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잊쑤 Oct 19. 2024

3월 : 나는 대학생이다 (1)

 Marzo :  조금 늦은 나이에 대학에 가게 된 이야기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나는 대학을 갔다.

 


 20대 초반은 불합격의 연속이었다.


 삼수를 했음에도 원하는 대학에 번번이 떨어졌고, 대학을 포기하고 시작한 공무원 시험에서도 불합격했다. 친구들은 대학에 가서 연애도 하고, 어학연수도 가고, 여행도 다니는데, 나는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만 보고 있는 현실에 비참했다. 자존감은 땅에 떨어지다 못해 내핵까지 떨어져 버렸다. 우울감은 마리아나 해구만큼 깊어졌고, 자기 비하와 자기 연민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내 마음에 가득 차다 못해 흘러 넘쳤다.


 주변 사람들이 나의 상태에 대해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내 감정 하나 컨트롤하기도 힘든데, 주변 사람들의 걱정까지 보태지니 너무 버거웠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우울한 감정을 애써 숨기고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다. “역시 너는 멘털이 강해.”라는 안도하는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방문을 닫고 난 후 몰려오는 어둠과 적막감은 나를 짓누르다 못해 숨도 못 쉬게 짓이겨버렸다.


 2019년 9월 5일, 그날의 기억은 또렷하다. 그날 새벽, 나는 또다시 자기 비하의 수렁에 빠져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얼음을 와그작와그작 씹고 있었다. 그러다 혓바닥을 잘못 씹어 엄청난 고통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순간, 이렇게 살다가는 정말 큰일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내 발목을 잡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 공무원 시험, 또 실패할 거라는 두려움, 친구들과 비교되는 나의 모습, 해낸 거 하나 없이 보낸 20대  절반의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좌절감, 내가 기꺼이 포기한 것..... 대학...?'

저 많은 요소들 중에 지금 당장 없앨 수 있는 것은,

대학!’  

 그 길로 바로 수능 접수를 하러 갔다. 우연히도 그날이 접수 마감일 전날이었다.


  그렇게 나는 혓바닥을 잘못 씹은 덕분에 대학에 도전하기로 했다. 큰 용기가 필요한 도전을 하게 된 이유가 고작 이거라니...! 그때 당시에는 ‘이 모든 것이 내가 대학에 갈 운명이라 벌어진 것인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저 대학이 가고 싶었고, 대학에 갈 명분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 명분이 말도 안 되게 어이없는 것이어도 말이다.

  수능까지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공부했다. 언제나 나를 괴롭혔던 우울감은 신기하게도 사라졌다. 마음을 비우고 수능을 치렀고, 지원한 학교들 중에 한 곳을 제외하고 모두 합격을 했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학과는,  

 ‘항공경영학과’

 이 과를 선택한 이유는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날씬하고 예쁜 친구들이 가는 학과를 키 작고 뚱뚱한 내가 거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보통의 나’와 정반대인 성향의 학과에 가서 내가 버틸 수 있을지 궁금했다.  


 주변의 반응도 다양했다. 나의 선택을 응원해 줄 줄 알았던 어떤 친구는 "굳이 대학을 왜 가냐? 유니폼 입으려면 날씬해야 하는데, 너는..."라는 말로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반면, 나의 선택을 걱정만 할 줄 알았던 사람에게서는 "세상에 쓸모없는 배움은 없지. 네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서 기쁘다."라는 격려를 듣고 놀라기도 했다.


 대학에 가면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씩 할 생각에 설레면서도,

동기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을 하면서 개강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데 아주 큰 문제가 터져버렸고,

나는 새로운 시련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전 02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