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의 부피를 나누며

by 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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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때로 거창한 약속보다 현관 앞에 나란히 놓인 신발의 크기 차이에서 더 선명하게 읽히지. 너의 집으로 나의 일상이 조금씩 이사하던 날 가장 먼저 자리를 잡은 욕실 선반 위 보라색 칫솔. 원래 그곳을 지키던 너의 초록색 칫솔 옆에 비스듬히 몸을 기댄 나의 보라색. 색깔만 다를 뿐 똑같이 목이 휜 칫솔 두 개. 우리가 비로소 한 문장 안에 섞였다는 안도감이다. 서로의 입안을 닦아내는 가장 사적인 도구가 같은 습도를 공유한다는 것. 그것은 어떤 고백보다 끈적한 결속. 지나치게 큰 너의 티셔츠에 손가락은 늘 소매 속으로 숨곤 해. 너의 체취와 섬유유연제 향이 섞인 큼직한 품. 아무리 추켜올려도 배꼽을 한참 지나 명치까지 덮어버리는 넉넉한 바지통. 배를 잡고 웃는 네 앞에 나는 헐렁한 바짓단 속에 다리를 숨기고 네가 만든 낭만 속에 둥둥 떠다니지. "너무 커서 흘러내리겠다." 너의 사랑이 이토록 크네. 나의 물건들은 너의 물건을 닮아간다. 아니, 너의 큰 것들이 나의 작은 것들을 기꺼이 품는다. 우리는 서로의 부피를 나누며 매일 조금씩 더 넉넉해지고 비좁은 세상에 너는 나의 가장 큰 옷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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