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서사 2
"정확히는 더 검사를 해봐야겠지만...
암일 수도 있으니 3차 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섯 번째 찾았던 병원에서 우리는 통증의 원인을 알게 됐다.
이제 고작 6학년. 만 11살 밖에 안된 딸에게 암이라니..
이 모든 일들이 무지한 내 탓인 것만 같아 눈물만 흘렀다
미안해.
꾀병이라 생각했던 거.
관심받고 싶어 그런다 생각했던 거.
미안해...
슬픔에 정신줄을 놓고 있을 틈이 없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지.
잊지 말자. 난 딸을 책임져야 하는 엄마다.
3차 병원의 예약은 쉽지 않았다.
다행히 언니 친구가 세브란스병원 직원이어서 우린 지인 찬스를 사용했다.
진료의뢰서와 엑스레이를 본 의사 선생님은 MRI를 찍어야지만 뭔가 이야길 해줄 수 있다며 말을 아꼈다.
MRI예약은 두 달뒤...
"선생님 암인가요?"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럼 두 달 뒤면 암이 더 자라 버리는 거 아닌가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많이 아파해서 약국에서 파는 진통제로 버티고 있는데 두 달 동안 그렇게 더 버티라고요?"
"방법이 없습니다. 약국에서 약 사 드세요."
그날 차갑게 대꾸하는 그 의사의 멱살을 잡지 않았던 건 그래도 내 이성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집으로 돌아와 MRI가 취소된 자리가 있는지 계속 전화를 걸었고 1달 여정도 당길 수 있었다.
보다 못한 언니가 염치 불고하고 다시 친구에게 부탁해줬고, 우린 며칠 뒤 MRI 촬영을 할 수 있었다.
결과는 일주일 뒤 외래진료 시 들을 수 있다고 했다.
조마조마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MRI 촬영 3일째.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기는 세브란스 소아정형외과예요. MRI 결과가 나왔어요."
"네? 일주일 걸린다고 했는데..."
"빨리 병원으로 오실 수 있어요?"
"네? 지금이요?"
"네. 오시는데 얼마나 걸릴까요?
오셔서 의사 선생님 진료를 보셔야 하겠지만 빠르게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라서요...
결과에 따라 소아종양 과로 옮겨 진료를 보셔야 하는데 진료예약이 마감된 상태라 오시는 시간 봐서 중간에 들어갈 수 있게 해 드리려고요."
"지금 바로 출발할게요...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걸릴 것 같아요..."
잠시 뒤 또 다른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기는 세브란스 소아종양과 예요.
지금 뼈에서 발생한 암이라 골연부조직 보시는 선생님과 협진이 필요한데,
진료예약이 꽉 찬 상태라 오시는 시간 봐서 중간에 넣어 달라고 해야 해서요.
언제쯤 도착 가능하세요?"
부들부들 손이 떨리고 목소리도 떨리고
쏟아질 것 같은 울음을 꾹 눌러 담고
계속 되뇌었다.
정신 차리자. 정신 차리자. 내가 정신 차려야지..
어린이날 연휴를 맞아 외출을 준비하고 있었던 우리는 목적지를 병원으로 바꾸어 바로 출발했다.
병원을 향하던 길고 길었던 그 길.
마음으로 정신 차리자고 수백 번 되뇌었지만, 쏟아지는 눈물을 당해낼 수 없었다.
하나님 살아계신 것 맞냐고 어떻게 우리에게 이럴 수가 있냐고 스치듯 생각했다가,
아닙니다. 아닙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부디 우리 아이만은 살려주세요.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꿈이길 바랬다. 눈을 뜨면 모든 것이 사라지는
소아종양과 대기실에 앉았다.
머리가 하나도 남지 않은 아이들이 부은 얼굴로 링거를 달고 터벅터벅 걸어 다니는 모습을 마주하니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앞으로 우리의 모습이 그려지며...
눈물이 자꾸 쏟아져 화장실로 가서 목놓아 울었다.
혹시나 아이가 올까 봐 화장실 문고리를 붙잡고..
그러다 번쩍 정신이 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는 눈치껏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내가 약한 모습 보이지 말아야지...
아이가 의지 할 나는 엄마다.
선생님은 차분히 말씀하셨다.
"아직 확정된 건 아니에요. 조직검사도 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치료방법이 결정될 거예요.
벌써부터 이렇게 힘들어하시면 안돼요 어머니."
"네..."
"골연부조직 보시는 선생님 진료 보고 입원일자와 수술일자 잡도록 할게요.
다녀오시고 이야기해요"
선생님은 아이가 옆에 있어서 그런지 말씀을 아끼시며 나를 위로해 주셨다.
그래... 이제 원인을 찾았으니 치료만 잘 받으면 되는 거야.
다행이지 뭐야 더 늦기 전에 발견했으니...
입원일은 어린이날.
언니네 가족들이 양손 가득 선물을 들고 찾아와 우린 링거를 달기 전 신나게 놀고, 맛있는 음식도 함께 먹었다.
의지할 가족이 있다는 것이 사무치게 고마웠던 날.
이제 시작이다.