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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잊쑤 Nov 15. 2024

7월 : 2023년 여행, 혼자 가다 (4)

julio : 야구 이야기, 찐막 찐찐막 진짜 마지막의 마지막

호텔에 들어가자마자, 비에 젖은 머리를 감았다.

좋아하는 바디 워시 향이 내 몸을 휘감아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에어컨 온도를 20도로 낮추고, 폭닥폭닥한 새하얀 이불속에 폭 잠겨본다.

하지만 이내 냉방병에 호되게 당한 경험이 떠올라, 슬며시 26도로 온도를 올린다.

그 대신 얼굴과 손발만 이불 밖으로 빼꼼 내밀고 시원함을 만끽한다.


창밖을 바라보니, 

비는 여전히 멈출 기미가 없다.


이렇게 비가 오는데,

우천 취소 되는 거 아닌가?


조마조마한 마음에 날씨 앱을 열어본다. 예전에 야구장에 도착하자마자 우천 취소를 당한 이후, 날씨에 점점 더 예민해졌다. 왜 야구는 날씨의 영향을 받는 스포츠인 걸까. 이럴 때마다 돔구장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물론, 폐쇄형이 아닌 개폐형 돔구장이 생기길 바란다.


날씨 앱에는 저녁 7시까지 비가 내린다고 나와 있다.

'지금 비가 미친 듯이 오고 있긴 하지만, 설마 우천 취소 하겠어?'

막연한 희망 회로돌리며, 나의 빨간 유니폼을 챙겨 야구장으로 향한다.


지하철을 타고 야구장으로 가는 길


라이온즈를 상징하는 파란색랜더스를 상징하는 빨간색,

팀을 상징하는 컬러가 담긴 유니폼을 입은 야구팬들로 가득 지하철 안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지하철 안 풍경은, 어느 미술 작품과 견주어 봐도 밀리지 않는 완벽한 점묘화 일 거다. 거대한 점묘화에서 내가 빨간 1맡을 있다는 이, 내가 야구팬임을 자랑스럽게 여길 있는 조금은 이상한 포인트 중 하나이다.


오늘의 나는, 파란색 배경에 찍힌 빨간 점이다.

다수가 주는 마음의 안정감을 그리워하며,

소수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함과 불안함을 동시에 느끼며 야구장으로 들어선다.


여기가 파란 피의 선수들이 모여있다는

라이온즈 파크인가요?


지하철을 내리자마자 마주한 라이온즈파크 하늘은 너무나도 푸르렀다.

호텔에서 우천 취소 될까 봐 걱정하던 모습이 우스울 정도로 푸르렀다.

라이온즈파크

내가 간 경기의 선발 투수는 오원석 VS 수아레즈였다.

졌다. 선수들 더운 거 너무 아는데, 경기 보는 팬들도 덥습니다. 그럼에도 응원하겠다고 끝까지 앉아 있는데, 허 참.... 경기에 대한 총평은 사진 한 장이면 충분하다.

집관했으면 그냥 경기를 꺼버리면 되는데, 직관이어서 경기를 끌 수가 없어서 대신에 페트병 좀 꾸겼습니다.


내가 또 야구 이야기를 꺼낸 것은 두 선수 때문이다.

오원석 선수오승환 선수


2024년 끝자락, 오원석 선수가 KT 위즈로 트레이드가 되었다.


왜 트레이드한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물론, 김민 선수도 훌륭한 선수라는 건 안다. 하지만 우리 팀의 투수 상황을 보면 좌완 선발을 왜? 아니 왜 트레이드를 한 것인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오원석 선수는 단순히 좌완 선발 한 자리를 채우는 선수가 아니었다.

'김광현 선수의 후계자' 이 무겁고도 고귀한 상징성도 가지고 있는 선수였다.

SK 와이번스와 SSG 랜더스를 연결해 주는 에이스, 난 당연히 오원석 선수가 가질 수식어라고 생각했다.

김광현 선수가 버티고 있는 동안 그 그늘 아래에서 열심히 성장한다면, 충분히 그 자리를 물려받을 재목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번 시즌 성적이 좀 안 좋긴 했지만 오원석만큼 선발 자리에서 버텨준 선수도 없었다.

그래서 이제 우리 좌완 선발로 누구 쓸건대? 국내 좌완이 있어야 할 거 아니냐...


야구팬을 오래 하면 이런 갑작스러운 이별에 무뎌질 줄 알았다.

하지만 아직도 이런 이별에 마음 아파하는 걸 보면, 여전히 인천 야구를 많이 좋아하나 보다. 

아니면, 아직도 야구팬 짬밥이 부족한 것인가.


꽤 오랫동안 47번이 비워져 있었으면 좋겠다. 몇 년 후에 다시 돌아와서 달 수 있도록.


<종소리가 울린 후 '라젠카 세이브 어스' 노래가 울려 퍼지면, 다들 짐을 싸서 야구장을 떠난다.>

오승환이 등판하면 그냥 그 경기는 그대로 끝.

'오승환' 하면 떠오르는 장면이다.

(사실 나는 오승환 선수가 있는 삼성이 약간 부러웠지만, 우리 팀엔 박희수가 있음을 더 자랑스러워했다.)

영원할 것 같았던 마무리 투수 오승환의 시간이 저물어 가는 모습보게 줄은 몰랐다.


어릴 때는, 플레이는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는 선수가 은퇴식을 했다.

시간이 흘러, 베테랑으로서 팀을 이끌어주던 선수가 은퇴식을 한다.

또 시간이 흘러, 내가 직접 전성기를 목도한 선수가 은퇴식을 한다.

또또 시간이 흐르면, 내가 직접 막내 시절을 응원한 선수가 은퇴식을 하겠지?


오승환 선수는 내가 직접 전성기를 목도한 선수이다.

그가 저물어 간다는 건, 이제 곧 그다음 단계의 이별이 다가온다는 말이겠지.

내가 과연 김광현, 최정이 없는 인천 야구를 볼 수 있을까?

그냥 최대한 늦게 오기만을 바라본다.


이제 진짜 야구 이야기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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