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도란스 - 엄마의 잔소리에 대처하는 법
잔소리에도 번역이 필요해.
엄마와는 꽤 오랜 세월을 함께 동거했다. 그러다 서른세 살에 결혼을 계기로 자연스럽게 독립하며 동거생활을 청산했다. 우리 엄마는 여느 엄마와 마찬가지로 잔소리가 꽤 심하셨는데, 엄마의 눈앞에서는 움직일 때마다 그 움직임에 대한 잔소리가 초단위로 계속 바뀌곤 했다.
TV를 보다 손목을 짚으면 손목에 무리 간다고 못 짚게 하셨고, 걷는 자세, 잠자는 자세, 핸드폰 보는 자세 등등 모든 자세에 대해 교정을 해주셨다. 또 외출 후에 옷을 벗어놓으면 옷에 묻은 얼룩과 그 얼룩을 어떻게 지워야 하는지, 나아가 본인이 개발한 얼룩 지우기 방법에 대해서도 쉬지 않고 계속 말씀하셨다. 아침에 출근할 때면 한사코 말려도 아침밥을 꼭 차려주셨는데, 본인은 먹지 않으셔도 내가 아침밥을 먹는 맞은편 의자에 어김없이 앉으셔서 내가 밥 먹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봐 주셨다. 그러면서 이 나물은 어디서 캐왔는지, 나물의 이름은 무엇인지, 양념은 어떻게 만들었고 무엇이 들어갔는지 등등 나물이 상 위에 올라가기까지의 과정을 모두 설명해주시며 아이처럼 눈을 반짝이시곤 했다. 어떤 날은 '그랬구나', '맛있다', '엄마 요리로 장사하면 대박 나겠다.' 하는 리액션을 곁들여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날들은 '응, 응, 그래.' 하며 건조한 대답으로 일관했었다.
유독 지치는 하루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 날은 바깥에서 들은 수만 개의 말들이 미세먼지처럼 몸에 달라붙어 아무리 털고 씻어도 당최 떨어지지가 않는다. 몸 전체가 더 이상의 말소리가 침투할 공간이 없는 포화상태가 된다. 문제는 그런 날들이 종종 자주 있었다는 것이다.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풀어져 있는 나에게 엄마의 잔소리는 마지막 일침처럼 날아오고, 어김없이 '펑'소리를 내며 터지는 상황이 자주 반복됐었다. 나를 방어하기 위해 엄마를 공격하는 방법을 자주 택했었고, 그 방법은 늘 실패했다.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상처를 주는 방법이었으니까.
어느 날이었다. 문득 이를 닦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눈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 '나중에 독립하면 엄마 잔소리가 그리워질 것 같다.'라는 생각이 뇌리에 스쳤다. 갑자기 시간의 유한함이 피부로 와닿아 아프게 부딪혔다. 엄마의 잔소리를 귀찮아했던 내가 후회하는 시간들이 그려졌다. 실은 알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엄마가 나에게 끊임없이 걸었던 말은 외롭다는 표현이었고, 조금이라도 나와 감정을 더 나누고 싶은 급한 마음이었다는 걸. 또 내 몸을 본인 몸보다 아끼는 마음에 내 모든 행동들을 유심히 지켜보고 좋은 습관을 만들어주고 싶으셨다는 걸. 알면서도 외면했었던 순간들이었다. 한쪽 눈을 감고, 한쪽 귀를 닫으면 덜 보이고 덜 들릴까 하는 어리석은 마음이었다.
"아침은 꼭 먹고 댕겨."
"엄마가 차려주는 것도 못 먹고 댕기냐."
"이거 한 입만 먹고 가 어여."
"항상 자세가 중요한 거여. 그렇게 앉으면 허리 다 꼬부라진다잉."
"가방 너무 무겁게 하고 다니면 안 되는 것이여. 어깨 아프다잉."
"너무 맵게 먹지 말랑께. 속 다 배린다고 했잖아. 또 속 아프다고 할라꼬."
라며 늘 했던 잔소리들이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엄마가 우리 딸 사랑해."
"엄마는 우리 딸이 아플까 봐 항상 걱정된다."
"늘 좋은 것 해주고 싶은데, 생각만큼 못해줘서 미안하다."
.
.
.
"사랑한다."
.
.
.
"걱정된다."
.
.
.
마음에 도란스를 하나를 들여놓고 엄마의 잔소리에 대한 전압을 맞췄더니, 엄마의 잔소리가 걷히고 사랑한다와 걱정된다는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 말들은 내가 한 껏 부풀려져 있을 때 압력을 빼주고, 바깥에서 한 아름 짊어지고 온 걱정들을 사라지게 하는 지우개였다.
결혼 4년 차인 지금, 엄마 잔소리가 가끔 그리워질 때가 있다. 온통 내 걱정만으로 밥을 지어먹고 살던 엄마의 잔소리가 나를 살게 했던 그 시절을 떠올린다. 엄마의 잔소리 유전자를 물려받은 내가 우리 아가에게 그대로 답습하진 않을까 하는 작은 염려와 함께 나에게 잔소리하던 엄마의 마음을 하나 둘 헤아려 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