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대선, 동물과의 공존을 상상하는 정치를 꿈꾸며
제20대 대선이 가까워지고 있다. 정당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유권자인 내게 대통령의 기준은 '참깨'를 모시는 집사가 된 이후, 조금 더 촘촘해졌다. 예전에는 후보자의 젠더 관점을 중요하게 봤다면 이제는 동물권에 대한 인식 역시 주의 깊게 보기 시작한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1년 남짓한 시간을 보낸 참깨는 내게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점을 알려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참깨에게 부끄러울 정도로 참담했다. 여야 정당들의 대선 후보 경선과정에선 미래를 맡기기 어려울 수준의 말들이 오가기도 했다. 발언을 둘러싼 논란도 잦았다. 그중에서도, '동물권'이 중심이 된 사안도 있었다.
지난달 31일, 국민의힘 대선 경선 TV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윤석열 후보는 유승민 후보에게 개 식용 정책 관련한 질문을 받았다. 그러자 윤석열 후보는 "반려동물 학대가 아니라, 식용개는 따로 키우지 않냐"는 답변을 내놔 입길에 올랐다. '개 식용과 동물학대는 다른 사안이라고 보는 인식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는 요지의 지적이 이어졌다.
그간 동물보호단체들의 숱한 문제제기 끝에 개 식용 산업이 참혹한 동물학대의 온상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개농장에 있는 개들은 평생 땅 한번 밟아보지 못하고 좁은 철망 뜬장 안에서 음식쓰레기를 주식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그 개들 중에는 누군가에게 반려동물이었던 유기동물도 있다.
이처럼 용납될 수 없는 학대가 이뤄지고 있음에도, 이 같은 현실은 외면되어 왔다. 개고기 찬반론에 가려져 동물학대 범죄와 현행법 위반에 대한 단속 없이 40년 가까이 개 식용 산업의 문제점이 방치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그간 윤석열 후보는 '애견인'이라고 스스로를 칭했다. 최근까지도 반려견 '토리'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국민과 소통하는 친밀한 정치인의 이미지를 내세웠다. 이를 두고 혹자는 정치인의 퍼포먼스에 불과하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하지만 동물권이 정책의 우선순위가 되지 못하는 상황을 고려할 때, 이러한 퍼포먼스조차 집사인 내게는 너무나도 귀할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을 선언한 이가 동물에 대해 말 한 마디 하는 것은 또 다른 '참깨'를 구해내는 데 보탬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대선주자가 만들 정책은 다를 것이란 막연한 기대를 품기도 했다.
그래서 더더욱 윤석열 후보의 '식용개' 발언을 들었을 때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이후 많은 동물보호단체의 비판이 이어졌지만, 윤석열 후보의 직접적인 공식 사과 등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며칠 전, 윤석열 캠프 종합지원본부장인 권성동 의원이 이 논란과 관련해 한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한 말을 들었다.
"윤 후보가 두 번에 걸쳐 개 식용에 분명히 개인적으로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윤 후보 입장은) 국가 지도자로서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며 "국가 지도자로서 찬성과 반대 의견이 있을 때 그런 자세를 취하는 것은 합리적"이라는 설명이었다.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식의 말을 방패 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전히 씁쓸함이 남았다.
윤석열 후보는 오늘(5일), 국민의힘의 대선후보로 확정되었다. 당선사를 이어가던 그의 발언 어디에도 '식용 개' 발언에 대한 언급이나, 동물권 문제에 대한 생각은 담겨있지 않았다.
각 당의 대선 후보들이 결정된 만큼, 대선 레이스는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치열한 정책 경쟁이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과 동시에 나는 이번 대선 레이스에 우리 참깨 역시 뛰어다닐 수 있었으면 한다. 동물과 공존할 수 있는 사회는 더 이상 미래의 과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2017년 국립생태원에서 진행한 '전국 인공구조물 야생조류 충돌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하루 2만 마리의 새가 유리창에 부딪혀 죽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도로의 투명 방음벽에 부딪혀 죽는 새는 제대로 된 통계가 나오지 않는 점을 고려해볼 때, 실제로는 더 많은 새들이 죽었을 것이다. 유리창 충돌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은 있으나 인간 중심의 구조물을 선택한 결과, 동물의 생명은 그야말로 낙오된 것이다.
나는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는 이들의 삶 역시 담길 수 있는 정치를 간절히 바란다. 또한 이 정치의 주어는 결코 '인간'만을 가정하지 않는다. 동물에 대한 일상화된 학대와 죽음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은 결국 '인간'이기 때문이다. 동물과의 공존이 가능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반영하고자 하는, 최고통치권자인 대통령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사회를 살아가고 싶다.
(본 글은 2021년 11월 5일, 오마이뉴스 '사는이야기'를 통해 발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