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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잊쑤 Oct 18. 2024

primavera [봄] :한 해의 네 철 가운데 첫째 철

봄이다


 겨우내 고요했던 아침, 지각하지 않으려고 뛰어가는 고등학생들이 보인다. 오전이 되면 등산복을 입고 산 입구로 향하는 아주머니들이 보인다. 점심시간에는 점심을 마친 중학교 남학생들이 공을 차며 뛰어다니고, 저녁이 되면 한동안 비어 있던 공원에 가족들이 하나둘 산책을 나오기 시작한다. 이렇게 동네에 활기가 돌면, 나는 비로소 봄이 왔음을 느낀다.


  두시언해의 ‘봄놀다’ 번역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두시언해에서 ‘뛰어다닐 약’을 ‘봄놀다’로 번역한다. 이는 '봄'을 '뛰어노는 계절'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봄이 오면 차분함 대신 복작복작한 움직임으로 가득한 우리 동네를 보면 이 표현이 얼마나 적절한지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겨울과 겨울을 사랑하는 나에겐

질투 가득한 계절, 봄


  사람들은 두 팔 벌려 봄을 환영하면서 겨울이 춥고 힘들었다고 말한다. 겨울에 내리는 눈의 고요한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추운 날씨 덕분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따뜻하게 모여 즐겁게 시간을 보낸 것은 다 잊었나 보다. 그저 봄에 피는 꽃들만 아름다운 것처럼, 따뜻한 날씨만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듯이 말한다. 겨울의 입장에서 자신과의 시간을 폄하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봄에게 질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래서 꽃샘추위를 뿌리고 도망가는 겨울의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


  겨울을 제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겨울을 위해 소소한 복수를 해준다.

봄을 환영해 주는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듯, 봄바람은 벚꽃 잎을 흩날려주기도, 떨어지는 벚꽃잎들로 꽃길을 만들어주기도 하면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 벚꽃길이 아름답기는 하나, 나는 겨울을 위해 땅에 떨어진 벚꽃잎들을 툭툭 발로  차며 길을 망쳐버리는 것으로 자그마한 복수를 해준다.

벚꽃길을 망치기 위한 나의 발짓


이름마저도 한 글자인

특별한 계절, 봄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말은 간단하다. 어려운 단어나 복잡한 문법이 필요하지 않는다.

'사랑해' '고마워' 같은 말들도 있지만, <해리포터>에서 덤블도어가 스네이프에게 아직도 그녀를 사랑하냐는 질문에 "always"라고 답한 장면이나, <노팅힐>에서 기자가 안나에게 영국에 얼마나 있을 거냐는 질문에 데커를 보며 "Indefinitely"라고 대답한 장면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사람의 마음을 녹이는 말들은 간단하다.


 ‘봄’이라는 이름도 사계절 중에 유일하게 한 글자이다.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계절인만큼, 유일하고 특별한 한 글자 이름을 가질 자격이 충분하다.



겨울 내내 나를 눌러왔던 무겁고 어두운 음악들 대신,

가볍고 나른하게 나를 감싸는 살랑이는 음악들로

플레이리스트를 채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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