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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혜 Aug 19. 2020

팟캐스트와 나의 역사

를 돌이켜보려다 전혀 기억나지 않는 과거의 나를 발견했다.

시작 2008-2010: Food for Thought, 영어 뉴스 팟캐스트들.


팟캐스트를 언제 어떤 계기로 듣기 시작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팟캐스트는 [Vegetarian Food for Thought] (아직도 계속 올라오는 팟캐스트인데 이제 앞에 vegetarian이 이름에서 빠졌나 보다). 2010년 9월, 첫 휴가로 친구들을 만나러 간 LA에서 그 팟캐스트를 듣고 있었다는 게 기억난다.


도대체 나와 팟캐스트의 관계는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했을까 궁금한 마음에 이메일에서 검색해 봤더니 2010년 1월 “팟캐스트 - 영어 스터디, 정보교환, 사연, 인터뷰..”라고 쓰여 있는 문서가 있었다. 그런 주제로 팟캐스트를 하고 싶다는 건가? 그때 이미 팟캐스트를 하고 싶어 했다는 것도 금시초문이지만 대체 무슨 팟캐스트를 듣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는데? 내 이메일인데 남의 계정을 훔쳐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이전에 사용하던 메일 계정에서도 검색해봤더니 세상에 2008년 봄에도 팟캐스트를 듣고 있었다고 한다! 교환학생으로 일본 센다이에 있을 때 교양영어 수업을 들었는데 거기서 팟캐스트로 뉴스를 듣고 공부하는 걸 했나 보다. 그 수업의 원어민 선생님이 좀 특이했고 수업도 전형적이지 않고 흥미로운 편이었으며 프로젝트로 뭔가 영상을 만들려고 했다는 건 기억이 나지만 팟캐스트는 전혀 모르겠는데?? 하지만 교수님이 너의 “experience with viewing video podcasting” 의 결론은 뭐니 라고 묻는 이메일을 보내서 내가 답 한걸 보니 팟캐스트를 보기는 봤나 본데… 비디오 팟캐스트는 또 뭐지?


그때 어떤 팟캐스트들을 어떤 생각을 하며 들었는지 이메일을 자세히 뒤져보니, [CNN Student News], [Talk About English by BBC], [Business English Pod]가 언급되어 있는데 전혀 기억이 안 나는 거 보니 딱히 내용이 흥미로웠던 건 아니고 “영어 공부를 위해서” 들었던 것이었나 보다.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때 CNN 뉴스 같은 거 듣고 받아 적고 쉐도잉 하고 했던 기억이 난다. 학원에서 테이프로 녹음한 거 나눠주고 그랬던 것 같아.. 소름. 그리고 2009년 봄, 도쿄에서 인턴을 하고 있었을 때 친구에게 보낸 이메일에 또 팟캐스트가 등장한다. 자전거를 타고 통근하며 꼬박꼬박 듣고 있지만 작년이랑은 꽤 다른 방송들을 듣고 있고 팟캐스트에서 나온 (영어) 단어 정리를 하려고 했는데 안 했으며 [New Yorker Outloud]랑 [Business Week]가 재미있다고 했더란다. 앞에 팟캐스트에서는 뱀파이어 문화, 작가 소개, 음반 비평 이런 걸 해준다며. 이것은 정말 나와 같은 사람이 맞는가. 그때의 나는 지금과 꽤 다르니까 그랬을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상상이 잘 안 간다. [New Yorker Outloud]는 그래도 이름이 익숙한데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다. 찾아봐야지.


위 내용은 오늘 이메일 검색을 해 보기 전에는 전혀 몰랐던 내용이고, 지금 적어나가면서도 기억이 돌아오지 않는다. 12년 전에 내가 쓴 이메일도 다른 사람 이야기 같고 전혀 기억이 안 나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좀 섬뜩하기도 하다. 나의 첫 팟캐스트인 줄 알았던 [Food for Thought] 관련해선 꽤나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 호스트의 잔잔한 목소리도 오프닝도 기억나고 가끔은 그걸 들으면서 걷던 그때의 그 거리들도 기억나고. 세세한 내용은 기억은 안 나지만 비건이 뭔지도 잘 모르고 책 두 권 읽고 덜컥 시작한 비건 생활에 아주 큰 도움이 되었던 팟캐스트였다. 고기 유제품 달걀을 ‘먹지’ 않는 것과 건강 관련해서만 조금 알고 시작한 비거니즘인데 가죽이나 양모 모피 꿀 등 대한 이야기도 이를 통해 들었고 전반적으로 비거니즘의 근본이 되는 철학과 윤리에 대해 알기 쉬우면서도 자세하게 배울 수 있었다. 그때 당시 이미 오랫동안 비건 생활을 한, 유명 비건 레시피 책들의 저자인 호스트의 일상 얘기도 듣고, 레시피나 생존방법,  장보기 팁 같은 것도 많이 알게 되고. 유튜브가 활성화되기 이전 시기에 정말 가뭄에 단비 같은 유용한 팟캐스트였다. 레시피들은 블로그를 통해 많이 얻을 수 있었지만, 비거니즘 전반에 대한 내용이나 삶의 태도에 대한 내용은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또 그건 목소리로 생생히 듣는 재미가 있으니까. 요즘도 새 에피소드들이 올라오는 것 같지만 왠지 다시 듣고 있지는 않는데, 비거니즘 관련해서는 더 궁금한 게 없는 걸까. 그건 아닌데.. 그나저나 이건 처음에 어디서 알고 듣게 되었을까. 그냥 팟캐스트에서 비건이라고 검색해서 들었을까, 어디 블로그 같은 데서 추천을 받았을까. 2010년엔 팟캐스트가 지금처럼 어마어마하게 많지도, 비거니즘 관련 정보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었으니 그냥 검색해서 뜬 유일한 팟캐스트였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비건 생활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알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생각으로 시작되고 초기의 내 생각과 일상은 어땠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특히, 부모님에게 뭐라고 말했을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려웠던 기억도 없네) 참 궁금하지만 알 수가 없어서 좀 아쉽다. 일기를 쓰는 성격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무튼 그 이후에도 회사를 다니고 비건 생활을 하고 책모임과 드로잉 모임을 하면서 팟캐스트를 꾸준히 (드문드문?) 들었던 모양이다. 딱히 뭐를 어떻게 들었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친구들과의 이메일을 보니 스페인어 배우는 팟캐스트도 듣고, 채식 레시피도 팟캐스트를 통해 봤다고 하고. 그러고 보니 생각난다. 팟캐스트에 영상이 있는 경우가 많았나 봐.. 이게 비디오 팟캐스트인가? 그때는 유튜브 이전의 시대였나.  [Delicious TV], [Totally Vegetarian], [Everyday Dish TV]를 통해 비건 레시피를 재밌게 꾸준히 보고 있었다는데 제일 앞에 건 기억난다. 지금은 검색해도 안 나오네. 그런 영상을 봤다는 건 알았는데 그게 팟캐스트라는 건 잊었었다. 얼마 전에 웬 기후과학 관련 팟캐스트에 영상이 있길래 영상도 되나 처음 보내 했는데.. 참. 그리고 2012년 버켓 리스트에도 팟캐스트 만들고 싶다고 나와 있다. 그래 되게 하고 싶은 아이템인가 보다. 언젠가 죽기 전엔 해보자.


독일에서, 2013: 빨간 책방과 책 읽는 시간.

그다음 팟캐스트에 관한 생생한 기억은 2013년, 회사를 그만두고 독일에 처음 가 연구소 인턴생활을 할 때 좋아하던 오픈 키친이 있던 집에서 종종 팟캐스트를 크게 (이어폰도 안 끼고!) 틀어놓고 요리하던 기억이다.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과 [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주로 들었었다. [Food for Thought]도 들었었을까 아니면 비거니즘 관련 정보는 이미 졸업했다고 생각해서 안 들었던 걸까? 그리고 다른 팟캐스트를 더 찾아들었는지 어땠는지도 모르겠다. [빨간 책방]은 독일에 가서 심심함에 듣기 시작한 줄 알았더니 2012년 시작할 때부터 들었는지 이런 팟캐스트가 생겼다며 책모임에 소개하는 이메일도 발견했다. 이동진 기자와 김중혁 기자가 나와서 책 소개를 하고 만담(?)도 하고 그랬던 것 같은데 대체로 재미있었다. 하지만 아마도 소개된 책들을 딱히 찾아 읽지는 않았다는 게 함정.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은 김영하 작가가 책(주로 소설)의 한 부분을, 단편의 경우 종종 통째로 읽어주고 가끔 짤막한 사사로운 얘기들이 앞뒤에 덧붙여지는 잔잔하고 소중한 방송이었는데 이제는 검색도 안되어서 깜짝 놀랐다. 찾아보니 마지막 업데이트는 2017년이었지만 바로 몇 주 전인 2020 7 31 마지막으로 서버에서도 내렸다고 한다. 하긴, 들으면서 책을 이렇게 다 읽어줘도 되나, 난 너무 좋은데 저작권자랑 다 얘기가 된 건가, 역시 작가 파워인가! 싶었는데.. 그게 작가님도 부담이었나 보다.


다시 한국, 2019: 드랍더비트, 대화 만점.

2013년에 팟캐스트를 들었던 기억 이후로 언제 어떻게 팟캐스트를 안 듣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건 2019년 봄 이전 몇 년간은 딱히 팟캐스트를 듣지 않은 것 같다는 것. 2019년 한국에서 [드랍더비트] 라는 팟캐스트에 인터뷰이로 출연하게 되면서 다시 팟캐스트를 듣기 시작했는데 그 당시 아무것도 듣고 있지 않았으니까. 해당 팟캐스트를 들으며 몇 년 만에 팟캐스트의 세계로 다시 들어왔는데 다른 한국 채식인들의 TMI 듣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러다 비폭력대화 공부를 하면서 [대 만점]이라는 관련 팟캐스트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듣게 되었다. 더 이상 업데이트는 없는 시리즈지만 엄청나게 유익하다! NVC센터의 선생님과 작가님과 게스트들이 출연하는데.. 기초부터 짚어주는 팟캐스트도 좋고 사례 나누는 것도 좋고. 책을 읽거나 수업을 듣고 기본적인 내용을 알고 들어도 새로 알게 되는 사실들이 많고 엄청나게 도움이 되지만, 기본적으로 비폭력대화에 대해 잘 모르고 듣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팟캐스트만 들어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업데이트는 없어도 이미 있는 에피소드들이 많아서 처음부터 다 죽 들어도 좋고 아니면 시즌 2 시작인 EP.11부터 기본개념 - 예시 번갈아서 설명하는 에피소드들과 가장 최신 에피소드들인 EP.40-50 새싹 시리즈가 정말 좋다. 중간에 시즌이 여러 번 바뀌면서 에피소드 번호는 들쑥날쑥하지만.. 비폭력대화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강력추천! 책이랑은 또 다르게 이론만이 아니라 일상의 생생한 실전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어서 크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프랑스, 2019-2020: 듣똑라

작년 가을, 유럽으로 돌아오면서부터는 [듣똑라]를 듣기 시작했다. ”빌라 선샤인”이라는 일하는 여성들을 위한 커뮤니티가 있다, 라는 말을 듣고 그게 뭔지 궁금해서 검색하다 [듣똑라] 인터뷰가 떠서 그걸 계기로 입문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연히 듣게 되었지만 알고 보니 정말 엄청나서, 나의 인생 팟캐스트 중 하나라고 부르고 싶다. 단 하나의 한국어 팟캐스트를 고르라면, 지금은 비록 작년 가을처럼 하루에 몇 에피소드씩 열심히 듣지는 않지만, 당연히 [듣똑라]를 고를 것 같다. 아 한국에 있었을 때 알았으면 오프라인 행사도 갈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아쉽다. 이미 쌓인 에피소드도 몇 백개인데 현재 업데이트도 한 주에 여러 개 (한때는 주 5회였던 적도 있다) 되고 있어서 평생 다 못 듣고 죽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기쁨을 함께 느끼고 있다. 게다가 이젠 다른 팟캐스트와 오디오북들도 듣고 있으니.. 요새는 새로 올라오는 것 중에 관심 있어 보이는 주제만 듣고 있지만 한때는 정말 하루에 서너 에피소드씩 들었더랬다. 그때 이후로 평소 통근길의 도보든 자전거든 지하철에서도, 기차나 공항이나 비행기에서도, 이동할 때는 무조건 팟캐스트나 오디오북을 듣고, 종종 요리할 때도 듣고.. 생산적인 일은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그렇다고 인터넷 서핑이나 하기 아쉬울 때도 팟캐스트를 튼다.


[듣똑라]는 듣다 보면 똑똑해지는 라디오의 약자로 30대 여성의 시각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뉴스를 다룬다. 덕분에 젠더 감수성의 부재에서 기인한 불편한 표현이나 관점을 접할 걱정을 할 필요 없이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모든 시사 전반을 어떤 내용이던 정말 편안하게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것 같다. 물론 주제 자체가 불편하고 화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e.g. N번방 사건) 그걸 다루는 [듣똑라] 호스트 기자님들과 게스트의 태도가 불편하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에 정말 알고 싶지 않다, 라는 생각이 드는 이슈에 대해서도 여기서라면 안심하고 듣는 편이다. “밀레니얼을 위한” 시사 교양 팟캐스트라고 하는데 확실히 20-30대 여성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는 시각의 콘텐츠인 것 같다. 젠더 감수성뿐 아니라 환경과 기후위기에도 관심을 가지고, 사회적 약자 소수자 인권과 동물권 등 정치적 공정성에 대해 무척 예민하며 무조건 개인이 열심히 노오력해서 성공하자라는 신자유주의적 성취주의적 관점에서도 벗어나 있어서 정말 소중하다. 다만 정작 기자님들은 너무 열심히 바쁘게 사시는 것 같아서 좀 걱정이..


추천 에피소드로는, 최근 에피소드로는 원헬스 프로젝트들이 다 좋고 (코로나 등 전염병-동물-자연 등의 연결관계를 다룬 기획 시리즈), 장마와 기후위기, 호주 산불, 미세먼지 등 환경  관련 에피소드도 종종 나온다. 비거니즘과 동물권에 대해서도 원헬스 프로젝트와 관련해서 소개가 많이 되었는데 굉장히 다가가기 편안한 관점으로 다뤄져서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인터뷰 콘텐츠들은 다 정말 정말 좋다. 주로 여성 CEO나 작가나 유명인사들이 나오는데, 전 국민에게 다 알려진 유명인사인 경우도 가끔 있지만 밀레니얼 여성들이 궁금해할 만한 맞춤형 게스트들이랄까. ‘박막례’ 채널의 김유라 PD, 영화 ‘벌새’ 김보라 감독, 은유 작가, ‘82년생 김지영’의 조남주 작가, 인스타툰 ‘며느라기’의 수신지 작가, 황정아 물리학자, 임팩트 투자기업인 ‘옐로우독’ 제현주 대표, ‘에누마’ 이수인 대표, ‘퍼블리’ 박소령 대표, “일하는 여성들의 커뮤니티” 양대산맥인 ‘빌라 선샤인’과 ‘헤이 조이스’ 대표분들의 인터뷰가 모두 다 너무 유익하고 감동적이었다. 박은지 트레이너와 ‘자기 방어훈련’ 관련 에피소드와 비혼 공동체 관련 에피소드, 그리고 중앙일보 ‘밀실’ 팀이 나오는 에피소드들도 전부 다  인상적이었다.


정치는 국내 정치든 국제정치든 어렵다고 생각해왔는데 이지상 기자님과 채윤경 기자님의 정치 및 법조 관련 에피소드들을 보다 보면 (내용을 울화통이 터질 때가 많지만), 정치가 이렇게 흥미롭고 재밌고 꼭 우리가 알아야만 하는 내용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온다. 채윤경 기자님은 이제는 JTBC법조팀에 있지만 옛날 시즌에서는 정치분야를 다뤘었는데, 특유의 시니컬함 이면에 따뜻함이 있고 무엇보다 정말 재밌어서 옛날 옛적 박근혜 탄핵 전 에피소드들까지 다 찾아들었다. 탄핵 국면과 이전 총선 에피소드들을 듣다 보면 나는 이미 결론을 다 알고 듣는 스릴러 같은 기분도 든달까. 그때는 게스트로 나왔던 기자님들이 호스트가 되어 있는 것도 신기하고. 지금 호스트 기자님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 뉴스를 더 잘, 더 공정히, 하지만 열정을 담아 전달해서 더 정의롭고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하고 싶다 라는 마음과 불의를 봤을 때 화가 나는 것을 참지 못하는 마음이 다 전해져서 정치 사회 관련 에피소드들이 더 생생해지고 이게 단순히 ‘뉴스’가 아니라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구나 싶어 뭉클할 때가 많다.  국제정치는 작년 홍콩 시위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안타까웠는데.. 이제는 코로나와 인종차별 이슈에 묻혀버린 것 같아서 안타깝기도 하다.  


그토록 사랑하던 [듣똑라]는 락다운이 시작되면서 시사와 뉴스에 대한 피로감 때문인지 약간 시들해지고 (그래도 종종 듣는다) 다른 팟캐스트들을 많이 들었는데, 여름에 듣똑라 아티클 리뷰어를 하면서 또다시 새롭게 접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듣똑라는 유튜브 영상도 많이 올라와서 궁금하긴 한데… 나는 유튜브 세대가 아닌가 봐 기자님들 너무 좋은데도 유튜브는 잘 안 보게 된다.


 이게 뭐라고, 이스라디오, 기대라, 가디언의 Long Reads, Energy Transition Show

그 외에 듣는 팟캐스트는 [가디언의 Long Reads]를 가끔 듣고 [요조와 장강명의 책 이게 뭐라고] (지금은 요조님만 하는 듯)와 [이슬아의 이스라디오]를 종종 들었다. [듣똑라]에서 요조님의 인터뷰와 새 책 ‘아무튼 떡볶이’ 이야기가 나왔는데 요조님도 팟캐스트를 한다기에 넘어가게 되었고 거기서 짤막하게 읽어주는 글들(요글명글)에 이슬아 작가의 글이 많아서 [이스라디오]로 흘러들어 갔다. [책 이게 뭐라고]에서는 특히 ‘아무튼 떡볶이’와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등 요조님 본인 책 이야기를 하는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고 요글명글은 다양한 글들을 접할 수 있었는데 선택된 글들이 다 인상적이었다. [이스라디아]는 이슬아 작가님이 본인이 쓴 글을 낭독해주는데 정말 좋았다. 그 외에 한때는 [Energy Transition Show]라는 에너지 전환 관련 팟캐스트에 IPCC 시나리오랑 모델링에 관해 소개하고 관련자들이 인터뷰하는 에피소드들이 있어서 열심히 들었는데 내 연구분야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꽤 되었다. 기후변화 관련해서는 [기대라: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라디오]도 괜찮은데 왠지 모르게 아주 자주 듣게 되진 않는다. 하지만 최근 올라온 에피소드들은 다 흥미로워 보여서 다 다운로드하여 뒀으니 다시 듣기 시작해야지! 이 글을 쓰고 바로 다음날 이동을 할 일이 있어서 [기대라]의 '월간 기후' 코너를 3월 달 것부터 몰아 들었는데 내용이 알차고 한국의 기후정책 관련, 특히 그린 뉴딜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다른 코너들도 들어봐야겠다. 다만 왜 안 듣게 되었는지 기억이 났는데, 진행방식과 몇몇 출연자들의 유머 코드가 나와 잘 맞지 않아서가 아닌가 싶은.. 그건 아마도 메인 진행자가 있는 게 아니고 다수의 출연자가 (3-5명?) 함께 진행하다 보니 각자의 개성이 조금 부딪히기도 하고 사사로운 이야기가 불쑥불쑥 나올 때가 있는데 다 같이 전문 DJ나 진행자가 아니라서 매끄럽게 조정이 잘 안 되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편집을 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은 부분들이 다른 전문 진행자들이나 1인 진행자가 있는 팟캐스트보다 많은 편이라서 조금 아쉬웠다. 심지어 그 어색한 부분들은 말하고 나서 이거 편집하자, 하고 출연자들끼리 이미 말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것만 편집해도 훨씬 좋을 것 같은데 왜 자주 살아있는 걸까 싶기도 하다. 아마도 출연자 중 1인이 편집을 한다면 출연자들끼리는 친하니까 그게 어색하기보다 더 재밌을 수도 있긴 하겠다. 출연자들을 잘 모르는 사람이 듣기엔 어색해도. 하지만 이것도 한 다섯 에피소드 몰아서 들었더니 익숙해졌고 내용에만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앞으로 팟캐스트를 만든다면 다른 사람에게 더 많이 들려주고 피드백을 받고 내 생각보다 더 과감하게 편집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와 봉쇄와 명상, 2020: Ten Percent Happier, Deconstructing Yourself, 남극일기.

3월 중순, 코로나로 인한 봉쇄가 시작되면서 이제 통근을 안 하니 달리기 하거나 장 보러 갈 때만, 혹은 가끔 요리할 때나 오디오북과 팟캐스트를 들어서 듣는 시간이 현저하게 줄었었다. 이때쯤 명상 모임에 참여하면서 명상과 전반적인 삶에 대한 (??) 내용을 다루는 팟캐스트들을 소개받았는데 정말 다 너무 좋다. 명상에 대해 몰라도 들을 만한 흥미로운 내용들이다. 문제라면 [듣똑라]처럼 정말 들어도 들어도 끝이 없어. 그중에서 [Ten Percent Happier with Dan Harris]를 가장 많이 듣는 것 같은데 동일명의 책을 쓴 저자이자 ABC뉴스 앵커가 진행하는 팟캐스트로 명상에 대한 얘기도 많이 하지만 명상에 딱히 관심이 없어도 듣기 좋다.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 팟캐스트랄까. 생산성, 잠, 번아웃, 느리게 일하기, 불안, 중독, 습관, 자기 연민 등에 대해서 가벼워 보이지만 꽤 심도 깊게, 그리고 통상적인 성취주의 관점과 다른 관점으로 다뤄서 정말 유익하다.  


[Deconstructing Yourself]는 좀 더 하드코어 명상 관련 팟캐스트인데.. 명상을 오래 해야만 들을 수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이런 내용에 관심이 있기만 하면 들을 수 있다. 물론 나 같은 초심자는 잘 이해하기 어려운 에피소드들도 종종 있지만… (그에 비하면 Ten Percent Happier는 명상 초심자나 명상을 안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이해할 수 없는 에피소드는 없다). [Emerge]는 아직 많이는 못 들어봤는데 들어본 에피소드들은 꽤 인상적이었다. 얼핏 보기로는 명상이나 영적 성장이 단순히 개인의 변화가 아닌 사회적 전환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좀 더 초점이 있는 팟캐스트인 것 같다. Dr. Jem Bendell - The Meaning and Joy of Inevitable Social Collapse 이 에피소드는 정말 강추. 여기서 소개된 Deep Adaptation 논문도 읽으려고 받아뒀는데.. 아직 시작만 겨우 했다. 이 논문과 에피소드 관련해서는 다른 글에서 자세하게 다뤄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아주 최근에 듣기 시작한 팟캐스트는 친구의 추천을 받은 [이원영의 남극일기]. 몇 개 안 들었는데 호스트분 진행도 차분하고 재밌다! 친구가 강추한 ‘논문을 거절당하는 방법’ 에피소드는… 최근에 리젝 당하신 분이라면 안 듣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음. 최근의 기후변화 관련 에피소드는 살짝 아쉬운 부분이 더 많긴 했다. 하지만 그 둘 외에는 처음부터 들으려고 (에피소드들 제목이 다 흥미로워 보여서 뭐부터 들을지 망설이고 있는데 친구가 그렇게 듣는다기에..) 시작해서 첫 세 에피소드를 들었는데 남극 기지의 월동대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새롭다!  다만 오디오 클립에만 있어서 새 앱을 다운로드하여야 해서 아주 약간 번거롭긴 했다.


그 외에도 한두 에피소드씩 듣고 좋았거나 추천받은 수많은 팟캐스트들이 있지만, 들을 시간이 없... 사실 별로 재미도 없는 웹툰까지 찾아서 볼 시간에 팟캐스트 틀어놓고 딩굴딩굴하면 될 텐데 왠지 아무 일도 안 하면서 오디오만 듣는 일은 안 하게 되는 아이러니.




오디오북

아주 옛날에 오디블에서 오디오북을 들었었는데, 무슨 책이었는지 모르겠다. 옛날 계정에 다 있어야 되는데 아마존에 통폐합되면서 아마존 아이디로만 로그인이 가능한 것 같으니 안타깝다.


작년에 L의 추천으로 [도넛 경제학]을 듣기 위해 다시 오디블의 세계로 들어왔다. 십 년 만에 들어가 본 오디블은 아마존 가족이 되어버려서 망설여졌지만.. 오디오북은 진짜 여기가 독점 플랫폼인 것 같아 다른 선택이 없다는 게 안타깝다. 아무튼 이를 시작으로 올해 유발 하라리의 책들도 다 들었다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도넛 경제학]도 유발 하라리의 책들도 전부 다 완전 강추!!! 책 보다 빨리 읽고 이해하기도 쉬운 것 같다. 그리고 나선 나오미 클라인의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루이자 메이 알콧의 [작은 아씨들]을 받아놨는데 (작은 아씨들은 저작권이 풀린 작품이라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에서 전자책과 오디오 파일이 무료고, 멋진 신세계 오디오북은 누군가 유튜브에 올려놨다..) 얘네들은 안 듣고 팟캐스트만 열심히 듣다가 요새는 명상 관련 책과 팟캐스트를 번갈아 듣고 있다. 무언가를 듣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듣고 싶은 팟캐스트와 오디오북은 끝이 없고!




이메일에서 발견한 나의 잊어버린 과거에 대한 뒷 이야기


2008년 영어수업 교수님과의 이메일 중에는 Weekly iPod에 대한 질문, 이라거나 Daily iPod diary 안 가져온 것 다음 주에 내렴, 이라는 메일도 있는 걸 보니 매일 아이팟을 사용해서 공부하고 뭔가 일지를 썼나 보다. 근데 왜 정작 이 일지 파일은 메일에 없는 걸까. 궁금한데. 12년 전에는 이런 걸 메일로 안 내고 손으로 써서 냈나? 내가 만든 것으로 보이는 관련 프레젠테이션 자료는 찾았으나 너무 엉성해서 내용을 기억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이걸 봐도 정말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게 놀랍도록 신기하다. 심지어 8월에는 iPod in English as a Foreign Language라는 온라인 콘퍼런스에도 같은 수업을 들은 다른 학생과 함께 아이팟을 사용하여 영어공부를 한 우리 경험을 공유하는 발표를 했다고 하는데.. 역시 기억이 나지 않죠 (위의 발표 자료는 7월 자료니까 수업에서 내부적으로 한 발표인 듯).


그래도 여기서 말하는 아이팟은 나의 노란색 아이팟 나노겠지. 그때의 기억이 나는 게 아니라 그냥 그 물건의 모양이 기억이 나고 사실 얼마 전에 찾아서 아직도 가지고 있으니까… 했는데 아니었다!! 나의 얄팍한 기억력이란. 2009년 봄에 내가 이 교수님에게 메일을 보내길 결국 아이팟 나노를 샀는데 팟캐스트를 다운로드하면서 생각이 나서 메일을 쓴다고 했다. 아 그럼 아이팟을 수업에서 빌려줬었나 보다. 안 그래도 위 내용을 적어 나가면서 그때는 피쳐폰의 시대였는데 그럼 아이팟이 없는 사람들은 수업의 효과를 못 보는 건가 싶었는데 다행(?)이군.


그리고 팟캐스트와는 상관없지만 이 교수님과의 메일에 “Thank you for considering sharing your opinion about this teaching/learning approach”랄지 “Thank you for your responses, I am learning so much about your learning strategies, that is very good”이라고 쓰여 있어서 뭔가 굉장히 열심히 연구하는 선생님이고 우리의 학습 경과를 보면서 그쪽도 배우고 있구나! 하는 게 느껴져서 왠지 마음이 몽글몽글 해졌다. 그땐 그런 생각 못 했던 것 같은데..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하는 나의 영어교사 친구​도 떠오르고. 이때가 내가 팟캐스트를 처음 접하게 된 계기가 맞다면 어쨌든 덕분에 팟캐스트의 세계에 입문해서 수많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게 된 거니까 고맙기도 하고. 아 이 교수님이 내 이름의 혜를 매번 hye가 아닌 hey라고 써서 왜 그러냐고 했더니 hey가 더 실제 발음에 맞아서 자꾸 헷갈려서 그렇게 쓰게 된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근데 언젠가부터는 알면서도 일부러 그렇게 쓴 것 같은데.. 바보가 아니고서야. 마지막 메일에 보니 10년 간의 일본 생활을 접고 다른 나라로 간다고 하던데 그때도 내가 너 내 이름 잘못 썼어 라고 코멘트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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