좋으면서도 지 애미의 손길이 그리워 소용 없는 눈물만 흘렸다.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온 딸년의 얼굴을 보자마자 엄마는 그녀의 손때 묻은 냄비와 텔레비전 리모콘과 늙어 눈이 퀭한 남자가 기다리는 그녀의 집으로 도망치듯 떠났다.

어린 딸의 쫄바지에는 무릎 정중앙에 구멍 하나가 나있고 올이 조금 풀려있다. 가을 바람 사이를 헤치고 아스팔트 위에 무심하게 흩뿌려진 낙엽 위를 다람쥐마냥 달리다 철퍼덕 소리를 내며 넘어졌을게다. 무릎은 조금 쓰라였을테고, 희미한 신음소리가 입에서 터져나왔겠지. 그래도 가을 냄새와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가 흥겨워 아스팔트를 손으로 짚으며 일어서서 손바닥 한번 쳐다보고 향하던 길 한번 쳐다보고 히죽 웃곤 앞으로 걸어갔을 터이다. 그 날 저녁 세탁기에 던져 놓은 쫄바지의 구멍은 아이가 가진 생명력이 터져 나온 구멍이었다.

옷가지마다 주인의 모습을 수놓은 이야기가 새겨져있다. 늙은 엄마와 어린 딸 사이에서 내 옷가지들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젊은 듯 하나 늙어가는 내 이야기는 무슨 색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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