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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눈보 Sep 04. 2022

선처럼 누워 매일 밤 천장의 무게를 견뎌냈던 사춘기일지

[서평] 박상영 <1차원이 되고 싶어>

이번 생이 처음인 우리들은 늘 서툴다. 어렵다. 

때문에 과거를 돌아보면 잘 몰라서, 혹은 연약한 부분을 들킬까 날을 세우다 나와 상대방에게 상처 줬던 얼룩들이 곳곳에 묻어있다.


이 소설은 약한 구석을 내보이지 않으려 내면에 가시를 단단히 뻗치고 있던 열여섯 즈음의 나로 자꾸 회귀하게 만들었다. 누구나 이 소설을 만나면 지금 자신의 근간을 이루는 사춘기 시절에 앓았던 성장통이 떠오를 것이다.


소설에서 '나'의 과거 기억은 2003년의 이른 봄날 밸렌타인데이부터 시작된다. 열여섯인 '내'가 짝사랑하는 윤도에게 초콜릿을 익명으로 건네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냄과 동시에 동성을 좋아하는 성적 취향을 인정하게 되는 출발점이다. 그리고 절대 과거가 되지 않는 경험 대부분을 이 시기에 겪게 된다.


'나'는 미친 듯이 도망쳤지만,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게 만드는 사건과 문제에 대해 우연한 계기로 조우하게 된다. 현재 '나'의 목과 삶을 조여오는 과거로부터 오는 질문에 솔직해질 수 있을까? 그리고 치열하게 과거를 돌이킨다. 마치 소화시키듯 차근차근 곱씹고 떠올리면서. 과연 '내'가 찾게 되는 답은 무엇일까? 미처 찍지 못하고 도망치듯 달아난 아픈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까?


열여섯의 나도 주인공의 그때처럼 그 시절 마침표를 찍지 못해 부유하던 이야기들이 많았었다. 내가 온전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경험들이 준비할 겨를도 틈도 없이 매섭게 몰아쳤던 것 같다. 


가족의 해체와 함께 비로소 마주한 가난의 얼굴. 비바람 막아줄 우산 하나 없이 끝이 안 보이는 컴컴한 터널을 걸었던 기억.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의지할 거라곤 서로의 꽉 잡은 손이 전부였다. 그리고 걷다가 가끔 어둠 속에서 별처럼 반짝이는 아름다운 조각들을 수집할 때마다 주머니에 차곡차곡 넣어놓곤 했다.


아침마다 가족을 위해 기도하던 엄마의 옆모습, 형제들과 시답잖은 농담 따먹기로 깔깔대며 방바닥을 굴렀던 기억, 고된 하루를 잊게 해주었던 청아한 난꽃의 향. 그리웠던 아빠와의 짧은 전화 통화. 의외로 사람은 사소한 추억을 파먹고 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통의 형태는 4차원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피부에 생생하게 와닿아 부딪혀 사람을 한없이 구석으로 내모니까. 하지만 1차원적인 것에 웃고 기운을 냈던 경험은 고통을 1차원으로 납작하게 눌러 별거 아닌 것으로 만들어주기도 했다.


'매일 밤 침대에 누울 때마다 천장의 네귀퉁이에 서린 그림자가 온몸을 짓누르는 듯한 고통에 사로잡히곤 한다'고, '얼마나 많은 밤 동안 이 천장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야 할지 생각하면 모든 것들이 견딜 수 없이 막막해진다'고 말하는 '나'에게 윤도는 말한다. 1차원의 세계에 머무르자고. '너와 나라는 점, 그 두 개의 점을 견고하게 잇는 선분만이 존재하는, 1차원의 세계


컴컴한 터널을 걷는 '나'와 잠시나마 깍지 끼고 걸었던 윤도. 영원히 정리되지 않을 것 같은 숙제를 떠안은 복잡한 '나'를 유일하게 단순한 1차원의 세계로 초대할 수 있는 애증 하는 존재. 윤도는 '나'의 절망과 희망의 패를 모두 쥐고 흔드는 폭군처럼 행세하며 고통 속으로 쉬이 밀어 넣기도 한다. 하지만 먹이사슬처럼 '나'를 짝사랑하는 태리는 비슷한 마음으로 주인공의 곁을 자전하며 상처 주고 상처받는다. 소설은 폭력과 숨 막히는 학업 경쟁으로 점철된 학교생활, 가슴 아린 첫사랑, 우정, 가정의 붕괴와 같은 다양한 주제를 프리즘으로 보듯 다채롭게 조명하고 있다.


싸이월드 세대라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시절 또래들 사이에서 소비됐던 모든 요소(언어, 유행했던 브랜드와 가수 등)들을 디테일하게 재현한 부분도 인상 깊었다.


이 소설은 분명 누군가의 마음속에 떠돌아다니며, 현재를 괴롭히고 있는 문제의 시작을 짚어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충분한 성장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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