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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눈보 Sep 07. 2022

싱크홀은 땅 위에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영화감상] 메기(2019. 9. 26일 개봉작)

영화는 초입부터 의미심장한 문장을 수수께끼처럼 던지고 시작한다.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구덩이를 파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일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좋아하던 말 중에 "독화살을 맞았을 땐 그 화살이 어디서 왔는지 고민하지 말고, 먼저 독화살을 빼라."라는 문장이 있다. 아마 비슷한 이치를 말하고자 함이 아닐까 싶다.


구덩이와 독화살은 우리 일상 도처에 익숙한 배경이나 사물처럼 존재한다. 그래서 방어도, 앞선 대처계획도 무력하게 만드는 함정과도 같다. 바로 그 점이 진정한 공포가 아닐까. 빠지고 나서 깨닫거나 빠진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 다들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내 생각엔 현명한 사람은 구덩이가 어디쯤 있는지 가늠할 줄 아는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 피해 갈 수 있는 지혜가 있지 않을까? 보통은 빠지고 나서 구덩이를 더 파다가 '아, 내가 구덩이에 빠졌구나.'하고 깨닫고 나올 것이다.(스스로 더 파놓은 구덩이의 크기에 따라 나오는 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가장 최악은 구덩이 밖에서 그만 나오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일 것이다. 구덩이 파는 것에 집중한 나머지 '아냐, 나 안 빠졌어. 너네가 있는 곳이 바로 구덩이야.'라고 생각할지도.


나 자신을 잠식시키는 함정, 나아가 청년 세대를 위험에 빠뜨린 함정이 무엇이며 주인공들은 그 문제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에 집중해서 보았다.


영화의 주제는 그리 가볍지 않다. 믿음과 의심, 청년이 놓인 현실, 폭력 등을 다루고 있으니. 하지만 엉뚱하고 유쾌하게, 그러나 무게감을 잃지 않는 태도를 시종일관 유지한다. 그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해학적이면서 날카로움을 잃지 않는 그 힘이 좋았다. 아주 잘 만들어진 블랙코미디 같달까. 더불어 연기파 배우들인 구교환, 문소리, 이주영의 힘을 뺀 듯하면서도 친숙한 연기가 영화의 격을 높여주고 있다. 거기에 천우희 배우의 12시 라디오 DJ 목소리 같은 편안함까지.


위에 말했던 주제들을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보여주지만, 그 줄거리를 나열하는 건 큰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영화 보는 시간이 알찼다고 느껴졌을 만큼 재미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콘텐츠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야의 각도를 넓혀주는 것이다. 이제껏 90도 각도의 범위로만 보던 세상을 100도의 각도로 넓혀주 듯 말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좋은 영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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