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한 번 있는 건강검진에서 우리 아들은 언어지연소견을 받았다.
그러면서 센터에서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는 권유도 받았고 덧붙여서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는 기간이 길어지자 자연스레 언어발달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어린 친구들이 늘었는데 손 놓고 있기보단 적절한 조치를 취해서 빨리 언어를 틔이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신랑은 노발대발 난리가 났지만, 건강검진 소견소에 떡하니 쓰여있는 것을 어찌하랴!
대학병원 추천서를 적어달라고 의사 선생님께 요청했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주변에 있는 센터에 방문해 보길 권한다며 마치 산책 가는 것처럼 다녀오라고 말했는데... 우리 아들이 심각하다는 것인지! 아닌지!
이유야 어떻든 어린이집에서도 사회성이 떨어져 걱정이 된다고 했으니 이참 저 참 센터에 방문해 보기로 했다.
3군데 전화를 돌려 가장 믿음이 가는 곳으로 예약을 잡고 방문을 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센터방문이었다.
40분가량 선생님과 아이 단 둘이 놀이를 하며 관찰할 것이고 그 시간 동안 나는 문진표를 작성하면 되었다. 그 문진표 작성하는 시간이 꽤 걸릴 수도 있으니 일찍 오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사소로운 것을 묻고 답하는 것이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
어찌어찌 문진표를 다 작성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끝나서 멍~ 하니 대기실에 앉아있는데 웬걸 우리 아들 놀이 상담도 빨리 끝났다. 40분 동안 아이와 놀이를 한다고 했는데 20분 정도 지나자 우리를 불렀다.
들어가 보니 선생님과 우리 아들이 놀고 있었고 한 편에 앉아 상담을 시작했다.
"어머니가 객관적이지 않으시네요. 아이를 객관적으로 보셔야 합니다.
지금 중요한 시기예요. 이때를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하실 거예요.
우리 00은 아직 나이가 어려서 언이치료는 어렵고 감통먼저 하면서 서서히 놀이치료로 이어지면 될 것 같아요!"
내 문진표를 보며 첫마디가 객관적이지 않다니!
상담사는 '발달장애'라는 프레임에 어떻게든 우리 아들을 끼워 맞추려고 혈안이 된 듯 보였다.
코로라로 마스크를 절대 벗지 못하게 하는데 그곳에서 마스크를 벗기고 비눗방울 부는 걸 시켰는데 아이가 못했다면서 이 나이에 이것도 못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걸고넘어졌다.
열받아서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애써 침착하게 되물어보았다.
"마스크를 벗기고 입으로 부는 걸 시켰다고요?"
누군가가 사용했을지도 모르는 비눗방울에 입을 대고 부는 것을 시킨 것도 모자라 마스크를 벗겼다는 것에 화가 났다. 분명 사전에 안내받았을 때 안전수칙 정확히 지키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도리어 아이가 마스크를 계속 쓰고 있어야 한다며 으름장을 놓았던 곳이었는데...
그 사소한 그것(?) 하나 빼고는 문제가 없었다. 대근육, 상호작용, 크게 문제 될 만한 부분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고작 저거 못 불었다고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또 내가 작성한 문진표를 보면서
"밥도 잘 안 먹고, 잠도 잘 자지 못하지요?"
"아니요~ 잘 먹어요. 식감에 예민해서 물컹하거나 새로운 음식에 낯섦이 있을 뿐이지 편식 안 해요. 야채스틱이나 야채칩, 과일도 잘 먹어요.
잠은 낮잠이 줄어들어 하루에 낮잠 한 번자는데~ 3시간~4시간자구요. 밤잠은 통으로 9시간 잡니다."
상담사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중얼거렸는데,
"그럴 일이 없는데..."
어찌어찌 상담을 끝내고 결재를 한 뒤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셔야 하는데 대기가 6개월 이상이다. 그 사이에 센터에서 치료받으시면서 검사결과 나오면 할인도 받을 수 있고 바우처도 발급된다며 친절히 안내를 해주었다. 안내를 대충 들으면서 대학병원 소견서 써달라고 요청을 한 뒤 분식집으로 향했다.
신랑과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아 표정이 어두워졌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아들은 중간에서 우리 눈치를 보며 김밥을 먹고 있었다. 그때 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 우리 00 이는 아직 나이가 어려서 대학병원에 가도 진단이 나오지 않아요. 2년 후에 가셔야 해요. 그래서 소견서 써 드리는 건 어려울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 00 이가 아직 말이 틔이지 않았으니 다른 곳에서라도 언어치료는 꼭 받아보셨으면 합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우리 아들은 발달장애가 의심되니 무조건 감통치료를 시작해야 하며 반드시 사회성에 문제가 생길 것이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센터에 열심히 다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일장연설을 했던 분이 맞는가 싶었다.
어안이 벙벙해서 황당하여있으니 그제야 신랑이 나를 앉혀놓고 설명을 해주었다.
신랑(장애인복지시설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인데 성인 발달장애인과 자페스펙트럼분들과 생활 중이다.)이 말하기를 감통은 발달장애인들이 감각이 떨어져 대근육이 발달이 되지 않아 재활로 받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 그런 감통을 받으라고 했으니...
우리 둘은 큰 소리로 웃었다. 살다 살다 별일을 다 겪는다면서 신랑은 눈칫밥 먹고 있는 우리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고생이 많았다 우리 아들!
집에 돌아와서 신랑과 나는 두 손을 꼭 잡고 다짐했다.
낯가림이 심하고 예민하며 경계심이 높은 아이인데 '코로나'가 무서워서 너무 몸을 사리고 있었구나 적절히 자극을 주고 경험을 시켜줘야 하는데 놓치고 있었다.
그래 돌아다니자! 다양한 체험과 경험을 느끼게 해 주자! 건강하고 무탈하게 자라주었으니 이제 나가보자!
그때부터 우리 가족은 매주 놀러 다녔다.
박물관도 다니고 키즈카페도 다니고 수목원, 음식점, 아울렛, 놀이터 등등등 그동안 사람이 무서워서 피했던 모든 곳들을 원 없이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3개월 후에 아들의 목소리를 아니 말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만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갈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