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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루아 Jul 12. 2020

나도 상처 받는다

나의 일상, 나의 생각

나도 상처 받는다          



몇 년 전, 엄마가 돌아가셨다. 엄마는 술만 마시면 죽는다는 말을 자주 했다. 우울함을 끌어안고 살았고, 자주 외로워했다. 외가의 사람들과 멀리 떨어진 타지에 아빠와 단둘이 살게 되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엄마는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은 남들과 많이 달랐다. 엄청난 소란과 엄청난 침묵이 공존했다. 외가 식구들이 들이닥쳐 한바탕 소란을 일으킨 후, 어디 하나 소식을 전하지 않아 손님이 오지 않았기에 조용하기만 했다. 


         

아빠는 엄마의 죽음에 많은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힘들어했던 것도 같다. 아닌 것처럼,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고 말을 했지만 한 번씩 술을 마시고 내게 전화를 했다. 그날도 술을 마시고 내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그 말을 했다.     


아빠는 내가 세 살쯔음에 이혼을 하고 엄마와 재혼을 했다. 그즈음에 점을 봤었다는 이야기를 뜬금없이 했다. 점쟁이가 그랬단다. 내가 아빠 옆에 여자가 있는 꼴을 못 본다고. 즉, 아빠가 결혼을 하면 내가 부부 사이를 그렇게 방해를 한다고 했단다. 그 말을 내게 했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왜? 그 상황에 그 말을 왜? 나에게 왜? 아빠는 도대체 내게 그 말을 왜 했을까.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을까. 내 탓이 하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내가 원망스러웠던 것이었을까. 알 수가 없다. 그다음 날에 술이 깨서 또 아무렇지 않게 다른 일에 대한 말을 하던 아빠에게 그 말의 의미를 물을 수가 없었다.     


난 그냥 또, 속으로 삭일 수밖에 없었다. 한 번씩 그렇게 술을 마시고 내게 전화를 해서 말을 할 때마다 나도 상처 받는다. 나는 마치 아무렇지 않은 사람인 것처럼 말하고 전화를 끊으면 끝인 것처럼 대하는데... 나도 상처 받는다. 말을 하지 않을 뿐이다.          



감정의 쓰레기통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오랫동안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었던 적이 있다. 돌아가신 엄마에게서. 그래서 난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에 슬프기보다 화가 났다. 난 아직 엄마에게 사과받지 못했다. 엄마는 내게 사과를 했어야 했다. 난 엄마에게 사과를 하라고 말하려 했다. 그런데...     


엄마가 돌아가시자 다음엔 아빠 차례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다행히 아빠는 더 이상 그런 전화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난 분명 상처를 받았고, 그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몇 년이나 지났지만 난 아직도 그 날을, 그 말을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몸에 남은 상처만이 상처라고 부르는 것은 아니다. 마음에 남은 상처도 상처다. 마음에 남은 상처는 보이지 않지만 더욱 깊이 남으며 오래오래 지워지지 않는다. 좋은 기억은 잊히기도 하고, 깜빡하기도 하는데... 마음에 남은 상처는 생생하게 기억을 한다. 그래서 오늘도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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