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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혜 Aug 18. 2020

혹시 여러분의 지난 4개월도 사라져 버리진 않았나요

프랑스에서의 2020년 상반기를 돌아보며

어쩌다 보니 매달 2020년 계획을 돌아보며 진행상황을 쓰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라고 바로 이전 글에 썼지만, 그 이후로 4개월 동안 브런치 로그인 조차 하지 않은..

오랜만에 글을 써야지! 하고 여러 가지 글감을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가장 위에 뜬 이 글을 보니 응당 상반기를 정리하는 글을 써야만 할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팟캐스트들에 대해서나, 논문 읽기 모임에서 다룬 논문들 소개나, 글쓰기 모임에 대한 얘기 같은 걸 쓸 생각이었는데. 참, 그전에 쓰고 싶은 글 목록 정리도 하고.. (물론 찾아보니 이미 이전에 만들어 놓은 목록과 이미 쓰기 시작한 글이 스무 꼭지 이상 있지만)


그래도 상반기를 돌아보다 보면 또 앞으로 어떤 글을 쓰면 좋을지 더 잘 정리도 되지 않을까 싶으니 일단 의식의 흐름대로 이 글부터 써보자. 꽤 기니까 궁금한 소제목만 골라 보셔도 됩니다. 


연구

논문용 표(테이블)를 하도 많이 만들어서, 3월 돌아보기 글에서 쓴 테이블이 뭔지 헷갈릴 정도다. 첫 번째 논문은 기존의 글로벌 기후/환경 시나리오 리포트들을 리뷰하는 글인데.. 처음에는 각 시나리오들의 변수들을 정리했고 (아마 4월에는 이 표를 얘기했던 거겠지), 그다음엔 각 리포트들이 그 변수들의 인과관계를 어떻게 가정하고 있는지를 정리한 다이어그램들을 그렸고 (결국 첫 번째 테이블은 그냥 추가 자료가 될 뿐 일 것 같은..) 그 다이어그램을 바탕으로 표를 만들고.... 해서 일단 다 하고 글도 방법론-결과-토론 부분은 1차로 다 쓰고 넘기긴 했다. 물론 8월 1일 휴가 시작 전에 넘기고 오려고 했으나 결국 8월 4일인지 5일인지에 넘긴.. 이 정도면 양호하지 않나?


근데 요즘 걱정은, 이게 아무리 리뷰 페이퍼라지만 이렇게 주먹구구식(???)의 방법론(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것 같은 방법론???)으로 논문을 써도 되나(=저널에 실릴 수 있을 것인가, 유의미한 연구인가) 하는 의문이 계속 든다. 나의 지도교수는 LCA (Life cycle assessment 전 과정 평가) 전문가이고, 나도 석사논문으로 LCA를 했고, 박사과정도 이런 내용인 줄 알았는데 어쩌다 보니 미래 시나리오 분석을 하고 있어.. 물론 궁극적으로는 나도 LCA를 쓸 거고 이의 배경이 될 미래 시나리오를 만들기 위해서 이렇게 된 거긴 하지만. 나랑 지도교수 L이랑 둘 다 전혀 모르는 분야라서 헤매는데 L은 안 헤맨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나름 믿고 따라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미팅 때마다 자꾸 방향이 요리조리 바뀌어서... 요새 보니 L도 뭘 잘 알아서 그런 게 아닌 것 같고 (물론 미팅하다 보면 확실히 날카로운 관점과 쌓인 내공이 보인다) 그냥 내가 줏대를 가지고 좀 더 내 나름대로 중심축을 잡아서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을 좀 하게 되는 6-7월이었다. 하지만 내가 이 분야에 대해 너무 모르니까 어느 방향으로 나가면 좋을지 확신을 갖기 어려운 건데.. 이 분야 전문가들에게 직접적인 조언을 얻고 싶다고! 근데 L은 우리끼리 뭔가를 완성한 다음에 보여주자 라고 하는 입장이라. 대체 왜?? 다행히 7월에 들은 Futuring for Sustainability 서머스쿨에서 미래 시나리오 관련하여 다양한 얘기도 듣고, 그쪽 연구자분들이 궁금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라고 했기에 연락해 볼 생각이다. 그리고 3월에 가입한 Anticipatory Governance 슬랙 커뮤니티에서 따로 또 조언을 구할만한 시나리오 분야 연구자도 몇 찾아놔서, 휴가가 끝나기 전인 이번 주에 물어볼 예정. L은 외부 조언을 얻는 것에 좀 미적지근하지만, 알게 뭐야 내가 답답한데! 외부인, 특히 이 분야 전문가의 피드백을 얻어야 좀 더 개운해질 것 같다. 보니까 L의 망설임은 아마도 누가 우리 연구 주제를 뺏어갈까 봐, 혹은 다 된 연구에 숟가락을 얹을까 봐, 그리고 협업을 하게 되면 시간이 더 오래 걸릴까 봐 망설이는 것 같은데... 누가 제발 숟가락 좀 얹어주면 좋겠네.


참, 피드백 얘기를 하니.. 빅웨이브 (기후변화 청년모임) 내 소모임인 빅웨이브 연구자 네트워크의 연구 피드백 모임에 참여해서 위와 같은 나의 고민을 연구 결과(?)와 함께 구구절절 소개하며 피드백을 요청하였는데, 여러 분들이 기운이 나는 조언을 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그분들도 시나리오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라서 구체적인 조언을 해 주신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연구 전반에 대한 조언이 도움이 되었다! 그때 들은 것도 좀 정리를 하고 반영해야지 싶은데, 지난주 지지난주 논문 펴보기만 해도 너무 재미가 없어서 안 읽혀.. 내가 썼는데 이렇게 재미가 없을 줄이야. 휴가니까 관두자 라는 핑계로 이번 주는 아예 쳐다보지 않고 대신 사사로운 글을 쓰려고 이렇게 몇 개월 만에 브런치 로그인을 했다.


프랑스어  

음. 지난 4개월간 온라인 수업을 아주 조금만 들어서.. 나의 무제한 수업 수강권이 이제 겨우 4.5개월 남았는데! 열심히 들어야겠다. 싶어서 주 1회 영어-프랑스어 회화 교환을 할 파트너를 찾았다. 당장 내일!부터 시작할 예정. 참, 프랑스인 박사과정생이 새로 들어와서 가끔 나의 어설픈 프랑스어로 대화.. 라기보단 단어의 나열을 시도해 보는데, 너 프랑스어 (시도) 할 때 좀 비꼬는 것 (sarcastic) 같아 라는 반응을 들었다. 생각해보니 시니컬함과 sarcasm이 나를 가장 잘 설명하는 형용사인 시절이 꽤 길었었는데.. 요즘은 사람들이 내가 온화한 사람인 줄 알더라고. 그 말을 듣고 나니, 역시 그게 정제되지 않은 나의 본모습이야~ 싶어서 왠지 프랑스어를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글쓰기

지난 4개월간 브런치나 블로그 등 일상 글쓰기는 하나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인스타도 주중엔 앱을 지워버리고 주말에만 깔아서 보다가, 6월 언젠가부턴 아예 지워버리고 웹으로 간간히 눈팅만 했다. 인스타그램은 확실히 폰 최적화 앱인지 웹으로는 그냥 간단히 친구들 소식만 확인하고 끄게 되지 끝없이 피드를 읽게 되진 않더라. 이제 웹으로 DM도 되던데 웹으로 업로드도 할 수 있다면 아예 앱을 다시 깔지 않았을 텐데 아쉽다. 아무튼! 다행히도 다른, 어떻게 보면 더 중요한 글쓰기인 논문은 7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해서 뭐라도 완성을 해서 8월 초에 교수님께 보냈다. 아직 Intro도 Conclusion도 없고 부분 부분 아주 매끄럽게 이어지지는 않는, 일단 결과를 주절주절 적어둔 초안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글의 형태로 써냈다는 것에 만족! 이에는 또 새로운 글쓰기 모임의 영향이 컸는데.. 이전 일상 글쓰기의 인증 모임들과는 완전히 다르게 주 1회 온라인으로 만나서 각자 30분-1시간씩 글을 쓰고, 1주일간 진행상황을 서로 체크하거나 쓴 글에 대한 피드백을 서로 해 주는 모임이다.


미루고 미루던 논문 글을 드디어 쓰기 시작한 것과 이런 모임을 만드는 데는 이 책, The Writing Workshop: Write More, Write Better, Be Happy in Academia, 가 엄청나게 큰 도움이 되었는데 이 책에 대해서는 새로 글을 파야겠다. 저자가 pdf본을 무료로 공개하고 있으니 대학원생 분들은 완전 강추! 학생이나 연구자가 아니라도 글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도움이 될 것 같은 책이긴 하다. 글쓰기의 기술이 아니라 어떻게 인생을 챙겨가며 글을 쓸 수 있을지에 대한 얘기랄까. 아무튼 이 책의 첫 부분을 읽고 나니 글쓰기에 대한 저항감이 엄청나게 줄어들며 드디어 글이 써지기 시작했다. 수십 년 논문을 써 온 연구자들과 교수들도 논문 쓰기를 어려워하고 (저자가 행동 심리학과 tenure 받은 교수임) 연구자들은 실적이 100% 글쓰기로 평가받는데 비해 (논문, 프로포절 등등) 대학원에서 글쓰기 자체를 잘 가르쳐주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거의 모든 박사과정생들과 포닥들이 이로 인해 고생을 하고 우울증도 많이 겪는다..라는 얘기를 읽는데 아, 그래 나만 박사과정이나 논문 글쓰기가 잘 안 맞아서 그런 게 아니구나, 글을 쓰기 어려운 게 당연한 거구나, 안 가르쳐 주고 잘 쓰기를 기대하는 게 이상한 거구나! 개떡 같은 글이라도 일단 쓰고 수정하면 되는구나 글을 쓰면 되는구나. 하는 걸 알게 되니 굉장히 이해받고 공감받는 느낌이었다. 이 책은 특히 글쓰기 모임을 통해서 서로 정서적으로 지지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하는데 그래서 이 책의 글쓰기 모임 제안을 가이드 삼아 위의 슬랙 커뮤니티에서 같이 할 사람을 찾았고 (9-10월부터 참여하겠다는 사람들은 더 있지만 당장 같이 시작한 사람은 1인), 캐나다에서 전혀 다른 분야로 석사를 하는 친구와도 주 1회 만나고, 연구실 동료랑도 주 1회 만나기로 해서 주 2-3회 (연구실 모임은 8월엔 휴식) 각 모임에서 1시간여씩 총 2-3시간씩 2주간 썼더니 그 시간만 글을 써도 뭔가 써지긴 하더라는 이야기. 또 그때 쓰기 시작하면 다른 시간에도 조금은 더 쉽게 글이 써지기도 하고. 또 뭔가 나 왜 이렇게 글을 안 썼지? 왜 잠만 자고 웹툰만 봤지? 하는 조급하고 자책하는 마음이 들 때 '나는 토마토다'라는 생각을 해보면 좀 도움이 된다. 이게 무슨 얘기인지와 이 책 소개와 글쓰기에 대한 얘기는 다른 글에서 더 자세히 써야겠다. *썼습니다! 쓰다보니 세 편이.. (1) (2) (3) 토마토 얘기는 3에 나옴). *일단 이 글의 제일 아래에도 토마토 내용 원문이 있음!   


이사와   플랫 메이트

3월 초에 찾은 집은 5월 11일 8주간의 락다운이 드디어 풀린 후 첫 주말인 5월 16일에 이사를 했다. 연구실 친구들의 캐리어를 4개 빌리고 내 캐리어들과 박스 두 개를 채우니 얼추 이사가 마무리되었다. 가구는 책상 하나뿐이라 분해해서 옮기고 나머지는 다 옷, 책, 잡동사니, 부엌용품 등등. 새 집과 새 플렛 메이트는 너무너무너무너무 맘에 든다! 일단 집이 새 집이고 침실은 작지만 붙박이장이 있어서 모든 게 다 쏙 들어가며 옷장을 따로 살 필요가 없어서 정말 너무 감동이다. 붙박이장이 이렇게 유용한 건지 몰랐어.. 프랑스의 아파트는 거의 다 붙박이장이 있는데 (프랑스에서 살아서 좋은 점 Top 3 중 하나), 처음에 살던 집은 오래된 아파트라 붙박이장이 침실이 아니라 복도에 있었고 좀 투박하게 깊고 넓은 편이라 별로 좋은지 몰랐었는데 이번 집의 붙박이장은 사이즈도 딱 좋고! 문도 하얀색 슬라이딩 도어라 편의성도 미관상으로도 매우 만족스럽다. 독일에서 열심히 꾸몄던 내 방도 다 좋았지만.. 늘 미니멀하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이번 방은 정말 미니멀하다! 근데 그게 내가 물건이 적어서 라기보다는.. 붙박이장 안에 다 들어가기에 다른 가구가 필요 없어서 라는 게 아이러니. 결국 미니멀리즘 인테리어의 완성은 하얀색 붙박이장 (등 넉넉하고 효율적인 수납공간).  다만 왼쪽이 다 선반이고 서랍장이 아니라서 안에 서랍장까지 좀 있으면 금상첨화겠다. 행거 아래 쏙 들어갈 사이즈로 하나 찾고 있는데 아직 마땅한 아이를 못 찾았다.

내 방과 붙박이장

참, 새 집과 내 방도 너무 좋지만 그보다 플랫 메이트인 M이 더 좋다. 나랑 M이랑 둘 다 집순이고 플랫 메이트는 엄청나게 깔끔하고 어른스러워서 감동이다. 내 생에 가장 어린 플랫 메이트인데 가장 깔끔한 집인 데다 누가 먼저 청소할지 눈치 볼 필요 없이 둘 다 그때그때 꼬박꼬박 잘 치우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는 일이 설거지한 그릇들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일인 존경하는 플랫 메이트님. 의외로 바닥 청소에는 관심이 없지만 그건 내가 하면 되지!) 대화도 너무나 만족스럽고 심지어 같이 달리기도 시작했어. 진짜 최고다. 다만 M은 인테리어에는 큰 뜻이 없는지 엄청나게 넓은 거실이 엄청 휑 했고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다행히도 내가 채워 넣는 가구들과 배치에 M도 꽤 만족을 해서 나름 안락한 거실이 되었다. 그렇게 거실은 거실 겸 재택근무/공부를 하는 2인용 오피스가 되어서 둘이서 거실에서 시간을 꽤 많이 보냈다. 참, 어느 창 밖으로나 보이는 초록 초록한 풍경과 (볼 수만 있고 갈 수는 없는 아랫집과 앞집 정원임) 발코니도 대만족. 윗집이 밤에 조금 시끄러울 때가 아주 가끔 있고 아랫집이 담배를 피워서 창문으로 담배연기가 가끔 들어온다는 게 문제지만.. 그 정도는 다 괜찮다. 다 좋아. 아랫집에 귀여운 커다란 강아지도 있다. 이름이 웁스 Oops임. 나와는 발코니 너머로 눈인사나 하는 사이지만.. 귀여워ㅠㅠ

거실의 한편. 몬스테라는 정말 잘 자라고 있다.
그리고 아랫집 웁스와 고양이도 나름 잘 지내는 것 같다. 웁스는 뭔갈 잘못하는지 이름이 종종 불리지만 고양이는 자기 앞가림을 잘 하는지 딱히 불리질 않아서 이름을 모르겠다.


명상

4월 초부터 참여하기 시작한 온라인 명상 모임은 매일 아침에 만나는데 주중엔 이른 시간이라 자주는 못 가지만 10시에 시작하는 주말에라도 꼬박꼬박 참석해서 모두가 아는 단골 멤버가 되었다. 모임이 아주 캐주얼하고 사람들도 좋고 명상을 꾸준히 하는데 도움도 많이 된다. 그나저나 모임에서 명상에 입문한 시간으로 따져도 내가 가장 초심자인데, 심지어 명상의 효과(?)를 잘 못 느끼는 특성이 있는지 (심지어 열흘 명상 코스에서도 딱히 아무 변화를 못 느낀 1인) 뭐가 명상의 효과인지 잘 모르겠는데 하는 상태가 4개월째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나름 꾸준히 모임에 오고 명상도 거의 매일 하기는 해서 사람들이 신기해하며 (??) 조언을 해 줘서 약간 no child left behind 정책의 큰 수혜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있다. 진도가 느린 스스로에게 좀 답답할 때도 있지만.. 뭐랄까, 명상과 그 결과(?)에 어떤 정해진 속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결과를 기대하고 매달리는 것 자체가 명상의 목적에 반하는(?) 거기도 하고, 뭔가 어떤 일에 있어서 진도가 느리다고 해서 (다른 분야에서처럼) 못한다고 혼나거나 눈치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관심받고 챙김 받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ㅎㅎ 물론 이 때문에 가끔 모임 가기가 좀 귀찮을 때가 있긴 하다 (딱히 요 며칠 진척사항이 없어서 누가 뭘 물어보면 할 얘기가 없는데.. 하는 기분). 하지만 아무 얘기 안 하고 다른 사람들 얘기를 듣기만 해도 꽤 흥미로워서 대체로 부담 없이 나가고 있다. 특히 소개받는 팟캐스트들이 다 너무 좋아! 새로운 것을 일단 머리로는 많이 배우고 있다. 체험적으로도 더 잘 느끼게 되는 날도 언젠가 오겠지 뭐. 팟캐스트 얘기는 또 언젠가 쓰게 될 팟캐스트 글에서..  


비폭력대화 (NVC, Nonviolent communication)

3월에 한국 NVC센터의 온라인 연습모임 혜택을 톡톡히 보다가 한국의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면서 연습모임이 줄어들어서 아쉬워했는데 6월부터 나에게 꼭 맞는 온라인 연습모임이 생겨서 딱 맞는 시간에 생겨서 매주 꼬박꼬박 나가고 있다. 한국에 있을 때 센터에서 수업도 듣고 살리다 프로젝트에서 NVC워크숍 했을 때도 와주셨던 선생님이 '환경문제를 고민하는 분들과 함께하는 온라인 모임'을 만드신 것! 요즘 내 삶의 큰 활력소 중의 하나다. 선생님과 참가자들로부터 공감도 용기도 많이 받는 모임이 있어서 기쁘다. 참여하다 보니 더 연습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이 모임에 참여했거나 참여하고 싶은데 시간이 안 되는, NVC에 큰 관심이 있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한국에 있을 때 하다 만 워크북 모임도 이번 주말부터 다시 온라인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운동

3-4월에 달리기 좀 하다가.. 5월부터 완전히 그만뒀었는데 6월에 귀요미 M과 같이 달리기를 시작했다. 먼저 같이 달리기 할래?라고 제안해 준 고마운 플랫 메이트. 비록 두세 번 같이 달리고 학부생인 M은 7-8월 방학이라 고향집에 가버렸지만 그래도 주 1-2회 달리기를 하고 서로 보고하며 나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이번의 성공요인은.. 아주 약한 강도로 달리기를 시작한 것. 멀리 오래 달릴 욕심은 원래부터 없긴 했지만, 그래도 처음부터 20분 정도는 달려야지! 3-4km는 달려야지! 하는 마음에 최대한 오래 (10분이든 20분이든) 안 쉬고 달렸었다. 근데 달리기하고 종종 무릎이 아프다고 했더니 그럼 너 수준에 안 맞는 달리기를 한 거라고 2분 달기고 2분 걷고 달리기랑 걷기를 번갈아가면서 해야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말을 듣고 처음엔, 아니 나는 그래도 그거보다는 그래도 잘 달릴 수 있는데! 하는 반감이 들었으나 그렇게 해보니 확실히 무릎이 안 아팠다. 그래서 첫 주엔 2분씩, 다음 주엔 3분씩 그다음 주엔 5분씩 달리고 걷는 시간을 줄여가니 이번 주에는 8-10분을 달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게 왜 늘 뭐든지 그렇게 빨리 결과를 얻으려고 했을까. 요즘은 거리나 속도에는 관심을 거두고 나가서 바깥공기 쐬고 동네 골목골목의 고양이들 구경하며 조금씩 꾸준히 달리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다. 내가 달리기에 최적화된 몸을 타고나지 않았지만 조금씩 달리기를 하면서 느는 것처럼 명상과 나의 관계도 비슷한 게 아닐까 싶다.


드로잉 진행사항 없음. 우쿨렐레는 새 집에 이사하고 나서 종종 쳤다. M이 우쿨렐레를 잘 쳐서 내 악기를 잘 활용해주니 뿌듯하지만 나의 실력은 늘 비슷해.. 새 곡을 시작하긴 했다. 김동률의 '시작'.


팟캐스트 & 오디오북

아주 옛날에 오디오북을 들었었는데 (팟캐스트와 나의 역사), 작년에 L의 추천으로 [도넛 경제학]을 듣기 위해 다시 오디블의 세계로 들어왔다. 십 년 만에 들어가 본 오디블은 아마존 가족이 되어버려서 망설여졌지만.. 오디오북은 진짜 여기가 독점 플랫폼인 것 같아 다른 선택이 없다는 게 안타깝다. 아무튼 이를 시작으로 유발 하라리의 책들도 다 들었는데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도넛 경제학]도 유발 하라리의 책들도 전부 다 완전 강추!!! 책 보다 빨리 읽고 이해하기도 쉬운 것 같다. 그리고 나선 나오미 클라인의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루이자 메이 알콧의 [작은 아씨들]을 받아놨는데 (작은 아씨들은 저작권이 풀린 작품이라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에서 전자책과 오디오 파일이 무료고, 멋진 신세계 오디오북은 누군가 유튜브에 올려놨다..) 얘네들은 안 듣고 팟캐스트만 열심히 듣다가 요새는 명상 관련 책과 팟캐스트를 번갈아 듣고 있다. 무언가를 듣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듣고 싶은 팟캐스트와 오디오북은 끝이 없고! 한동안 출퇴근을 안 했더니 들을 시간도 적어졌으나 그래도 장을 보러 가거나 운동을 하거나 요리를 하거나 할 때 듣고 있다.


팟캐스트는, 지난 9월부터 하루에 여러 개씩 지난 것들까지 열심히 듣던 듣똑라는 락다운이 시작되면서 시사와 뉴스에 대한 피로감 때문인지 약간 시들해지고 (새로 올라오는 것들 중 절반 정도만 들었던 듯) 다른 팟캐스트들을 많이 들었는데, 듣똑라 아티클 리뷰어를 하면서 또다시 새롭게 접하게 된 것 같다. 근데 나는 유튜브 세대가 아닌가 봐 기자님들 너무 좋은데도 유튜브는 잘 안 보게 되네..  


일단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팟캐스트를 소개하고 자세한 얘기는 팟캐스트 글에서. (*는 요즘 꾸준히 듣는 아이들)

- *듣똑라; *이원영의 남극일기

- 요조의 책, 이게 뭐라고?!; 이스라디오; [기대라]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라디오

- 대화 만점; 이동진의 빨간 책방;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검색하니까 안 나오는데.. 기존 에피소드들 마저 없어진 건가요?!! 세상에ㅠ)

- *Ten Percent Happier; *Deconstructing Yourself

- Emerge; Buddhist Geeks

- Food for Thought (Colleen Patrick-Goudreau); Energy Transition Show


그 외에도 한두 에피소드씩 듣고 좋았거나 추천받은 수많은 팟캐스트들이 있지만, 들을 시간이 없... 사실 별로 재미도 없는 웹툰까지 찾아서 볼 시간에 팟캐스트 틀어놓고 딩굴딩굴하면 될 텐데 왠지 아무 일도 안 하면서 오디오만 듣는 일은 안 하게 되는 아이러니.


모임

3월 29일에 첫 오리엔테이션 모임을 한 기후변화 아티클 (논문 기사 등) 읽기 모임은 4-5월 8주간의 1기를 무사히 마치고 업그레이드하여 (!!) 6월 중순부터 2기를 시작했다. 참가자들이 소개하고 싶은 논문을 소개했던 1기 때와는 달리 미리 논문을 추천받아 커리큘럼을 대략 정한 다음에 시작한 2기는... 흥미로워 보이는 논문이 너무 많아서 무려 3개월간의 일정이 되었다. 그 이후에도 하고 싶은 주제가 6주 치 남아 있으나 일단 9월 중순에 한번 끊고 3기로 해야 될 것 같다. 2기의 중요 업그레이드 사항은 '참가자들끼리 친해지기'라서, 비디오도 되도록 다 켜고 참여하고 매주 첫 부분에 아이스브레이킹 시간을 넣어서 이런저런 사사로운 수다를 떠는데.. 확실히 이전보다 친해지고 가까워진 느낌이라 반갑다. 그리고 모임에서 다룬 논문도 간략히 소개하고 토론 내용도 정리해서 브런치 글로 올리려고 하는데.. 대충 정리만 해놓고 아직 글쓰기 착수를 못했으나 이번 주에 시작할 예정!


그 외에 NVC 연습모임도 (내가 운영하진 않지만) 꾸준히 나가는 모임이고, 새로 시작할 NVC 워크북 모임도 모임이고, 위에서 얘기한 글쓰기 모임들도 모임이 될 수 있을 것 같고.. 9월부터는 책 읽기 모임도 시작하려고 한다! 같은 책을 읽고 모여서 그 책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온오프라인으로) 모여서 각자 읽을 책을 30분-1시간 읽고 그 뒤에 30분-1시간 각자 읽은 책에서 인상적인 구절이나 내용을 공유하는 것. 오랜만에 통화한 베를린의 친구가 4월부터 이런 모임을 매일 아침! 같은 사람들과! 하면서 원래 알던 사람을 새롭게 알기도 하고 락다운 시간을 견디게 해 준 모임이라고 해서 부럽기도 하고 나도 해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생각해 보니까 살리다 프로젝트가 하던 오프라인 독서모임과 거의 동일하더라는. 나는 매일은 못 하고 온라인으로 주 1회 꾸준히 하거나 혹은 월 2-3회 정도 단발성으로 할까 생각 중이다. 사실 꼭 같은 사람들이 계속 올 필요는 없으니까.. 같은 사람들이 오면 또 나름의 커뮤니티와 같은 따뜻함을 느낄 수 있고, 대신 사람들이 꾸준히 올 수 있는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울 수도 있고. 새로운 사람들이 오면 그런 부담도 적고 새로운 책과 아이디어도 소개받을 수 있고.. 다 장단점이 있을 것 같다. 시간을 맞추는 것도 일이라서 일단은 파일럿으로 8/20 목요일 (한국시간) 저녁 8시-9시 반에 모임을 만들었다. 프랑스는 낮 1시-2시 반인 시간. 아, 툴루즈에서 오프라인으로도 같은 모임을 하고 싶어서 어디에 홍보할까 하다가 BeWelcome 사이트에 올렸는데 기대된다. 책 읽기 모임이랑 드로잉 모임을 격주로 할까? 드로잉도 모임이 아니면 안 하게 되는데..?


그러고 보면 모임을 만들고 살아가는 게 나한텐 제일 재밌는 일인 것 같기는 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인데도 어째선지 혼자서는 잘 안 하니까 여럿이서 모여서 하는 일을 자꾸 만들게 되었는데 (책이든 드로잉이든 논문 읽기든) 참가자들의 반응도 바로바로 오니 신이 났던 것 같다.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건.. 내가 하는 일을 읽고 듣고 사용하고 경험할 청중이 누구인지 알기도 어렵고, 있다고 해도 그 반응이 굉장히 느리고 (저널에 실리고 학회에 가고 할 때까지의 수개월~수년), 그 청중과 직접적인 소통이 없는 게 굉장히 답답하다는 점이다. 얼마 전 통화한 동생이 누나는 (과연 얘가 누나는 이라고 했었나? 너는 이라고 했나?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지만 보통 너라고 할 텐데 왜 누나라고 했던 기억이 있지 의아할 뿐) 현장 체질이라서 그래 라고 했는데.. 학창 시절의 나라면 믿지 못했을 얘기지만 요즘의 나에겐 맞는 얘기인 것 같다. 그래서 모임을 만드는 걸 좋아했던 게 아닐까. 모든 모임을 좋아한 건 아니고 주로 내가 만든 모임들을 좋아했다. 내가 하는 어떤 일이 누구에게 어떻게 전달되고 어떻게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바로바로 알 수 있고, 또 나 자신도 모임을 통해 도움을 얻고 변화하는 청중 중의 하나라는 점에서.  


환경/기후변화 연구에 있어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과학적 연구결과들이 대중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인데, 아예 사람들이 관심 자체를 안 가지거나 아니면 잘못 곡해되어서 전달되는 경우 모두 많이 있는 것 같다. 내용 자체가 복잡한 경우도 많고, 커뮤니케이션에 능숙한 사람들이 과학 분야에 많지 않아서 그런 건지.. 그래서 그 분야에 있어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무엇보다 환경과 기후변화 문제는 단지 '과학적 사실'을 전달하는 것만 필요한 게 아니라 과학적 사실이 뭔지에 대한 논란도 많고 종종 감정적인 어떠한 장벽을 넘어야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비폭력대화나 mindfulness의 스킬이 많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마무리

지난 4개월, 아무것도 못 했는데 그냥 사라져 버렸다 라고만 생각하고 아쉬워했는데 이렇게 써보니 그래도 꼬물꼬물 이것저것 고민도 하고, 사부작사부작 해보기도 하고 하며 살고 있었구나. 그래서 좀 안심이 되고 이 글을 쓰게 되어서 다행이다 싶다. 물론 꼭 뭘 해야만 알찬 삶인 건 아니지만, 사실 아무것도 이루지 않아도 충만함을 느끼는 삶(?)을 살고 싶은 것 같지만, 성과 없는 삶이란 무의미하다는 오랜 시간의 사회적 컨디셔닝에서 자유롭기는 쉽지 않다.. 뭘 이뤄서 라기보다는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정체되지 않고 어느 방향으로든 조금씩 변화하고 그 변화가 누적되고 있다는 게 삶의 충만함에 기여하는 걸까.. 잘 모르겠다  


이상 상반기 돌아보기 끝!


*왜 나는 토마토다 라고 생각해 보려고 하는지 관련 글.

 

If you have a tomato plant that isn’t producing tomatoes, you don’t punish it, right? You take care of it better: You give it more water, better soil, better sunlight. And you recognize that the tomatoes aren’t going to appear right away; you have to take care of the plant for a long time before anything appears. In our workshop, that’s how we see academic writing. When someone is having trouble producing work, we don’t say “Be tough, suck it up, work harder!” We try to figure out what the source of the difficulty is, and how the person can take care of themselves better. Over time, we find that people are much, much more productive (and of course healthier and happier) when they adopt a ‘gardening’ approach to academic writing than when they adopt a ‘mining’ approach.

- The Writing Workshop: Write More, Write Better, Be Happy in Academia. Sarnec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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